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 두타연에 가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몸이 좋지 않았다.
긴 여행을 하기엔 무리.
그래서 택한 게 공기 좋고 살살 걸을 만한 데였다.
그곳이 양구 DMZ에 위치한 두타연이다.
반팔을 입어도 괜찮았지만, 두타연 매표소로 가자 사정은 급변했다.
한겨울만큼이나 춥고 바람이 셌다.
차 트렁크에서 오리털 파카며 점퍼를 꺼내 입고
예약한 인적사항을 거쳐 GPS 목걸이를 걸었다.
철원이나 강화 교동도에서도 그랬지만, DMZ는 경비가 까다롭다.
그래야 한다.
분단국가 국민이 치러야 할 몫은 아직도 유효하다.
두타연 입구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있는 건 위령 전투비다.
전투비 옆 시비엔 가슴 절절한 시가 새겨져 있다.
누가 썼는지 모르나 전쟁을 치러야했던 생명들의 넋을 위로한다.
묵념을 하고 시비를 찬찬히 읽는데 눈물이 차오른다.
“누군가는 치루었어야 할 능욕을”이라는 대목은 마치 내게 하는 말로 들린다.
저들은 나라의 부름을 받아, 혹은 자원하여 목숨을 바쳤다.
나라를 지키려는 마음은 본능에 가까웠으리라.
저들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말은 진부하다.
그러나 맹세처럼 언제까지고 잊지 않아야 할 마음이기도 하다.
위령비를 뒤로 하고 나오는데 족히 두세 팀이 될 만한 가족들이 위령비가 있는 쪽으로 온다. 그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을 듣는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한 남자는 위령비를 보자고 하고, 한 여자는 그깟 위령비를 왜 보냐고 한다.
여자가 하는 말, “위령은 무슨 위령! 위령할 게 뭐가 있다고. 아이, 그런 거 보지 말고 그냥 가!”
저 여자는 대체 누구인가.
대한민국 사람 맞나.
저런 사고로 어떻게 자식 교육을 시키나.
순간 많은 생각이 떠오르며 화가 치민다는 말로는 부족한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우리를 대신해 능욕을 치른 우리의 아버지이고 오빠들이다.
저 여자야말로 우리의 아버지와 오빠를 다시 한 번 능멸하는 꼴이다.
생각해 보면 어디 저 여자뿐이겠는가.
모든 걸 좌와 우로 나누어 서로를 헐뜯는 시절이 아닌가.
마음이 무겁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한 자락에 잠시 몸을 부려보려던 마음이 부끄러워진다.
그래도 긴 걸음을 해서 나선 길.
가라앉은 마음을 털며 두타연 숲으로 들어간다.
바람은 자고 햇빛은 숲 사이를 돌아다니느라 부지런을 떤다.
계곡의 물은 힘차고 무서우리만큼 깊은 소(沼)도 보인다.
억겁의 세월이 남겼을 흔적 앞에 그저 숨소리마저 조심조심.
아, 싸우지 말자.
오직 그 한 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