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설/독서감상문

『페스트』의 전언

유리벙커 2022. 1. 26. 21:26

카뮈가 페스트를 발간한 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1947년이다. 카뮈야말로 전쟁의 고통을 겪었고, 그로 인한 인간의 파괴를 여실히 느꼈을 터다. 페스트는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그 지역에 퍼지기 시작한 페스트와의 투쟁을 그린 것이나, 1,2차 세계대전이 메타포인 것만은 여실하다. 페스트균에 의해 도시는 폐쇄되고 그에 따른 생이별, 도시에 갇힌 감옥살이, 저항과 무기력의 과정은, 전쟁과 페스트균을 동일 선상에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은 서술자라는 호칭으로 전개된다. 어느 특정 인물을 주인공으로 정하지 않고 서술자를 택한 것은, 페스트는 보통의 누구라도 겪을 수 있으며, 겪고 있으며, 누구라도 서술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따라서 서술자의 입을 통해 바라본 페스트의 상황은, 전쟁을 겪는 모든 사람의 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입을 통해 나오는 캐릭터들은 의사 리유, 파늘루 신부, 신문기자 랑베르, 개인 기록자 타루, 관료들, 그리고 거리의 상점과 도시민들의 반응이다.

당대는 쥐벼룩에 의한 페스트지만, 지금은 이름만 바뀐 코로나19이며 오미크론이다. 현재 오미크론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페스트에 나오는 과정과 너무나 닮아 있다. 처음엔 몇몇이 고열과 출혈을 동반한 죽음으로 시작되고, 의사도 일반인도 딱히 원인을 알지 못한다. 그러다 죽는 숫자가 늘어나면서 페스트를 의심하게 된다. 그래도 의사들과 시민들은 감히, 페스트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못한다. 그만큼 위험한 전염병이라는 것을 안다는 반증이겠다.

죽는 사람의 수가 점차 늘어나자 나중엔 아예 숫자로 기록된다. 관료들은 숫자가 증가하지만 무사안일주의로 나가고 매뉴얼만 읊어댄다. 의사 리유는 병자를 방문하고 치료에 최선을 다하지만, 관료들의 완고한 벽은 뛰어넘지 못한다. 결국 죽는 숫자가 늘어나 시신을 묻을 자리조차 어렵게 되자 도시는 폐쇄된다. 잠시 업무 상 일로 왔던 사람들(대표적인 인물로 신문기자 랑베르가 있다)은 생이별을 당한 채 오랑에 묶여버린다. 랑베르는, 자신은 여기 시민이 아니니 프랑스로 가야 한다고 동분서주 알아보지만 돌아오는 답은, 어느 누구도 예외는 없다는 방침만 거듭된다. 그러던 중 초소 지킴이에게 돈을 주기로 하고 몰래 탈출을 시도하는데, 탈출이 성사되는 순간, 랑베르는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272)이라고 고백하며 탈출을 포기한다. 그런 후 기록자 타루가 자체적으로 만든 자원 보건대에 합류해 페스트 환자를 케어 한다.

신부 파늘루는 설교를 통해, 페스트는 하나님이 주신 고난이며, 그런 고난을 통과해야 하나님의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쯤으로 말한다. 이런 과제야말로 우리 인간의 존재를 깨우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그저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에 의사 리유는, 병은 있고, 병은 그저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고쳐야 한다고 반박한다. 파늘루 신부는 어린아이가 페스트로 고통스레 죽는 것을 목격하면서 자신의 설교를 반성하며 자원 보건대에 합류한다.

기록자 타루는, 사소한 것일지라도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어느 면에서 페스트는 타루의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다. 열여덟 살 때 타루는 판사인 아버지가 보잘 것 없는 어느 나약한 남자에게 사형을 언도하는 것을 목격한다. 이에 타루는 한 생명이 법관의 손에서 살인이 저질러진다고 여긴다. 타루는 아버지에게 충격을 받고 가출한다. 타루가 페스트를 대하는 행동을 보면 그는 천성적으로 모럴리스트이자 혁명가이다. , 전염병에 맞서 기약 없는 투쟁을 하고 병자를 보살핀다. 의사 리유과 타루는 행동을 같이 하며 친구가 된다. 그러나 타루 역시 페스트에 걸려 사망한다.

 

페스트는 코로나19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유행병이 발발하는 시점에서 시민들의 반응은 예민하다. 페스트가 만연해자 시민들은 페스트에 무관심해진다. 그렇게 도시는 폐쇄되고 물가는 오르고 생필품은 턱없이 부족해진다. 시민들은 페스트에 긴 시간 노출되자 견디지 못한다. 쓸 데도 없는 사치품에 돈을 펑펑 쓰며 허기진 영혼을 달래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신경병으로 미쳐버리는 사람도 생긴다.

봄에 발생했던 페스트가 겨울이 되자 주춤해진다. 사람들은 기뻐한다. 그러나 페스트는 생각지도 않던 데서 다시 발발하고, 혹은 치고 빠지며 사람들을 혼란시킨다. 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자 페스트는 멎고 도시는 개방된다. 사람들은 생이별과 감옥살이를 끝내고 서로를 얼싸 안는다.

 

보이지 않는 적은 보이는 적보다 무섭다. 어떤 방식으로 저항하며 대처해야 할지 알 길이 없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인생은 페스트이며 코로나19. 또한 우리는 잠재적 페스트 보균자이며 코로나19 보균자이다. 언제 어느 때 보이지 않는 적/균에 제거될 것인지, 어떻게 싸워 이겨내야 할 것인지, 내안에서 나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어쩌면 페스트나 코로나19와도 같은, 보이지 않는 강력한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 페스트의 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