혼자되기
다시 잠을 설치기 시작한다.
잤는가 싶으면 어느 새 초롱하게 깨어 별별 생각을 한다.
생각의 끈, 그것은 내게 말을 붙이며 자꾸만 길어진다.
길게 이어지는 두서없는 생각들.
불을 켜고 시계를 본다.
잠자리에 든 지 벌써 세 시간이 흘러 있다.
불을 끄고 잠을 청한다.
연결고리도 없는 생각들이 마치 퀴즈 게임을 하듯 꼬리에 꼬리를 문다.
휴식 기간이 벌써 삼 주가 지나간다는 어떤 강박감 때문이다.
장편소설을 마치고 좀 쉬자 했던 시간은 이 주 정도였다.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며, 쇼핑이며, 자질구레 처리할 일들을 했다.
그런데도 약속은 신년까지 이어지고,
나는 이 주의 시간을 훌쩍 넘어버린 휴식에 슬슬 불안과 불만이 차오른다.
구상한 소설을 어서 써야한다는 압박감이 자꾸만 내 안에서 재촉한다.
불면은 그러한 소리의 어떤 육체성이다.
휴대폰의 전원을 끈다.
카카오톡 멘트엔 전원을 껐고, 문자와 톡을 주시면 확인하겠다고 썼다.
불면의 그 어떤 육체성에,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자구책이다.
이렇게, ‘혼자되기’의 시간을 준비하는데
문득 정영문의 장편소설 『바셀린 붓다』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지나 자신에게 가는 것 일뿐.”
정영문의 말대로라면, 자신을 지나 자신에게 가는 것은
우선 물리적으로 ‘혼자’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후에야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고,
그것이 ‘자신에게 가는 길’이다.
‘자신에게 가는 길’엔 여러 방식이 있을 것이다.
나는 글쓰기로 ‘자신에게 가는 길’을 택한 사람이다.
글쓰기는 ‘혼자되기’가 없이는 쓸 수 없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기.
이 세 가지는 글쓰기의 기본요소다.
그 기본요소를 충족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혼자되기’다.
‘혼자되기’란 분명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뿌듯하고 즐겁기도 한 일이다.
이제 나는 서서히 ‘혼자되기’로 들어가
‘자신에게 가는 길’을 더듬을 것이다.
좋은 소설이 나오든 부족한 소설이 나오든,
나는 그 작업을 통해 ‘나’를 발견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