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설/독서감상문

<<이야기 고물상>>이 주는 감동

유리벙커 2015. 4. 28. 02:27

 

 

얼마 전,『이야기 고물상』의 저자 박경장 문학평론가로부터 이 책을 받았다.

청소년 문학 평론집이라는 부제가 달려있었다.

하지만 몇 장을 읽자 ‘청소년’에 관한 이야기만은 결코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굳이 말한다면 ‘어른이 읽어야 할 청소년’에 관한 책이다.

그렇다고 청소년의 그저 그런 이야기를 어른의 시각으로 교훈하고 지시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선 이 책은 존재의 문제를 다룬다.

‘나’는 무엇이며, 문학은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 물으며 답한다.

딱딱하거나 철학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청소년 소설을 쓴 작가들의 소설 몇 편을 아주 재미나게 이야기하며,

이 사회와 청소년 혹은 우리가 어째서 지금의 자화상을 가지게 됐는지 살펴보게 한다.

또한 우리가 부르는 문학이라는 것이 처음 나왔던 때와 근대문학을 거쳐 현대문학으로 오게 된 역사적 사실과 배경에 대한 이야기도 아주 흥미롭게 나온다.

그에 따른 세계대전의 발발과 지금의 문학이 자리를 잡게 된, 그러나 계속 진행되는 문학의 얼굴도 밝힌다. 여기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등장하는 것은 물론, 문학이 자본주의 사회와 어떻게 역학적 관계로 조우하는지도 다룬다.

<쓸모없어 쓸모 있는 문학>이라는 소제목에 나오는 글은 진정, 우리/사회가 곱씹어야 할 말이다.

“화폐는 가치를 모릅니다. 오로지 교환을 위한 가격만 알 뿐이죠....(중략) 가치가 아니라 가격이 매겨질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차이’입니다. 차이는 필연적으로 억압을 낳죠....(중략) 창작과정에서 묻어나는 작가 정신의 관점에서 보면, 문학은 여전히 가격으로 환산될 수 없는 가치가 우선시되는 대표적인 예술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중략) 써먹을 수 없어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비효율적인 문학. 가격이 매겨지지 않아 차이라는 교환가치를 발생시키지 않는 문학. 그러므로 차이라는 억압을 가하지 않는 문학. 억압하지 않으므로 거꾸로 억압에 대해 말하거나 감시할 수 있는 문학. 이것이 ‘쓸모없음으로서 쓸모 있음’이라는 비평가 김현이 역설한 문학효용론이었어요.”

그렇다면 비평가 김 현 선생님은 어떤 말을 했는지 보자.

“인간은 그 자신의 지성에 의해 진보해왔습니다. 소비사회에서 문학이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일은 과학기술의 익명성과 비인간성에 대해 문학의 이름으로 반성하는 일입니다. 문학만이, 감히 말하거니와 그것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억압하지 않으면서 억압을 생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 박경장 또한 “근대문명 진보의 역사에서 ‘전체’라는 이름으로 가한 억압 또한 합리란 이름으로 진보했으니까요”라고 말하면서 “문학은 ‘감추면서 드러내는’ 전략을 짜냈다” “문학은 기본적으로 ‘이것’을 말하면서 ‘저것’을 의미하려는 언어 전략”이라고 말한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될 말이기도 하다.

소설은 재미가 있어야 하지만, 사유가 빠진 재미는 한갓 오락에 지나지 않는다.

조금 과격하게 말한다면, 사유 없는 소설은 소설이 아니다.

내가 이 책에 감동을 받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생각하게 하는 글, 내 글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글, 감성과 지성을 리드미컬하게 비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

말이야 바른 말이지, 세상에 널린 게 책이다.

그러나 감동을 주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책은 오솔길과도 같은 감동을 준다.

흙이 주는 감성도 감성이거니와, 그 흙길을 따라가다 보면 구부러진 저쪽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지는 것처럼, 저자가 하는 말을 따라가다 보면 다음엔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자못 궁금해진다.

왈칵 흥분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군불을 때는 듯한 중독성을 준다고나 할까.

그렇다. 나는 그랬다. 분명, 모두와 공유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