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행복을 보았다네

유리벙커 2017. 11. 28. 00:42

우연찮게 눈에 띈 간장게장 집엘 갔다.

메뉴를 보니 한상차림은 일 인 11000, 무한리필은 3인과 4인과 5인의 값이 각각 다르다. 우리는 먹는 양이 작으므로 한상차림을 주문한다.

솥밥이 오고 게 찌개와 양념게장, 손질한 간장게장이 두 마리 나온다.

처음 온 집이라 음식이 나오기 전 다른 테이블을 둘러본다.

일회용 비닐장갑과 게 껍질을 뱉을 수 있는 스테인리스 통, 가위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 테이블엔 음식만 있을 뿐 비닐장갑도 스테인리스 통도 없다.

우리 바로 옆 테이블에선 사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녀가 아까부터 까르르 숨 넘어 가게 웃는다. 남에겐 워낙 신경을 쓰지 않는 터라 그런가보다 하며, 나는 중얼거린다. “왜 우리 테이블엔 가위도 통도 없지?” 그 말을 옆 테이블에서 들었는지 내 옆에 앉은 여자의 남편이 얼른 자기네 통을 먼저 쓰라고 건넨다. 나는 좀 놀라, 괜찮다며 갖다 달라고 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는 또 중얼거린다. “근데 비닐장갑도 없네.” 그 말을 또 옆 테이블에서 들었는지 나와 대각선으로 앉은 건너편 남자가 마침 끼고 있던 비닐장갑을 벗는 시늉을 하며, “이거 벗어드릴까요?” 그런다. 그러자 두 커플은 그게 그리 재미있는지 와하하 웃는다.

 

오랜만에 먹는 게장, 참 맛이 좋다.

열심히, 정말 열심히 먹다 말고 솥밥의 누룽지에 물을 부으려 물주전자를 찾는다. 바로 옆에 있던 물주전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 새 가져갔나? 나는 또 중얼거린다. “물을 부어야 하는데 주전자를 가져갔나 보네.” 그러자 대각선에 있던 남자가 또 자기네 테이블에 있던 주전자를 들어 내 솥에 부어주려 한다. 이런 세상에. 나는 내가 붓겠다, 그 남자는 자기가 부어주겠다, 그렇게 주전자 손잡이를 둘이 잡고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하는데, 옆 테이블에선 그게 또 우스운지 와하하 웃는다. 참 잘 웃는 커플들이다. 웃을 일도 아니건만 누군가 한 마디를 하면 넷이 다 웃는다.

누른 밥으로 식사를 끝내는 도중 김치가 모자란다. 서빙하는 여직원은 왔다갔다 바쁘고, 겨우 내 쪽으로 오자 김치를 리필한다. 옆 테이블에선 간장게장을 리필 한다. 테이블마다 손님이 꽉 차, 리필이 늦어진다. 다시 여직원이 우리 테이블 쪽으로 온다. 내가 리필을 요구할 할 새도 없이, 옆에 앉은 여자가 여직원에게 말한다. “여기 게장 리필 해 주고요, 저 테이블에도 김치 주세요.” , 감동.

대각선에 앉은 남자가 비닐장갑을 끼고 아내 그릇에 게를 꾹 짜 살을 몽땅 넣어준다. 그의 아내는 초록색 방울 달린 털모자에 도수가 제법 두꺼운 안경을 끼고 있다. 부부의 모습이 너무나 좋아 보인다. 그 아내가 우리 테이블을 돌아보며 혼잣말하듯 한다. “우리는 무한리필이라 우리 거 줘도 되겠네.” 업주 입장에서 보면 진상임에 틀림없겠지만 나는 그 마음에 또 감동한다.

누른 밥으로 식사를 마치는 순간, 갑자기 우리 접시에 간장게장 세 토막이 툭 떨어진다. 안경 낀 여자가 업주 몰래 놓은 것이다. 우리는 배가 불러 더는 먹을 수 없지만 먹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고맙다며 한 토막을 먹는다. 다 먹고 일어나며 커플들이 앉은 테이블에 인사한다. “잘 먹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간장게장 집을 나오며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서민 중의 서민으로 보이는 두 커플들의 웃음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누군가는 명품 백을 켜켜이 쌓아놓고도 신상 명품 백을 사지 못해 자신을 비하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한다하는 자리를 꿰차고도 자살을 한다.

두 커플은 명품 백을 몰라서가 아니라, 좋은 자리가 뭔지 몰라서가 아니라, 욕망을 조절할 줄 아는 신기하고도 탁월한 인자를 가진 듯하다. 아니, 인자가 아니라 인식의 방법이다. 알고 보면 행복은 별 게 아닌데 별 거인 거로 안다. 그래서 탈이 난다.

나는 요즘 탈이 나 있는 상태다.

이사 준비로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고, 까닭 없는 우울감에 매몰되어 있기도 하다.

그 와중에 그렇게 속 시원하게 웃는 웃음을 만난 것은 뭐랄까.... 행운이다.

웃음에도 인격이 있고 질이 있다.

속내를 감추며 웃는 웃음, 겉으로만 호탕하게 웃는 웃음, 웃어야 하니 웃는 웃음 등등. 나는 두 커플들처럼 웃는 웃음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없을 리야 있겠나. 그만큼 두 커플의 웃음은 웃음 자체로 신선했다는 말이다.

웃음은 배운다고 되는 건 아니겠지만, 배울 가치는 충분하다.

이 사실이 지금의 나를 조금은 토닥여주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