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
임헌영 평론가가 2020년에 펴낸 평론집.
이 평론집은 평론집이라는 다소 어렵고 딱딱하다는 편견을 깬, 대단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다. 누구라도 읽을 수 있게 서술 스타일이 참으로 대중적이다. 이 말은 접근하기 쉽다는 뜻인데, 그만큼 내용 면에서도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라는 실감을 준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모르는 세대들, 6.25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나 같은 세대들이 읽으면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이 책은 여러 작가들이 쓴 소설로 당시의 국내 사정과 국제 정세를 까발린다. 당시를 몰랐던 사람들에겐, 일제강점기와 6.25, 그 후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이 지배하던 때가 어떠했는지를 알게 한다. 어째서 지금의 정치권이 바뀌기 어려운지, 일제 청산은 왜 해야만 하고 이렇게 더딘지, 우리나라가 어떤 이유로 분단이 되어야 했는지, 소설들은 구구절절 파헤친다.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한다 해도 500쪽이 넘는 분량을 정리하기에는 힘이 달린다. 해서, 두 분의 작품과 작품에 수록된 내용을 발췌해 적기로 한다.
최인훈의 『광장』 편. 『광장』은 너무도 유명한 작품이고, 평론한 글도 많다. 임헌영 평론가는 발표된 평론과는 조금 다른 평론을 제시하면서 최인훈을 처음 만나게 된 계기와 그때의 문인들을 거론한다. 수업을 듣다 보면 수업의 내용보다 곁가지가 더 재미난 법. 임헌영 평론가의 사담에 가까운 이야기는, 왜 『광장』이 나오게 됐는지, 『광장』을 통해 최인훈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독자로선 훌륭한 가이드가 된다.
임헌영 평론가가 말하는 최인훈은 이렇다.
“우리 시대의 정치를 가장 신랄하게 까놓고 조롱조로 비판한 작가는 최인훈이다.” -4쪽. “그는 한국의 정치인들이 우리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고 냉철하게 폭로했다.” -5쪽. 그러면서 『갇힌 세대』 동인들과 효창원을 찾아가는 길에 했던 말을 옮긴다. “만약 김구가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다른 일은 몰라도 자그마치 친일파에 대한 태도만은 철저했을 거야.”-109쪽. 이어서 “이승만의 김구 콤플렉스를 지우려는 추악한 야욕의 결과물인 이 반역사적인 작태는 친일파 박정희에게 그대로 계승되어 효창원 묘소를 옮기려고 시도(1962)했으나 좌절당했다.” -110쪽. “최인훈의 입장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구절”-119쪽. 에선 ““그들이 반도인의 안녕보다 소련 공산당의 긴장 격화 정책에 충실했던 때문”에 한국전쟁을 유발했다고 작가는 풀이해준다. 이 대목은 1960년대 한국의 지성사에서 이뤄졌던 세계사 인식에서 단연 돋보이는 구절이다. 한국전쟁의 여러 가지 발발 원인 중에서 소련이 동유럽 공산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미국의 시선을 한반도에 묶어두려는 스탈린의 고도의 음모론이라는 설은 1980년대 후반기야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최인훈의 국제정치에 대한 감각이 이처럼 예민했기 때문에 “반도의 매판정권들은 항상 제 백성들을 잡았던 것“(1-85)이며 ”그들은 정치적 음치이며 풍문에 사는 자들이며 현장에 있으면서 없는 자들이며 이목구비가 있으면서 죽은 자들이며 다시 말하면 반도인들입니다.“(1-86)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게 된다.”-119쪽.
