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씨앗 되기

유리벙커 2011. 6. 20. 18:17

얼마 전, 미용실에서 나오는데 작은 봉투를 준다.

봉숭아, 채송화, 과꽃이 든 씨앗봉투다.

설레는 마음으로 화분에 씨앗을 뿌린다.

언제쯤 싹이 나올까, 나오기는 할까....

나왔다!

아기 손톱보다 작은 잎을 푸르게 내밀었다. 

신기하기도 해라.

그런데 작은 잎만으로는 어떤 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다.

베란다 해가 드는 방향으로 꽃대가 휘청, 서있는 게 아닌가. 

꽃대는 살짝 건드려도 부러질 듯 가녀리기만 하다.

저런 허약한 꽃대에서 과연 꽃이 필까....

피었다! 

꽃을 보고야 이름을 안다.

봉숭아!

 

 

 

우리의 향수를 자극하는, 이제는 그렇게 되어버린 봉숭아가 어린 살결로 해를 받는다.

해조차 뜨거워 견딜 수 없을 듯한 가녀림이 애처로움마저 준다. 

어린 것들은 다 저렇다.

작고 여리고 안타깝고 짠한.

우리, 사람의 시작도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어느 주례사는 새출발하는 어린 사람들에게 이런 시를 준 모양이다.   

 

송화 가루 날아

창 넘어 내 책상에 앉았다

 

틀림없이 내게 사랑하자 온 걸 게다

 

나는 한 그루 소나무 되리

네 마음을 받아

푸르른 솔잎 가득 피우리

 

                      - 고운기

 

 

어린 잎으로 출발하는 사람들에게

저 시는 사랑으로 번성하라는 뜻일 터이다.

사랑으로 번성하는 것에 그 어떤 탈이 생길까.

나, 송홧가루 흠뻑 뒤집어 쓴 '어린 출발'에 이런 희망을 가져본다.

송홧가루로 푸르른 솔잎이 되고

그 푸르른 솔잎에서 다시 송홧가루를 날릴 줄 아는 사람이 되길.

 

 

 

 

저 어린 봉숭아도 언젠가는 씨앗을 뿌릴 줄 아는,

그래서 어떤 이에게는 희망을 주는,

또 하나의 봉숭아가 되리라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