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벙커 2023. 11. 27. 11:05

바깥 풍경

 

그는 불어와 철학을 공부했으며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에선 모 대학에서 미학을 강의한다. 대학 외 여러 인문학 기관에선 철학 이론을 바탕으로 문학 강의를 한다. 그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교수로 알고 있다. 그는 멜랑콜리하며 센티멘털하다. 그의 형은 스물 몇인가에 죽었다. 그 일이 그를 멜랑콜리한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혹은 태어날 때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쓴 산문집에는 형의 이야기가 몇 꼭지 나오고, 여자 이야기는 수십 꼭지에 달한다. 그를 콕 집어 이런 사람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하다. 강의할 때는 래디컬 한 반면, 사적인 자리에선 안개에 싸인 듯 몽환적이며 말수가 적다.

그가 홀로 앉아 조용히 썼을 법한 산문집에는 한 여자일 수도 있고 다수의 여자일 수도 있는 여자가 나온다. 등장하는 여자들은 그의 캐릭터만큼이나 모호하기도 하고 모호하지 않기도 하다. 어느 여자에 대한 묘사라기보다, 그 여자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묘사할 때는 파스텔화처럼 고운 입자를 흩뿌리다, 같은 여자인지 다른 여자인지 모를 여자에 대해 자신을 묘사할 때는 극사실주의 그림처럼 구체적이다. 그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산문집엔 그런 점들이 묘하게 혼재되어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들을, 특히나 그를 따르는 여성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산문집을 읽은 여자들 중에는 뒤풀이 때 그가 자신의 옆자리에 앉았을 당시를 떠올리거나, 좋은 학점을 받았을 때를 떠올리거나, 자신을 지목하여 강의했던 것 같던 때를 떠올리거나, 우연인지 아닌지 모르게 카페에서 마주쳤을 때를 떠올리며, 산문집에 나오는 여자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육 개월쯤 암 투병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그의 방에는 방 한 칸을 다 차지할 만한 책과, 그가 죽고 나서야 나온 책 한 권이 있다. 그는 또래 나이보다 일찍 죽었다. 죽기 한 달 전쯤에야 그동안 써왔던 산문을 책으로 낼 생각을 했다.

그가 산문집을 내고 싶다는 뜻을 비치자 그의 강의를 들은 몇몇은 그를 돕겠다고 나섰다. 누군가는 출판사를 알아보겠다, 누군가는 교정을 보겠다, 누군가는 편집을 해보겠다, 각자 파트를 맡기로 했다.

사실 그에겐 특정할 만한 제자가 없다. 자신의 강의를 듣는 모두가 제자였으며 제자가 아니었다. 누구를 특정해 제자로 여기는 순간 보살펴줘야 할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뜻과는 달리, 그를 따르는 학생 중에는 스스로 그의 제자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자칭 넘버원이라고 자부하는 제자 중에는 사진을 전공했던 여자가 있다. 그녀의 성은 권이다. 권은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에다 추진력도 좋았다. 그가 학교 강의를 더는 할 수 없게 되자, 권은 그의 컨디션이 좋은 날을 잡아 그룹 스터디 자리를 마련했다. 그가 병원에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를 픽업해 병원과 그의 집을 오갔다. 병자 특유의 히스테리를 받아주었고, 암을 이기려면 어떤 것을 먹어야 할지, 어디서 요양을 해야 할지, 어떤 영양제 주사를 맞아야 할지를, 그가 짜증을 낼 정도로 챙겼다.

그의 가족은 자신들이 할 일을 권이 대신해주는 것에 감사했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다르게 반응했다. 권의 행동을 의아해했고 질시했다. 사람들이 흔히 권에게 하는 말은 어떻게 그리 헌신적이에요? 대단해요였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권은 주저 없이, “헌신이라니요. 교수님께 배운 걸 실천하는 것뿐이에요.”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산문집을 준비하던 중 그는 죽었고 유고집을 남겼다.

그의 아내는 산문집 바깥 풍경을 읽다 덮는다. 그가 남긴 산문집에는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한 이야기가 많다. 어느 날 그는 강의를 끝내고 카페에서 여자를 기다렸다고 한다. 여자에 대한 묘사는 지극히 아련하며 페이소스가 진하게 묻어 나온다. 그에 반해 그의 욕망은 단번에 문자를 뛰어넘는다. “너에 관한 놀라움. 내 뼈를 네게 주고야 말리라는 결심. 천국과 지옥에 기거하는 질투.” 그는 기다리던 여자가 오면 질투를 느끼며 말없이 카페를 나온다고 했다.

출판사에서 전화가 온다. 그의 산문집이 2쇄를 찍는다고 한다. 산문집이 나온 지 3주 만이다. 그는 죽었지만 그를 알거나 모르는 독자들에게 애정과 찬탄을 받는다. 그가 원하던 일이다. 그는 죽어서도 자신의 이름이 잊히는 걸 두려워했다.

또 한 통의 전화가 온다. 권은 의례적인 인사치레를 한 후 이런 말을 한다. “제가 주변 사람들한테 교수님 책을 열심히 알렸어요. 저도 많이 사서 지인들께 선물했고요. 덕분에 오늘 2쇄를 찍어요. 근데요 사모님. 제가 교정을 봤고, 출판사에 알음알음 말을 넣어 홍보가 잘 된 건 아시죠? 제가요, 실은요, 아니, 교수님은요, 저를 사랑했어요. 산문집에 나오는 여자는 저예요. 그러니까 산문집은 제가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2쇄부터 나오는 인세는 제게 주셨으면 해요. 제 거니까요.”

그의 아내는 아뜩해져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는 죽기 얼마 전에야, 그동안 아무도 몰래 소설을 써왔다고 고백하듯 말했다. 산문집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소설의 일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의 아내는 꽉 닫힌 그의 서재 문을 바라본다. 그는 아침이면 서재 창 앞에서 무연히 밖을 내다보며, 천천히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신다. 그의 뒷모습은 어두어두하고 축축하다.

그의 아내는 조용히 서재 문을 연다. 매일 아침이면 그가 바라보던 창밖. 그가 아끼던 아침과 사색.

반쯤 열린 창으로 실바람이 들어온다. 창턱에 매단 풍경이 서로의 몸을 부딪치며 투명한 음을 허공에 긋는다. 그가 프랑스 유학시절 그의 아내에게 선물했던 유리로 된 천사 풍경. 실바람이 오갈 때마다 천사는 종을 치고, 그는 풍경 소리를 들으며 바깥 풍경을 바라봤을 터다. 그의 아내는 그가 듣고 바라봤을 풍경을 꼿꼿이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