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되기
얼마 전, 미용실에서 나오는데 작은 봉투를 준다.
봉숭아, 채송화, 과꽃이 든 씨앗봉투다.
설레는 마음으로 화분에 씨앗을 뿌린다.
언제쯤 싹이 나올까, 나오기는 할까....
나왔다!
아기 손톱보다 작은 잎을 푸르게 내밀었다.
신기하기도 해라.
그런데 작은 잎만으로는 어떤 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다.
베란다 해가 드는 방향으로 꽃대가 휘청, 서있는 게 아닌가.
꽃대는 살짝 건드려도 부러질 듯 가녀리기만 하다.
저런 허약한 꽃대에서 과연 꽃이 필까....
피었다!
꽃을 보고야 이름을 안다.
봉숭아!
우리의 향수를 자극하는, 이제는 그렇게 되어버린 봉숭아가 어린 살결로 해를 받는다.
해조차 뜨거워 견딜 수 없을 듯한 가녀림이 애처로움마저 준다.
어린 것들은 다 저렇다.
작고 여리고 안타깝고 짠한.
우리, 사람의 시작도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어느 주례사는 새출발하는 어린 사람들에게 이런 시를 준 모양이다.
송화 가루 날아
창 넘어 내 책상에 앉았다
틀림없이 내게 사랑하자 온 걸 게다
나는 한 그루 소나무 되리
네 마음을 받아
푸르른 솔잎 가득 피우리
- 고운기
어린 잎으로 출발하는 사람들에게
저 시는 사랑으로 번성하라는 뜻일 터이다.
사랑으로 번성하는 것에 그 어떤 탈이 생길까.
나, 송홧가루 흠뻑 뒤집어 쓴 '어린 출발'에 이런 희망을 가져본다.
송홧가루로 푸르른 솔잎이 되고
그 푸르른 솔잎에서 다시 송홧가루를 날릴 줄 아는 사람이 되길.
저 어린 봉숭아도 언젠가는 씨앗을 뿌릴 줄 아는,
그래서 어떤 이에게는 희망을 주는,
또 하나의 봉숭아가 되리라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