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책의 종말

유리벙커 2017. 10. 18. 01:06

작가에게 곤혹스러운 것 중 하나는 책 버리기일 것이다.

책은 수많은 활자로 웅숭깊은 세계를 내보낸다.

그 세계와 동거 동락한 작가로선(독자도 그러하겠고) 책을 버린다는 건

자신의 일부를 도려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버린다는 말이 잔인하니 정리한다는 말로 대신한다.

얼마 후면 이사를 한다.

정리해야 할 물건들이 많다.

우선 잘 쓰지도 않으면서 쟁여놓은 그릇들, 소품들, 그리고 책이다.

책을 정리하자니 속이 쓰리다.

언제까지 끌어안고 있을 것이냐고 질문을 하며 책장 앞을 서성인다.

책장뿐인가. 작은 틈이다 싶은 데엔 영락없이 책이 쌓여있다.

저 생명들, 어쩌면 좋나.

손에 닿은 책을 후르르 넘겨본다.

포스트잇이 단풍든 것처럼 알록달록 붙어있고, 밑줄 그은 데도 많다.

저 문장들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내 것이 되길 바라며 외우고자 했던 열정은 또 어떠한가.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책을 훑어본다.

월북 작가 전집이 책장 맨 꼭대기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내가 월북 작가를 연구할 것도 아닌데 무슨.

월북 작가 전집이 있는 아래 칸엔 오래 된 세계명작 전집이

역시나 먼지 속에서 골골거린다.

저 책은 아버지가 우리 형제들이 어렸을 때 사다 놓은 것이다.

책은 형제들한테 뿔뿔이 가고 내겐 대여섯 권이 전부다.

세로쓰기에 6포인트쯤 되나 싶은 글자 크기가 도저히 읽을 수 없다.

언젠가 카프카 수업을 들을 때 빼서 읽어본 적이 있는데 책벌레가 있어선지

볼따구니는 가렵고 기침도 나고 눈도 아물아물했다.

애지중지했던 저 책들도 포기하기로 한다.

그렇게 하나하나 이유를 대며 정리를 시작한다.

문학지들, 세로쓰기로 된 책들을 거실로 옮긴다.



그렇게 정리를 하며 살아남은 책들은

저자 사인이 있는 책과 인문학, 철학, 고전으로 일컫는 책이다.

그 책들이 나를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 언제 또 저 책들을 읽을 수 있을까.

책보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간다.

솔직히 불안하다.

책이 아니면 안 되었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책을 떠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 불쾌하게도 책이 스마트폰에 밀리기 시작한다.

불쾌하게도 실시간 정보를, 그것도 온갖 대답을 스마트폰이 해주고 있다.

사실 스마트폰이 알려주는 것도 활자다.

그러나 종이가 주는 활자의 그 정겨운 맛과 냄새는 주지 못한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며 글로 들어갈 수 있었던 그 호기심과 끌림은 주지 못한다.

책의 종말이 가까웠나.

아니, 책엔 종말이 없다.

전자책이 시공간을 넘어 독자를 끌어들인다 해도 아직은 전자책을 책이라고 인정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종이책, 오직 종이책이 책이라는 고집스러운 믿음은 지금도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책은 활자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거실에 내다놓은 책들을 바라본다.

곧 내 곁을 떠날 애정의 상징들.

속절없이 헤어져야 하는 관계에 책도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