요즘 태극기부대를 보면 역사의식이란 눈 씻고 봐도 없는데, 그들에게 여기에 적힌 글을 보여주고 싶다. “조선이 근대화 운동으로 개화할 찰나에 일본은 식민지화하여 그 발전을 막아버렸다. 분단 이후 남북한 그 어디서든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건 일본의 재앙이라는 게 총독의 역사인식이다.” -121쪽. “일본으로서는 김일성 체제가 안전해야 반도의 분단이 굳어지기 때문에 북한은 일본제국에 도움이 된다고 결론 내렸다.”-123쪽. 최인훈 역시 “후진국들의 정부는 자기 국민을 적에게 파는 정부, 그것이 최악의 정부”(「주석의 소리」, 『최인훈 전집』9,60쪽.) -126쪽. 라고 말한다.
이쯤만 봐도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 우리의 정치가 어떤 틀에 의해 움직였는가를 여실히 볼 수 있다. 그에 따른 문인들의 글 작업 역시 녹록치 않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어 이병주 편. 임헌영 평론가는 이병주에 대한 평가를 둘로 나눈다. 하나는 사마천관, 다른 하나는 마키아벨리관. “이병주문학의 핵심은 정치 이데올로기와 국가 권력에 대한 집중적인 분석에 있다. 여기서 그는 인본주의자로서의 휴머니즘에 입각하면서 교양주의적인 양비론자의 태도를 취한다.”-209쪽. 임헌영 평론가가 본 이병주는, 이승만은 지지하면서 유독 박정희만은 비판한다고 본다.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 강한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끈덕진 나라다. 미국은 지길 싫어하는 나라다. 미국은 언제든 전쟁을 필요로 하는 나라다.” (「지리산」)라는 논리의 연장선에서 남한에서의 민족운동 전체를 비관적으로 썼다. 이 작가는 그런 미국에다 줄을 댄 이승만의 선견성을 적극 지지하는데, 그의 집권 이유로는 무엇보다 마키아벨리즘적인 원숙성에서 찾고 있다. “정세를 이용하는 영리함”의 단계를 훌쩍 뛰어넘어 “정세를 만들어 나가는 용기”(『남로당』)를 가진 인물이라는 평가는 마키아벨리스트로서의 이승만의 참모습을 드러낸 표현이다. 이런 논리의 연장선에서 이병주는 8.15 직후의 많은 암살사건조차도 “이승만 씨가 직접 조종한 것은 아닌” 다만 “과잉 충성하는 놈들이 이승만의 의중을 대강 짐작하고 저지른 노릇”으로 관대하게 풀이(『산하』)해주며, 그의 피 묻은 추악한 손을 씻어주고자 진력한다. 바로 이병주 소설의 한계다.” -213쪽. 또한 이병주가 전두환을 옹호하는 대목에선 “이병주의 모든 글 중에서 최하급의 졸문으로 전두환을 추켜대는데”-214쪽. 부분은 이병주의 면면이 어떻게 정치와 맞물리는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저자가 이병주를 높이 평가하고 널리 읽히기를 바라는 까닭은 박정희 신화에 대한 가장 신뢰할 만한 정보와 재미있는 기록들을 남겼기 때문이다.”-215쪽.
유독 박정희에 대해서만큼은 “사사건건 비판의 칼을 들이대는 자세며”-214쪽.에서는 이병주의 과거 전력이 숨어 있음을 암시한다. 이병주는 부산의 『국제신보』 상임논설위원이던 시절 박정희를 만난다. 박정희가 부산군수기지사령부 사령관 때고, 이승만이 독재 정치를 하던 때다. 이병주와 박정희가 술친구로 지내던 중, 이승만이 물러난다. 그때 이병주는 이승만에 대해 호의적으로 사설을 쓰고, 박정희는 그 사설을 빌미로 이병주를 투옥한다. 이병주는 옥고를 치른 후 집념에 가깝게 박정희에 대해 낱낱이 까발린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그’를 버린 여인』이다. “여기서 ‘그’는 박정희이고, ‘그’를 버린 여인은 그의 두 번째 동거녀이다.”-233쪽. “이병주에게 ‘그’는 한 개인이 아니다.” “‘그’가 없었더라면 세상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작가의 말」 라고 작가는 개탄한다. 여기서 ‘이렇게’란 오늘의 한국사회가 지닌 모든 비극적이고 부정적인 요소들을 통섭하는 지극히 비판적인 술어로 박정희가 남긴 부정적인 정치 유산 전체에 대한 전반적인 거부의식을 상징한다.“ -233쪽.
