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설/독서감상문

<<에피 브리스트>>

유리벙커 2018. 8. 26. 17:19



에피 브리스트(문학동네)는 독일의 테어도어 폰타네의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시대와 국적이 다르지만 조루지 아마두의 도나 플로르와 그녀의 두 남편과 맥을 같이 한다. 사랑과 결혼, 혼외정사와 사회적 평판을 다루는 것이 그렇다.

이러한 문제가 어디 폰타네나 아마두의 시절에만 국한될까. 인간의 저변에 깔린 욕망은 시대를 떠나 거기서 거기이기에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어쩌면 현대가 더 할지도 모른다. 결혼 정보 업체를 통해 비용을 지불하고, 결혼 조건에 가장 적합한 대상을 선택하고, 그렇게 결혼 한 후 다른 이성과 사랑을 하는 따위. 조금 다른 게 있다면, 폰타네나 아마두의 시절에 비해 사회적 평판이 조금 가벼워졌다는 정도.

 

 

주인공 에피 브리스트는 좋은 가문의 귀족으로 17세 소녀다. 그녀는 시골 저택에서 가족과 친구들과 좋은 시절을 보낸다. 그때 엄마의 옛 남자친구이자 남작이며 군수인 게르트 폰 인슈테텐이 방문한다. 그의 방문 목적은 에피에게 청혼하려는 것. 에피의 엄마도 인슈테텐의 청혼을 적극 환영한다.(우리로선 분명, 이해하기 버거운 일이다) 이유는 에피의 엄마가 말하는 것에 있다. “너보다 나이가 많긴 하지만(38) 전체적으로 보면 좋은 거란다. 게다가 건실하고 지위도 있고 예절도 바른 사람이야. 네가 싫다고 하지 않으면, 엄만 우리 똑똑한 에피가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넌 스무 살에 벌써 다른 사람이 마흔에야 오를 수 있는 위치가 되는 거야. 네 엄마를 훨씬 앞지르는 거란다.”23.

에피는 인슈테텐이라는 사람에 끌리기보다 엄마의 말에 공감해 17세에 결혼한다.

인슈테텐은 결혼 후 에피에게 최선을 다한다. 에피 역시 그런 남편에게 큰 불만이 없다. 그런데 뭔가가 빠진 듯 허전하고 불안하다. 인슈테텐은 도나 플로르와 그녀의 두 남편에 나오는 두 번째 남편의 캐릭터로, 잠자리를 할 때도 예의를 다한다. 에피는 집에 있다 산책을 하는 정도로 하루를 보내고, 인슈테텐은 군수 일에 바빠 출장이 잦다. 그러던 중 에피는 남편 인슈테텐에게서 인슈테텐의 친구이자 소령으로 퇴역한 크람파스를 소개 받는다. 그들은 종종 바닷가로 승마를 간다. 크람파스는 여자들을 잘 다룰 줄 아는 인물로 바람기가 있다. 그는 에피와 둘이 있게 될 때 에피를 유혹하여 선을 넘는다. 인슈테텐은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출세를 위해 주변을 잘 관리한다. 그의 노력은 점점 성공의 길을 터주고 마침내 비스마르크의 초대를 받는다.

한편 에피는 양심의 가책과 갈등으로 인해 불안증세가 심해진다. 그러던 차 인슈테텐이 진급을 하면서 그 고장을 떠날 수 있는 계기가 온다. 그녀는 크람파스와 사랑놀이를 하던 그 고장을 떠날 수 있게 되자 안도한다. 에피는 베를린으로 이사하고, 인슈테텐은 군수 일을 마무리 한 후 베를린으로 가기로 한다.

그러던 중 인슈테텐은 우연한 기회에 크람파스가 에피에게 보낸 편지를 발견한다. 편지 내용으로 그간의 일을 알게 되자, 인슈테텐은 크람파스에게 결투를 신청한다.(당시엔 결투를 하는 게 정상이고, 하지 않는 게 오히려 비겁한 일이다.) 결투의 결과 크람파스는 죽고, 인슈테텐은 에피에게 이혼을 청한다. 비록 5년 전의 일이지만 인슈테텐 역시 사회적 명예와 평판을 두려워한 나머지 사회의 요구에 맞게 처신한 것이다.

그러기 전, 에피의 엄마는 에피보다 먼저 결투 소식을 접하곤 에피에게 편지를 보낸다. 친정에 올 필요도 없으며, 경제적 지원도 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에피는 절망한 나머지 베를린 집을 떠나 홀로 거리로 나선다. 초라한 집 방 한 칸을 얻어 지내는 동안 에피는 병이 깊어진다. 이에 에피의 엄마는 집으로 오라고 하고, 에피는 친정으로 간다. 친정에서 생활하면서 에피는 비로소 편안하고 행복해한다. 그러나 병세는 깊어져 죽고 만다.

여기까지가 에피 브리스트의 이야기다.

1800년 대 중반의 소설이지만, 이러한 네러티브의 소설은 앞으로도 비슷한 버전으로 진행될 것이다. 인간의 속성과 사회의 속성이 다를진대, 그에 맞붙는 이야기는 해결할 수 없다는 전제를 가진 이상 생명력이 강하다. 인슈테텐이 결투의 증인으로 뷜러스도르프를 청할 때 뷜러스도르프의 말은 이러한 사실을 증명한다. “세상은 일단 이런 모습이고, 일은 우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돌아갑니다.”328. “우리의 명예 숭배는 우상 숭배지만, 우상이 인정받는 한 우리는 그것을 따라야 합니다.”329.

이 책의 번역자 한미희의 해설에 따르면 폰타네는 또한 역사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프로이센 귀족의 편협하고 오만하고 고루한 점을 비판하면서도 그들에게 인간적인 공감과 미학적인 애정을 갖고 있었다.”417. 고 말한다. “그의 소설은 마음의 순수한 요구를 따르려는 사람은 사회의 인습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소설에서는 사회의 인습이 승리를 거두지만 이미 사회는 도덕적인 힘을 상실한 부당한 것으로 폭로된다.”417. 고 덧붙인다.

 

 

폰타네가 제목을 에피 브리스트라고 정한 것에는 의미가 있다. 결혼을 하면 남편의 성을 써야 하는데(여기서는 게르트라는 성) 결혼 전의 가문인 브리스트를 쓴 것은, 인습보다는 태어날 때의 존재, 사회적 조건이 들러붙기 전의 존재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 인간의 존재는 흠이 있든 없든 존재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메시지다.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 420쪽에 나와 있다.
폰타네는 18951010일 한 편지에서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자연성을 높이 평가하고 자신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은 그들의 미덕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인간성, 즉 그들의 약점과 결점 때문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에피의 아빠가 말하는 대목도 그렇다. “인간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오.”413.

 

 

대단하지 않지만 대단하기도 한 존재가 인간은 아닐까. 에피가 혹은 에피의 엄마나 당대 사람들이 목숨보다 더 중요시했던 사회적 풍습이나 명예가 화려한 겉옷이라면, 그 겉옷을 쟁취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 혹은 살아내는 것이 인생은 아닐까. 속절없음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게 인생의 본성은 아닐까. 그래서, 대단하지 않지만 대단하기도 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