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설/독서감상문

<<도나 플로르와 그녀의 두 남편>>

유리벙커 2018. 8. 2. 12:52



이 책은 브라질 국민작가라 일컫는 조르지 아마두의 장편소설이다.

2008년 번역(오숙은 옮김) 되었으며, 아마두의 연보에 의하면 1965년에 집필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 책의 배경은 브라질의 사우바도르라는 도시로, 삼바의 성지나 다름없는 곳이다.

카니발이 한창인 때, 플로르의 남편 바지뉴는 여장을 하고 카니발을 즐긴다. 그는 난봉꾼이며 사기꾼이며 도박 중독자이며 섹스의 달인이다. 어느 일요일, 그는 광장에서 삼바를 추다 그 자리에서 죽는다. 플로르는 <풍미와 예술 요리 학교>를 열어 요리를 강습하며 남편 바지뉴를 먹여 살린다. 플로르의 엄마는 바지뉴를 증오하던 차, 잘 죽었다고 여기고, 사람들은 바지뉴의 죽음을 애통해 한다. 바지뉴의 평판이 그리 좋지 못한 것치곤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건 플로르다. 플로르는 요리학교에서 번 돈으로 바지뉴의 도박 빚이며 밑천을 대는 과정에서 폭언과 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바지뉴가 죽자 그와의 섹스가 사라진 것에 절망한다. 그렇다고 플로르가 섹스 중독자냐 하면 그렇지 않다.

하나씩 옷을 벗는 플로르와 바지뉴의 이야기를 보면, 전통과 자유에 관한 마찰을 읽을 수 있다. 처녀성을 강조하던 시대적 흐름(플로르로 대변할 수 있다)과 자유로운 섹스(바지뉴로 대변할 수 있다)만이 진정 사람으로 사는 것이라고 여기는 사고의 차이는 극명하다.

전통을 수호하는 사람들마저 바지뉴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것은, 자신들은 바지뉴처럼 살기를 원하나 그렇게 하지 못함에 대한 속내이자 바지뉴의 삶을 인정하는 것일 테다.

플로르는 이제 과부가 되어 사회가 원하는 과부 역할을 해낸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플로르를 칭찬하고, 플로르는 그러한 자신에 자부심을 갖는다. 그런 와중에도 주변 사람들이 재혼을 권한다. 플로르는 고상한 과부라는 사회적 평판을 의식해 재혼에 무관심 한다. 적어도 표면적으론 그렇다. 그러나 고상한 과부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플로르는 바지뉴가 열어줬던 성적 쾌락을 잊지 못해 시들어간다.

이때 닥터 테오도루 마두레이가 플로르에게 다가온다. 그는 약국을 경영하는 약사로, 플로르가 결혼하기 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미혼남이다. 그는 플로르가 기혼녀인 것조차 모른 채 짝사랑만 한다. 테오도루의 평판은 너무도 완벽하다. 대학을 나왔으며, 약국을 경영하며, 잘생겼으며, 인성 좋으며, 미혼이라는 이력. 플로르와 테오도루는 주변 사람들의 적극적인 간섭으로 결혼에 골인한다.

결혼 후, 테오도루는 일주일에 두 번 날을 정해 잠자리를 하자고 제의한다. 이유는 딱 하나, 플로르가 피곤해 할까봐서다. 그에 비해 플로르는 시도 때도 없이 격렬하게 안아주던 바지뉴를 그리워한다. 테오도루는 시계처럼 정확하게 잠자리 의무를 다하고, 아마추어 악단의 일원으로 악기를 연주한다. 플로르는 약사들의 모임과 악단 연주회에 참가하며 테오도루에게 응원을 보낸다. 플로르는 칭찬과 부러움을 한몸에 받지만 허전하고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한다. 그녀는 아무 때나 섹스를 하고, 섹스의 기쁨을 맛보게 해주던 바지뉴를 수시로 떠올린다.

플로르가 바지뉴를 애타게 그리워할 때 바지뉴의 혼이 나타난다. 바지뉴는 플로르에게 섹스를 하자며 달려들고, 플로르는 남편이 있는 몸이라 안 된다며 밀쳐낸다. 세상의 평판을 두려워하지만 결국 플로르는 바지뉴라는 혼과 섹스를 한다. 플로르는 세상이 다시 아름답고 즐거워진다.

 

내러티브는 간단하다. 그런데 두 권을 할애할 정도로 내용은 많다. 당시 브라질의 풍속과 도덕, 음식과 사고의 방향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마지막에 나오는 신들의 전쟁은, 근대로 표상되는 바지뉴와 근대지만 여전히 봉건적 사고를 지닌 테오도루, 봉건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정의 플로르를 암시한다. 인간에게 입력된 사고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듯, 내러티브가 흘러가는 내내 갈등과 정신적 투쟁은 넘쳐난다.

결혼 조건으로 풍족한 재산과 학력, 명예와 평판을 요구하는 사회적 생리는 비단 그 시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것에 딴지를 거는 게 바지뉴다. 조르지 아마두는 바지뉴를 등장시켜 플로르를 정복하는 것으로 이 시대를 해방시키려는 의지를 보인다. 바지뉴를 죽이고, 다시 살려내, 혼인지 육체인지 분간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프레임에 갇힌 플로르를 본래의 플로르로 전환시킨다.

이 소설은 하나의 주제만으로는 부족하다. 바지뉴를 통한 삼바나 도박이 주는 메타포(무질서, 행운, 낭만 등)와 닥터 테오도루를 통한 고전음악의 연주나 섹스 날짜 정하기(근대가 상징하는 질서), 플로르를 통한 여러 음식의 조리법과 대중음악의 선호(새 시대가 원하는 섹스와 자유)만 가지고도 주제를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다.

플로르라는 한 여자에게 남편이 둘이라는 사실에서, 인간의 이성과 감성은 한몸이라는, 아주 쉬운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그에 따른 인간의 이중적 본성 또한 탐색하기 어렵지 않다


끝으로 하나만 더.

<<배신>>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오스카 와일드는 평생에 걸쳐 딱 한 사람만 사랑하는 사람을 일컬어 '얄팍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는 "그 사람들이 신의 그리고 정절이라고 부르는 것을 나는 무기력한 관습 또는 상상력의 부재라 부른다"라고 말했다. 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