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이 궁금하다
오래 전, 베이컨의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그때의 충격은 뭐랄까, 너덜너덜해진 느낌?
한마디로 쇼킹 그 자체였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카오스였으며 광기였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아니 눈부터 거부했다.
헌데 참 이상한 것이, 알 수 없는 그 광기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어떤 부채처럼 문득문득 떠올랐다.
그러던 중, <<인간의 피냄새가 내 눈을 떠나지 않는다>>라는 책을 번역자로부터 받았다.
이 책은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과 프랑크 모베르가 대담한 것을,
프랑크 모베르가 정리하여 썼고, 박선주가 번역한 것이다.
나는 그동안 베이컨의 그림이 궁금했던 터라, 베이컨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까 설레었다.
어째서 베이컨은 모든 사물을 그토록 저주하듯이 그렸을까.
세상은 온전하지 않다는 메시지인가?
너와 내가 사랑을 나누고 어떤 미래를 향해 부단히 가지만
그것들조차 뒤틀린 세상의 파편에 불과하다는 뜻인가?
프랑크 모베르는 베이컨의 그림을 “피와 생명의 색깔, 분을 바른 시체의 독이 든 살의 색깔. 벌거벗은 채 고립된 육체의 색깔”로 표현한다. “충격을 절정에 이르게 함으로써 극단적으로 강력한 힘을 느끼게 했다” “근육을 마비시키는 어떤 외침” “사지를 비틀기에 전념한 육체”라고 말한다.
베이컨의 그림은 미술평론가에게나 일반인에게나 비슷한 ‘감각’을 선사하는 모양이다.
이에 베이컨은 말한다.
“‘임상적’ 그림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많은 위대한 예술품은 ‘임상적’입니다.(중략) 그것은 일종의 리얼리즘입니다.(중략) 본래적인 의미에서 ‘임상적인’ 것에는 감정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엄청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다시 베이컨의 말을 옮긴다.
“‘정육점’ 진열대 앞에서, 당신이 말하듯이, 또 다른 진정한 ‘동기’를 발견했지요. (중략) 내가 붉은색들, 푸른색들, 노란색들, 지방질의 고깃덩어리를 매우 좋아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도 고깃덩어리 아닌가요? 정육점에 갔을 때, 내가 그 자리에, 고깃덩어리 대신 놓여있지 않은 것이 난 늘 의아스러웠어요. 게다가 내 정신을 온통 사로잡고 있는 아이스킬로스의 시행이 있습니다. ‘인간의 피냄새가 내 눈을 떠나지 않는다...’ (중략) 정말이지 고깃덩어리는 내 모든 본능을 자극합니다.”
이 책 제목이 태어나는 순간이다.
베이컨은 창조에 대해서도 일갈한다.
“창조란 나머지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할 그 어떤 필연성을 의미합니다. (중략) 창조는 사랑과 흡사해서 그 무엇에도 도달할 수 없습니다.”
나는 베이컨의 이 말에 전적으로 수긍한다.
예술과 창조의 힘은 바로 ‘도달할 수 없음’에 있다.
‘도달할 수 없음’만큼 사람을 매혹시키는 것도 드물다.
베이컨 역시 그렇게 말한다.
“늘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도달하는 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베이컨의 이 말은 내 품어왔던 말이기도 하다.
나는 글을 쓰면서 베이컨이 한, 바로 위의 말을 수없이 느꼈던 터다.
알고 보면 삶도 ‘도달할 수 없음’의 연속이다.
베이컨도 이런 말을 한다.
“모험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 그건 바로 삶 자체입니다.”
삶, ‘도달할 수 없는 모험’의 잔인한 미학.
창조와 삶과 사랑, 그것은 ‘따로 또 같이’로 하나의 길을 간다.
인간이 살아갈, 혹은 살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베이컨은 우리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고통스럽고 참기 어려운 질병이지만 필연적인 것입니다. 보들레르는 ‘사랑은... 공범자 없이는 불가능한 범죄’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에 대해 이만큼 아하, 감탄을 주는 말도 드물 것이다.
베이컨의 또 다른 말은 나를 놀라게 한다.
“나는 오직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림을 그립니다.”
나도 어느 자리에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씁니다.”
프랑크 모베르는 우리도 느꼈을 법한 흥미로운 점 하나를 말한다.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과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은 이름도 같고 국적(영국)도 같다. 그렇다면 혹시 같은 조상은 아닐까?
이에 관해 프랑크 모베르는 미셸 레리스의 입을 빌어 말한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위대한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 그의 가계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로 인해 동명이인인 화가 베이컨은 철학자 베이컨과 연결된다.”
미셸 레리스는 같은 조상인지 아닌지 살짝 말을 비껴가는 것으로 독자들에게 판단을 넘긴다.
같은 혈통이든 아니든, 두 사람은 한 시대를 건너 지금까지 아주 중요한 획을 그은 것만은 분명하다.
그 영향을 받았을 사람들.
긍정으로든 부정으로든 사람들의 삶 어느 귀퉁이에 머물렀을 철학자 베이컨과 화가 베이컨.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 2015년에 그들을 읽고 있는 나.
이만큼 신기한 일이 어디 또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