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설/독서감상문

<<카산드라>>는 왜?

유리벙커 2017. 4. 17. 18:14




카산드라!

참 매력 있는 이름이다.

그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그녀가 궁금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예언자였다.

예언은 하되, 누구도 그 예언을 믿지 않게 하는 벌을 받았다.

신의 왕 아폴론 때문이다.

카산드라는 예언의 능력을 받고 싶어 아폴론에게 기도한다. 아폴론은 예언의 능력을 주는 대가로 카산드라의 몸을 요구한다. 카산드라는 그 요구를 거부하고, 아폴론은 카산드라의 입에 침을 뱉음으로써 예언의 능력은 주지만 아무도 믿게 하지 않는 벌을 준다.

 

 

크리스타 볼포의 카산드라는 이러한 신화를 바탕으로 카산드라의 여정을 따라간다.

소설에는 많은 이름과 사건이 나온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지 않으면 내용 파악이 쉽지 않다.

그리스와 트로이는 10년 간 전쟁을 한다. 우리가 아는 전쟁과 약간 다르다. 줄기차게 전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인은 트로이의 성 앞에 진을 친 상태에서 트로이 성내에 들어와 장을 보기도 한다. 트로이 국민들 역시 그 점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후반부에 전쟁이 고조되면서부터는 트로이의 권력자(우리로 말하면 국정원장)가 힘을 잡게 되는데 그때는 그리스인은 물론 트로이의 왕비, 카산드라와 그의 형제들까지 일일이 검문을 받아야 할 정도가 된다.

이 소설은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와 마찬가지로 예고된 죽음을 말한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죽으러 간다.”(7)라든지, “나는 오늘 살해당할 것이다.”(22)로 굳이 분류하자면 임종문학에 속한다.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에서처럼 챕터 구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도입부 여기였다.” 로 시작하는 이 소설의 마지막은 여기가 그곳이다.”라고 맺는다. 말하자면 내러티브는 여기로 시작해 여기로 끝나기까지, 중간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그것은 회상의 형식을 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산드라는 조국 트로이가 그리스 손에 넘어가자 그리스의 전리품이 되어 끌려간다. 카산드라의 아버지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로, 어머니 헤케베보다 조금 결단력이 부족한 인물로 나온다. 먼저 그리스와 트로이의 중심인물부터 봐야 이해가 빠르다.

 

<그리스>의 중요 인물.

아가멤논()

클리타임네스트라(왕비)

메넬라오스(스파르타의 왕)

오디세우스(트로이의 목마에서 특공대로 진두지휘함)

아킬레우스(트로이를 초토화시킨, 신의 아들로 불리는 무사)

 

<트로이>의 중요인물.

프리아모스()

헤케베(왕비)

헥토르(장자이며 카산드라의 오빠)

파리스(헬레네를 납치한 일로, 트로이전쟁의 원인 제공)

헬레노스(오빠)

 

이 소설에서 카산드라는 예언자가 되길 갈망하는데, 그 이유는 여자로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유일하게 대접받고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게 사제였기 때문이다. “우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은 내 소망이 있다. 사제 이외에 여자가 지배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을까?”(38) 그녀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미래를 보면서 그때마다 입에 거품을 물고 실신하는 광기에 빠진다. 추측컨대, 사실을 사실로 얘기하지 못한 내면의 갈등이 표출된 것이 아닐까 한다. 물론 중간에 트로이의 결정에 반대해 아니요를 말하지만 그 말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왕인 아버지의 엄명에 따라 감옥에 갇히기도 한다.

다른 한 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는 호메로스가 그리스인이라 그런지, 아킬레우스가 그리스의 영웅으로 나오지만 이 소설에선 짐승 아킬레우스로 나온다. 카산드라의 남동생들을 죽이고, 오빠 헥토르를 죽여 잔인하게 처리하는가 하면, 그 남동생의 여자 브리세이스를 달라 해서 취하고, 카산드라의 여동생 폴릭세네도 전쟁을 안 하겠다는 조건으로 취한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이 소설에선 동성애자로 나온다) 또한 아마조네스의 여왕 펜테실레이아를 죽인 후 그 자리에서 시체를 겁탈한다든지, 힘만 센 잔인한 인물로 그린다.

또한 파리스의 경우, 신화에선 미녀 중의 미녀 헬레네를 납치해서 결국 트로이의 목마로 전쟁의 원인을 제공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 소설에선 헬레네를 납치해 오다 이집트 왕에게 빼앗긴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도 트로이와 파리스는 없는 헬레네있는 헬레네로 왜곡시켜 전쟁을 지속시킨다. 작가는 이 시대의 전쟁 시나리오가 그때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고발하고 싶었던 듯하다.

신화에서 말하는 인물 캐릭터와 이 소설의 인물 캐릭터가 다른 점은 있지만 이야기의 뼈대는 충실하다.

아킬레우스는 폴릭세네를 주면 전쟁을 안 하겠다는 조건을 내걸 때, 트로이는 그 조건을 수락한다. 이때 트로이는 아킬레우스를 신전으로 불러들이고, 폴릭세네로 하여금 유혹하게 하면서 그 기회에 파리스가 아킬레우스를 죽이는 계획을 짠다.(이 계획을 카산드라는 아니요로 답하고 감옥에 갇힌다) 그 계획은 성공했고, 그리스는 그 일로 트로이를 침략한다. 그리스가 트로이를 함락하자 그리스는 죽은 아킬레우스 무덤에 산 제물로 바치기 위해 폴릭세네를 잡아가고, 카산드라는 겁탈을 당한다.

그러기 전, 카산드라는 아이네이아스를 사랑해 쌍둥이를 낳는다. 트로이가 멸망하자 아이네이아스는 같이 탈출하자고 하나 카산드라는 거절한다. 카산드라는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며 아가멤논의 손에 끌려 그리스로 간다. 소설은 도착한 후, 카산드라가 미래를 보는 눈으로,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손에 아가멤논과 카산드라가 죽는 걸로 나오지만, 신화에는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내연남으로 메넬라오스(스파르타의 왕)가 나오고, 그 둘의 공모에 의해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남편인 아가멤논을 죽인다.

카산드라는 죽음을 앞두고 사랑했던 아이네이아스를 떠올리며 이런 말을 한다.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를 기억하게 할 것이다. 훗날 우리가 다시 만나면, 우리는 고통을 통해 서로를 알아볼 것이다.”(185)

이보다 더 참혹하고 비극적인 이야기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작가 크리스타 볼프는 비극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권력을 원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예언자 카산드라를 통해 말한다.

예언을 결박당하지만 끝까지 아니요로 답하는 용기를 보여준다.

자신의 운명을 꿋꿋이 받아들이는 결단을 보여준다.

그리스인과 트로이인 구분 없이 동굴에 모인 공동체를 통해 비전을 제시한다.

 ’비극의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