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의 무게
곧 추석이다.
추석을 우리는 명절이라 부른다.
그런데 정말 명절일까.
브리태니커 사전에 보니, 명절이란
“전통적으로 그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마다 즐기고 기념하는 날. 우리나라에선 대표적으로 설과 추석”이라고 한다.
헌데 ‘즐기고’라는 말 때문인지 우리는 여전히 명절=즐거운 날로 여긴다.
즐겁지 않아도 즐거워해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마저 가진다.
‘명절은 즐겁다’로 지금까지 내려온, 공식화 된 문서보다 더 강력한 전통 때문이다.
헌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일까.
하지만 “명절은 즐겁기만 한 날은 아니다.” “명절은 즐거운 날이 아니라 괴로운 날이다”
“명절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라고 외치고 싶은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특히 여자들(며느리들)에게 명절은 미풍양속이 아니라 악습이며 폐습이다.
왜 그럴까.
그렇게 즐거운 날이라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즐겁다는데, 일 년에 한 두번 있는 귀한 날이라는데 왜?
왜? 라는 질문은 사실 시답잖은 얘기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이며, 알면서도 드러내놓지 못할 뿐이다.
미풍양속이 되어야 할 명절이 꺼리는 날, 기피하고 싶은 날이 된 까닭은
인격의 상실에 있다.
여기서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관계는 고부간이다.
고부간이란 평등관계가 아니라 상하관계다.
적어도 지금까지 우리의 의식은 그렇게 진행되어 왔다.
인간 대 인간이 아닌,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로, 상과 하로, 명령과 복종으로 이어왔다.
이런 관계는 위선적이며 부자연스럽다.
시어머니든 며느리든, 피붙이가 아니면서 피붙이로 맺어졌으니
없는 애정마저 쥐어짜 판에 깔아야 그럴듯한 관계, 그럴듯한 가정, 그럴듯한 고부간으로 인정을 받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든 타인의 시선에게든.
명절이 오면,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라는 권위를 세워야 하고
며느리는 ‘착한 며느리’ ‘딸 같은 며느리’를 연출해야 하니 얼마나 고달플 것인가.
며느리만 괴로운 게 아니라 시어머니도 괴롭다.
괴롭지만 대대로 내려온 인습이 있으니 섣불리 물리지도 못한다.
참으로 명이 길기도 긴 명절이며 관계이다.
명절만 되면 며느리들은 긴장한다.
시어머니도 긴장한다.
불편한 마음을 숨기려니 몸과 마음이 고달프기 짝이 없다.
육체적 노동도 한몫을 하나,
그보다는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는 데 며느리들의 분노가 있다.
상하관계로 길들여진 우리들의 인식이 아직은 명절을 뛰어넘지 못한다.
개인의 의식으로 돌아가면, 너무도 당당하고, 너무도 자존감이 팽팽하나,
시댁에만 가면 개인도 아니고 사회적 명칭으로 존중받던 사람도 아니게 된다.
그저 일이나 해야 하고, 그것도 고분고분, 싹싹하게 해야만 하는, 일꾼의 대접만 허용된다.
이러니 좋은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다.
요즘은 명절의 무게도 많이 가벼워졌다.
차례를 생략하거나,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걸로 명절을 보낸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아직도 소수다.
소수든 대수든 그게 문제는 아니다.
여행이, 명절 연휴를 이용하고자 하는 것도 있겠지만
내심, 명절을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클 것이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명절의 무게를 더는 방법엔 어떤 게 있을까.
의식의 전환이다.
의식의 전환은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게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애를 써봐야 한다.
상하관계가 아닌, 친구관계처럼 평등한 관계로,
인간 대 인간의 관계로 의식을 바꿔야 한다.
남편이 “수고 했어”라고 말해준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잠시 위로에 그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 된다.
당사자가 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좀 더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하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하며,
그런 자리가 마련될 수 있게 분위기를 끌고 가는 게 중요하다.
시어머니든 며느리든, 모두 사람이 아닌가.
목욕탕에 가보라.
벌거벗은 사람만 있지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없다.
그렇게, 목욕탕에 간 것처럼, 겹겹이 입었던 옷을 벗고
등을 밀어주듯 서로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우선 있어야 한다.
요원하고 피상적인 얘기인 듯하나 시도는 해보아야 하고,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할 일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즐겁게 살 권리가 있고,
인격적으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과격한 표현을 쓰자면,
사람이 사람을 몰라보거나 외면하면 어디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명절의 무게,
충분히 덜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