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부탁』의 사소하지 않음에 대하여
황현산 평론가의 『사소한 부탁』은 사소하지 않다. 사소한 일상을 사소하지 않게, 다른 말로 하면 감동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나로선 이렇게 고마운 책도 있나 감탄한다. 먹기 아까운 음식은 조금씩, 야금야금 먹듯, 이 책이 그렇다. 옆에 끼고 몇 챕터씩 야금야금 읽는 재미가 고소하다 못해 소중하다.
예를 들어, <오리찜 먹는 법>에 보면, 오리찜은 두 손을 적셔가며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축제의 음식을 먹는 자는 마땅히 두 손을 적셔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먹는 음식을 우리와 하나 되게 하는 것이며, 우리가 거둔 곡식과 채소, 우리가 잡은 짐승들에게 속죄하는 길이다.” “오리는 내놓고 죽어 우리 손에 있는데 어찌 우리가 옷이 젖는 걸 관계하랴. 어찌 속죄가 없이 행복하랴.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자신이 살해한 생명들과 자기가 먹는 음식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려는 우리가 두렵다.”
위의 말은 단순한 듯하나 심오하다. 단순하게 보면, 방송 곳곳에 나오는 먹방 프로에 한방 먹이는 말이겠으나, 그보다 생명에 관한 속죄의식에 방점을 찍는다. 세월호와 요즘 나온 전 대통령 사면 건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점은 독자의 몫으로 돌리고, 황현산 선생님은 오리찜 먹는 법을 책 읽기와 연계한다. “우리는 우리가 읽는 것에 우리를 다 바쳐야 한다. 그때 넘어진 우리는 새사람이 되어 일어난다.”
다른 하나를 보자. <표절에 관하여>에는 글쓰기의 욕망과 표절의 관계, 작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한다.
“사르트르의 말을 빌린다면, 창조의 의지는 정복의 의지와 같다. 창조는 우리가 손님으로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어떤 풍경 하나를 만들어 덧붙임으로써 제한된 시공에서나마 이 세상의 주인으로 행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표절을 말한다) 한 작가의 윤리와 작가 의식을 부정하는 것이며, 그 작가의 작가 됨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 의식은 어떤 경우에도 작가를 지켜줄 마지막 보루이기에 작가 의식이 없는 작가는 상상할 수 없다.”
“표절 사태가 불거지가 어느 전직 대학교수가 신경숙 씨를 ‘업무상 방해와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였다. 이는 문단의 자정 능력을 의심하는 데서 나아가 문학의 기능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 된다. 문학은 아무리 세속화하였다 하더라도 전통적으로 주류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기능을 제일의 기능으로 삼는다. 표절 시비를 국가 제도의 판단에 넘긴다는 것은 주류 권력과 이데올리기의 손에 넘기는 것과 같다.”
“왜 최초에 작가가 되려고 했는지, 자신에게 글쓰기의 진정한 동력이 되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
이번엔 <문단 내 성추행과 등단 비리>에 관한 챕터로 넘어가보자. 문단도 사람이 활동하는 데니 성추행이 없을 수 없겠지만, 글(즉, 마음과 정신)을 연구하고 쓰는 사람들이 부끄러움도 없이, 거의 떳떳한 수준으로 성추행을 했다는 사실은 반드시 되짚어 통매해야 할 일이다.
위 챕터를 요약하면, “문학에 뜻을 둔 ‘습작생들’을 대상으로” 한 선생의 성추행은 “학생을 식민화하려는 시도”이며 “가르치는 자는 지배하는 자가 아니며, 배우는 자는 지배받는 자가 아니다. 그 관계가 민주적일 때만 교육의 내용도 민주적 가치를 얻게 된다.” “문학은 한 시대의 윤리적 인습에 굴복하거나 봉사하지 않기에, 그 윤리의 뿌리와 현재적 의의를 성찰하는 여유를 확보한다. 그래서 문학은 근본적으로 윤리적이며 생생하게 윤리적이다” “권력은 늘 부당한 압력을 부를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에 덧붙여 등단 제도에 관한 방식과 등단 제도의 허점, 그리고 대안을 제시한다.
대개가 알고 있듯이, 이 챕터에 나온 등단 제도를 요약하면 이렇다.
1, 신춘문예로 등단하기(가장 화려하다)
2, 문학잡지의 신인상으로 등단하기(신춘문예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발표 지면이 있어서 실속이 있다)
3, 기성 문인들의 추천으로 등단하기
4, 자비로 단행본을 출간하며 등단하기(좋은 길이지만 비범하거나 운 좋은 작품이 아니라면 언급해주는 매체가 없어 성공하기 어렵다)
나 역시 등단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경험은 하도 가슴이 아파 등단 제도에 관해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챕터엔 그러한 마음들을 일부 대변해주기도 한다.
“등단 제도는 신인들에게 활동의 기회를 마련해주고 독자의 관심을 모아주는 제도이지만 한편으로는 평가하기 어려운 재능을 지닌 사람들에게 그 능력의 발휘를 막아버리는 제도일 수도 있다. 그리고 늘 공평한 것도 아니다.” “아마도 가장 공평한 등단은 등단 제도가 없는 등단일 것이다. 야심 있는 신인들이 출판사에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를 보내고, 출판사가 마음에 드는 원고를 골라 책을 출판하는 방식은 특별히 공정함을 요구하지 않아도 공정하기 마련이다. 출판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출판사는 상업적 전망이 있거나 출판사의 명성을 높일 수 있는 훌륭한 원고가 아니라면 출판하지 않을 것이다.”
겪은 바에 의하면, 현실적으로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 등단하는 일도 쉽지만은 않다. 출판사마다 지향점이 각각이다 보니, 출판사의 성향을 제대로 꿰어 그에 맞는 원고를 보내야 한다는 제한이 따른다.
전체적으로 보면, 등단 제도는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괴롭힌다. 물론 자격을 고르는 일이라 필요하긴 하나, ‘자신만의 글쓰기’에 제동을 거는 제도이기도 하다.
이 챕터의 마무리로 들어가 보자. “정신과 육체의 식민화 시도도, 등단 · 비등단을 칼같이 가르는 등단 제도도 모두 남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는 열등감 문화의 소산이다.”
마지막 말이 화살로 박힌다. 등단 제도도 제도권이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작가가 된다는 것은 제도권에 편입되었다는 뜻일 터다. 과연, 그 어려운 문턱을 넘은 작가들은, 진정성 있는 글쓰기에 성공하고 있을까. 나는 작가입네 하고 영혼을 털어버린 말이나 흘리고 다니지는 않을까. ‘작가되기’에는 이렇듯 현실적인 어려움과 자기 성찰의 고단함이 자리하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