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날들의 기록>>
이 책은 ‘철학자 김진영의 마음 일기’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쓴 일기 형식으로 생활에서 보고 느낀 것도 있지만
아포리즘도 있다.
책장을 열자 첫 문장부터 눈을 사로잡는다.
“눈이 내리면서 가르쳐주는 것. 고요히 사라지는 법.”
; 이 문장에서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윤리의 한편을 전달받는다.
2월에 쓴 문장.
“노예란 누구인가? 그는 혀가 잘린 사람이다.”(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 나를 포함해 바른 말을 해야 할 순간에 바른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꾸짖는 존엄한 목소리를 듣는다.
다른 문장.
“멜랑콜리는 우울이 아니다. 특별한 정신의 상태다.”
; 흔히 쓰는 우울증, 우울감에 대한 특별한 대우를 받는 느낌이 든다.
생활에서 겪는 솔직한 이야기도 있다.
“눈뜨면 나보다 먼저 깨어나 기다리는 얼굴들. 이 지겨운 타자들. 그렇게 나는 아침마다 지옥으로 끌려 내려온다.”
; 가장의 무게, 직장인들의 무게, 더불어 코드에 맞춰 살기 싫은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무게가 조금은 위로를 받는다.
이발하는 장면은 우리의 마음을 콕 찍어 대변한다.
(앞부분 생략) “조금만 자르라고 부탁해도 이 ‘조금만’의 기준이 미용사에게는 다르다. 가위를 들면 ‘적어도 이만큼’은 잘라내야 하는 무의식적 욕망이 미용사에게는 있는 걸까. (중략) 어떤 일이든 누군가에게 나를 맡겨야 하는 상황은 결코 만족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중략) 머리 깎기는 무방비 상태의 타율적 상황으로 자기를 방기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중략) 어쨌든 머리카락은 다시 자란다. 자라서 원상 복귀가 된다. 아, 인생도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 자신의 머리칼을 온전히, 자신의 마음에 맞게 자르는 사람은 없을 터. 사람도 선택의 여지없이 인생이라는 틀에 더부살이한다. 남으면 남아서 부족하고, 부족하면 부족해서 시달린다. 머리칼(혹은 인생)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늦은 밤 자신의 손바닥을 보며 느낀 이야기 하나.
(앞부분 생략) “손바닥에 파인 굵고 가는 선들. 무엇을 그토록 움켜잡으려 했기에 이 가엾은 자국들은 이렇게 깊이 살들 속으로 파고들어야 했을까.”
; 손금을 욕망의 선으로 본 시선이 서늘하다. 작고 여린 손금은 어느 새 나이를 먹어가며 굵어지고 주름진다. 욕망의 시작은 작지만 결국엔 자신의 살을 파고 든다는 사실을 배운다.
마음을 온통 사로잡은 글도 있다.
“상실감은 히스테리를 불러낸다. 당연한 일이다. 이런 삶의 구조 안에서는 모든 상실들이 부당하고 억울한 것일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부드러운 상실감’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더 이상 악착같이 붙들지 않기. 더 이상 못 잊어서 애태우지 않기. 더 이상 집요하게 회복하려고 하지 않기. 그냥 놓아 보내기. 떠난 것을 떠남의 장소에 머물게 하기. 그렇게 부드럽게 상실하기 – 그렇게 상실을 기억하고 성찰하면서 자기를 유지하기.”
; 이 문장을 수없이 읽는다. 인간관계는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 없는, 딜레마다. 해서 ‘부드러운 상실감’이 필요한 것일 테다.
현재 2010년의 일기까지 읽었으나 『조용한 날들의 기록』은 모두와 공유하고픈 마음이 크다.
그분의 강의를 듣던 내내 마음은 진동했다. 문학작품과 철학을 통해 세계를 보는 넓이는 다양했고, 섬세했으며, 깊었다. 나와 내 작품을 돌아보며 좌절과 극복을 동시에 갖기도 했다. ....... 김진영 선생님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