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우리는 여행을 했었지

유리벙커 2016. 2. 13. 01:25


다음 주엔 친구 둘과 동유럽 여행을 간다.

오랜만에 나서는 길,

설렘이 먼저 여행길을 잡는다.


어제는 친구들을 만나 브리핑 타임을 갖고 일정에 따른 여러 사항을 체크했다.

친구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

문득 그때의 일이 어른댄다.


친구 J와 지리산 여행을 하던 때다.

나와 J는 일정이 맞지 않아 J는 승용차로 먼저 가고

나는 다음 날 기차로 구례역에 도착했다.

J는 시간에 맞춰 역 앞으로 마중을 나오기로 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서서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구례역사 앞을 서성이는데 저쪽에서 J가 오고 있었다.

J의 가슴엔 야생화가 듬뿍.

J가 내 앞에 서더니 야생화 다발을 내밀었다.

“정주야, 너 주려고 오던 길에 꺾었어. 이거 꺾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 오래 기다렸니?”

순간 언제 짜증이 났냐는 듯 감동과 행복감이 뻐근하게 차올랐다.

뭐 이렇게 매력적인 애가 다 있을까. 친구에게 꽃을 주겠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J와 나는 그렇게 만나 밥을 먹고 지리산 자락을 돌고 숙소로 갔다.

숙소에서 우리는 새벽이 가깝도록 얘기를 나눴다.

민주화를 위해 거리로 나선 사람들 얘기, 그때 우리는 뭘 하고 있었냐는 자책과 반성,

그리고 우리들의 유년 시절, 청춘의 외로움, 상처, 그런 것들을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번 동유럽 여행을 주관한 것도 J다.

동유럽 여행은 패키지 상품이기에 여행이라기보다 관광이다.

관광이 눈으로 찍는 것이라면 여행은 의식의 순례이다.

지리산은 여행이었고, 이번에 가는 동유럽은 관광이다.

그러나 관광 중에도 소박한 ‘여행’이 끼어있길 바래본다.

글과 화면으로만 접했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독일은 물론 유럽 여러 국가가 ‘을’이 필요해서 만들어낸 유대인 학살.

‘을’이 되는 줄도 모르고 ‘을’이 되어버린 유대인들.

동족을 죽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대인들과 그때의 광기.

개인의 고통이자 시대의 고통이던 그때의 현장.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떨리고 먹먹하게 눈물이 차오른다.

그 역사 앞에서

나는 과연 어떤 걸 느끼고 생각하며 바라볼 수 있을까.

벌써부터 내 의식의 저편에 몸살기가 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