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벙커 2011. 7. 4. 11:55

초대라는 말엔 살짝 흥분이 들어있다.

'한다'와 '받는다'를 동시에 품고 서로를 찾는다.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면 그렇게 서로를 부르는 게 '초대'이다. 

 

신혼부부 집에 초대를 받았다.

장마철, 비는 우리가 학창시절 배웠던 숙어 "cats and dogs"처럼 퍼붓는다.

앞이 안 보이는 빗길을 달려 신혼집에 도착했다.

새신랑이 문을 연다.

분홍 바탕에 커다란 강아지가 아플리케수로 놓아진 신부의 앞치마를 입었다.

귀엽다. 소꿉놀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신랑이 건강한 웃음으로 나를 반긴다.  

주방에 있던 신부도 활짝 웃는다.

음식을 하느라 얼굴이 열기로 발갛다.

그 열기와 웃음이 그럴 수 없이 예쁘다.    

신랑이 어서 이쪽으로 들어오라며 거실로 안내한다.

거실엔 이미 커다란 상이 놓여있고 반찬이 여럿 놓여있다.

내 눈은 둥그레지고 입가엔 웃음이 번진다.

언제 저런 반찬을 만들어놨을까.

신혼 집들이 초대를 받았을 때 나는 밖에서 먹자고 했다.

맞벌이 부부가 반찬을 하면 얼마나 할 것이며, 그 수고가 눈에 보여 간단히 냉면이나 먹을 셈이었다.

그런데 간단히 두 세가지만 준비할 것이니 그냥 오라고 했다.

 

 

 

 

고추잡채. 민어찜, 샐러드, 불고기, 왕새우구이, 브로컬리, 문어. 

저 상차림은 간단히 두 세가지만 한 게 아니다.

나름, 요리를 한 것이다. 

내가, 언제 저런 음식을 할 줄 알았느냐고 묻자, 신부는 책을 보고 한 것이라고 대답한다.

아닌 게 아니라 티테이블엔 요리책이 놓여있다.  

나는 밥상 앞에 앉았지만 얼른 수저를 들지 못한다.

나도 모르게 감상을 한다. 

수저를 종이냅킨에 싸서 끈으로 묶은 센스며, 덜어먹으라고 놓은 작은 접시며 정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는 밥을 먹으며 그들이 장을 보고 같이 싱크대 앞에서 씻고 다듬었을 시간이 눈에 어른댄다.

그것을 무어라 말해야 좋을까.

행복? 기쁨?

그 어떤 단어로도 부족하다.   

 

나는 그들의 밥이 아니라 정성을 실컷 먹고 신혼집을 나온다.

그들에게 절로 바람이 생긴다. 

두 사람 안에 '초대'의 그 즐거움이 오래 머물기를,

더도 말고 지금만 같게 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