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행을 권하는 사회
시절이 참 거칠다.
어느 시절이 이렇지 않았나 싶어도 요즘처럼 자괴감이 드는 적도 드물다.
철도파업은 노사 간의 이권에 한 치의 양보도 없고,
종북이니 전라도 경상도니 그런 말은 이제 예사롭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그런가 하면 ‘시월드’라는 말이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를 자연스레 갈라놓는다.
SNS는 또 어떤가.
되는 말이든 아니든 일단 SNS를 타기만 하면 공룡이 된다.
이대로 되는 걸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치가 잘되어야 아르헨티나 꼴이 되지 않는다고
나름 열정을 부렸건만, 요즘엔 뉴스며 SNS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나만 그럴까.
이런 혼란함을 나는, 바꿀 힘이 없다는 것을 자괴감으로 실감한다.
내 주변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보수도 반이요 진보도 반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반반이라서 다행이다.
건강한 사회는 비판이 있어야 하고,
비판을 한 후엔 화해/화합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비판만 있고 화해/화합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내 주변 사람들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나,
SNS로 오는 펌글을 보면 대개 보수 쪽이다.
누가 빨갱이니 뽑으면 안 된다,
이러이러한 건 종북이니 알아서 해라... 등.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런 펌글을 열 명에게 복사해 보내면 복이 온다거나,
안 보내면 화가 미칠 거라거나... 그런 식의 멘트가 꼭 하단에 달려있다.
복과 화.
우리는 불이해와 불화합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복과 화를 두려워한다. 복과 화에 취약하다.
그래 그런지 아무런 비판도 없이, 정말이지 착실하게도 열 명, 아니 그 이상의 사람에게 펌글을 전한다.
이러니 SNS가 공룡이 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나는 그러한 펌글에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만나면 좋은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보내온 펌글에 동의할 생각은 없다.
펌글을 보내온 지인들은 나의 무반응에 서운해 한다.
당연하게도, 그 다음부턴 관계가 소원해진다.
이것이야말로 우려해야 할 사안이다.
우려해야 할 사안은 또 있다.
인터넷으로 올라온 사건을 읽다 댓글로 들어가 보면 가관이다.
사건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댓글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달린다.
예컨대, 어느 지역에서 사건이 나면 사건보다는 지역색이나 종북을 거론한다.
무뇌증 환자가 따로 없다.
종북이라는 말 자체가 분열이다.
분열을 조장하고 그것을 당연시하는 이 사회는, 역주행을 권하는 사회다.
이대로, 어디까지 치달을 건지 아슬아슬하다.
모두가 알고 느끼는 것이겠지만
국민들이 원하는 건 보수도 진도도 아닌, 야당도 여당도 아닌,
더도 덜도 아닌,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다.
보수도 우리 국민이요, 진보도 우리 국민이다.
여당도, 야당도 우리 국민인 바,
이제 너와 나를 물어뜯기는 그만했으면 싶다.
돌아보면, 그들이 나의 삼촌이고 동생이고 형이고 친구이고 선후배다.
그만 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