소설은 박정희의 여성편력과 성폭력에 가까운 일화들, 독립투사를 비하하는 일들이 나오고, 여순사건으로 사형수로 전락한 박정희가 나온다. 박정희와 동거하던 여자는 박정희의 굴레에서 도망치지만 사형 당하게 생긴 박정희를 외면하지 못한다. 동거녀가 진술을 잘 해줌으로 박정희는 간신히 사형을 면한다. 그렇게 살아난 박정희는 5.16 쿠데타를 감행하여 대통령에 취임한다. 이에 외국차관 브로커였던 차명환은 “5.16쿠데타가 한국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이렇게 예측했다. 첫째, 교육이 불가능하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권력만 잡아놓으면 그만인 풍토 속에서 어떻게 교육이 가능하겠는가. 앞으로 학원은 난장판이 된다. 둘째, 정직한 사업가가 기를 쓸 수가 없다. 권력자에 아부가히만 하면 일확천금이 문제 아니게 될 텐데 바보 아닌 바에야 정직한 기업에 힘쓰겠는가. 앞으로 재개의판도가 크게 달라진다. 셋째, 부정부패가 극심할 정도가 된다. 도의와 윤리가 근본에서부터 유린당한 마당에 공무원이 무엇을 바탕으로 청렴할 수 있겠는가. 좋은 자리에 있을 때 한 밑천 장만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창궐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넷째, 강도적 원리가 이 나라를 휩쓸고 있고 앞으로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중150)” -257쪽 덧붙여 최명환은 “5.16쿠데타 세력은 ”인계할 수도 양도할 수도 없고, 심지어는 후계자도 만들 수 없는 정권이 바로 이 정권“이란 것이다.” “이렇게 따져볼 때 ”그 사람에게 교양이 있다면 그 전부가 일본에서 얻은 것이고 그 사람에게 무슨 비전이 있다면 모두 일본을 본받을 것입니다.“-258쪽. ”이 정권은 ‘그’가 죽지 않고는 내놓을 정권이 아니라구.“ -259쪽.
김재규가 박정희를 시해해 유신체제의 막을 내린 것은, 신이 도왔다고 할 정도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병주는 영국인 기자 프레데릭 조스와 각별한 사이인데, 조스는 이런 말을 한다. “쿠데타를 혁명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우습지만 쿠데타가 없었더라면 과연 코리아는 망했을까? 정치에 있어서의 도의란 좋으나 궂으나 헌정을 지키는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닌가.” -280쪽. “애국심과 양심에 의해 일으킨 쿠데타는 거의 없었다.” -283쪽. “쿠데타란 ”그 사람이 죽든지, 또 다른 쿠데타가 발생해서 성공하든지 하는 일이 없는 한 영구집권“하게 될 거란 충고와”-284쪽.
임헌영 평론가 역시 “쿠데타란 독재자를 창출해내는 폭력구조이여, 독재란 한 나라에 애국자는 한 사람밖에 없도록 만드는 공포분위기에 다름 아니다”라고 일갈한다.
이 외에도 여러 작가가 소설로 시대를 통탄하며 통매한다. 장용학, 이호철, 박완서, 남정현, 황석영, 손석춘, 조정래, 박화성, 한무숙이 그렇다. 그분들은 암울하고 고통스러웠던 시대를, 탁류에 흔들리면서도 기어이 뿌리를 지킨 수초처럼, 도의와 정의가 무엇인지 밝힌다.
나는 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일 것이다. 역사를 알자. 흔히 하는 말 같지만, 왜 역사를 알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 책은 통렬하다. 나 또한 저자가 희망했던 대로 “이 책이 널리 알려지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