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사는 건 운전하는 것과 같아야

유리벙커 2020. 8. 28. 12:45

보편적 미덕엔 폭력이 들어 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친구가 곧잘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사람을 좋아해서 만나는 게 좋은데, 너는 사람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

그 말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내가 너를 자주 만나고 싶어 하듯, 너도 나를 자주 만나고 싶어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다른 하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인간성이 따뜻한데 사람과 섞이길 안 좋아하는 사람은 인간성이 별로라는 말이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예전엔 그런 마인드가 보편적이었다.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은 정을 맞고, 이 사람 저 사람과 두루두루 어울릴 줄 아는 사람은 인간성 좋은 사람으로 여겼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이치다.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이치다. 이 자연스러움이 한쪽으로 쏠리면 문제가 발생한다. , 사람은 사람을 좋아해야 사람이라는 등식이다. 우리의 내면은 알게 모르게 이 등식에 잠식당해왔다. 과연, 사람을 좋아해야만 좋은 사람에 속할까? 사람에 멀미가 난 사람은 인간성도 싸가지 일까?

 

 

사람과의 관계는, 자동차를 운전할 때와 다르지 않다.

처음 사람을 사귈 때는 자동차에 시동을 거는 것과 같다. 그 다음엔 주행을 한다. 관계는 무난하게 이어진다. 그러다 차선을 변경할 때가 온다. , 이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을 사귀기도 하고 자신만의 일로 돌아가기도 한다.

이때 왜 직진만 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건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폭력이다. 상대는 내 뜻과 같아야 한다는 일종의 횡포다. 운행 중에는 우회전과 좌회전, 유턴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이때를 놓치면 멀리 돌아가거나 길을 잃거나 신경이 피곤해진다. 사람의 관계도 때가 되면 쉬어가야 한다.

쉬어가기, 적색등.

운행 중 적색등이 들어오면 정지를 한다. 옆 차도 보고 뒤 차도 보고, 내 차에 기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보라는 뜻이다. 무작정 달리기만 하는 차는 엔진에 무리가 오기도 하거니와 운전자의 피로도를 높인다.

사람의 관계에서 무작정 직진은, 관계를 지치게 한다.

지인 중 한 사람은 자신과 가까운 사이일수록 트러블이 없어야 하며 늘 반듯하고 좋아야 한다고 믿는다. 한마디로 직진형이다. 직진형은 상대도 자신처럼 직진형이길 바란다. 이때 상대가 적색등을 켜고 관계를 쉬어가길 바라면, 직진형 사람은 상대가 잠수를 탔다고 분노한다. 자동차로 치면 접촉사고다. 누가 일부러, 계획적으로, 접촉사고를 내고 추돌을 하고 싶을까. 잘 운행한다고 해도 상대가 혹은 내가 추돌을 하기도 하고, 주차하다 남의 차를 긁기도 한다. 운전면허증을 딴 후 단 한 번도 사고를 내지 않은 운전자는 없다. 사람과 사귀는 걸 운전면허증에 빗대면 답은 쉽다. 쉬어가기.

상대가 쉬어가기를 거부하거나 꺼려하면, 그 차는 운행을 중단하거나 팔수밖에 없다. 최악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서로 맞지 않을 땐 거리를 두는 게 좋다. 너무 밀착된 관계는 상처를 준다. 알게 모르게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면서 고유의 영역을 침범하게 된다. 좋을 때야 내가 네가 돼서 좋지만, 조금이라도 사이가 벌어지면 그래서 좋았던 것들그래서 나쁨이 되고 만다.

 

쉬어가기는 시간의 문제다.

상대가 쉬어가기를 택했다면 기다려줘야 한다. 배려다. 배려의 최고 덕목은 기다림이다. 기다림이야말로 상대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상대를 신뢰한다고 하면서, 상대의 쉼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신뢰도 배려도 아니다.

인간의 마음은 잡을 수 없는 파도다. 고정시킨다는 게 불가능하다. 붙잡았나 하면 파도처럼 밀려가고, 멀어졌나 하면 다가오는 게 사람 마음이다.

너는 언제 떠날지 몰라 늘 불안해.” 이러한 말은 내 불안을 상대에게 전가시키면서 상대를 자신의 프레임에 가두겠다는 욕망이자 구속이다.

신뢰에도 여러 가닥이 있고, 배려에도 여러 가닥이 있다. 어느 부분은 신뢰하지만 어느 부분은 신뢰하지 못한다. 어느 부분은 배려할 수 있지만 어느 부분은 배려할 수 없기도 하다. 한마디로 전적인 신뢰는 존재하기 어렵다. 극단적인 비유이긴 하나 예를 들어, 친구를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자신의 아내를 친구가 묵는 호텔에 보낼 수 있을까? 친구를 전적으로 배려한다고 알거지가 된 친구에게 내 집을 줄 수 있을까? 신뢰나 배려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낼 때는 신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