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김여사는 왜?

유리벙커 2011. 7. 10. 17:41

'아줌마'라는 보통명사의 이름은 어느 새 '김여사'가 됐다.

곧 국어대사전에도 '김여사'는 아줌마를 일컫는 말이라고 나올지도 모른다.

특히 무개념 운전자를 일컫는다고 부연 설명을 달 수도 있다.

그렇게 진화한 '김줌마'는 이제 주방과 뒷방과 골방을 박차고 세상 복판을 향해 달려나왔다.

무척이나 씩씩하게,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게, 따라올 이 없이 거침없게 나타났다. 

나도 김여사.

그런데 김여사인 나, 김여사가 젤 무섭다.

왜? 왜? 왜?

 

일주일에 한 번 차를 몰고 강남역 근처에 간다.

성수대교를 타고 신사역 쪽으로 우회전을 하다 보면 언덕길이 나온다.

6차선의 그 대로를 가다 보면 꼭 한 번씩은 마주치게 되는 광경이 있다.

외제차를 타는 아줌마다.

특정인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그냥 외제차를 모는 김여사를 말한다.

그런데 마치 그 김여사가 바로 그 김여사인 양 하나 같이 똑같은 짓을 한다.

1차선에 있다 갑자기 6차선으로 꺾는데, 이건 대담무쌍함이라는 말이 쪽팔릴 지경이다. 

그러니까 1차선에서 2차선으로, 3차선으로, 이렇게 순서대로 가는 게 아니라

1차선에서 완전히 옆으로 찌~익 6차선으로 간다는 말이다.

그러니 일직선 가로로 가는 셈이다.

2, 3, 4, 5, 6차선에 있던 차들을 일제히 멈추게 하는 탁월한 능력! 

갈 때마다 보는 풍경이 어제는 바로 내 앞에서 벌어졌다.

밉상스러워 빠앙~ 경적을 울렸다.

그 김여사, 하거나 말거나, 핸드폰을 하면서 마이웨이 하시겠단다.

나, 쓸데 없는 생각이 두근두근 머릿속을 때린다.

저런 여유 파는 데 없나? 저런 강심장 파는 데 없나?

미사일을 맞아도 끄떡하지 않을 저 여유만만을, 저 고질의 것을 나, 우습게도 시샘한다.

그래 그런지 언제 봐도 경찰은 눈에 띄지 않는다. 신고도 많이 받았으련만.

하긴, 나처럼 시샘이 나니 아예 안 보고 싶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강남의 외제차 사모님을, 1차선에서 곧바로 6차선으로, 가로로 질러가는 사모님을

어디 감히 대한민국 경찰이 접근할 수 있을까. 떽, 다친다니까.

 

집 근처에서 좌회전을 하다 본 광경이 생각난다.

일 톤 트럭 두 대가 앞뒤로 나란히 서서 신호를 기다린다.

뒷 트럭에서 운전자 김여사가 내린다.

그 김여사, 다짜고짜 앞 트럭의 문을 왈칵 연다.

김여사, 아저씨 운전자의 멱살을 잡더니 운전석에서 끌어내린다.

아저씨, 안 내리려고 발버둥친다.

김여사, 그 아저씨한테 별별 욕을 해가며 아저씨의 등이며 팔을 퍽퍽 때린다.

그 아저씨, 강력 펀치를 고스란히 맞으며 결국 차에서 끌려 내린다.

끌려, 끌려, 내린다...... 무슨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기에 저럴까. 

그 광경을 보는 김여사인 나, 심장이 벌렁벌렁 다리가 후들후들.

진정, 김여사 맞아?

 

김여사 나, 차선 변경을 할 때다.

룸미러와 사이드미러를 본다. 다가오는 차가 보이지 않는다. 차를 튼다.

갑자기 뒤에서 빠~앙, 경적이 울린다.

나, 김여사, 급정거한다.

순간적인 사각지대였던 것.

그런데 그 차, 내 옆에 세우더니 창문을 내린다.

인상을 팍팍 쓰는 노인에 가까운 아저씨의 얼굴.

나, 죄송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인다.

그런데 내 말은 전혀 안 먹히고 아저씨 옆에 탄, 할머니에 가까운 김여사가 

인상을 쓰며 삿대질에 욕까지 해댄다. 

김여사 나, 잠시 미안했던 마음은 싹 가시고 속이 뒤틀린다.   

운전자라면 누구나 몇 번씩은 겪어봤을 사각지대, 그 사각지대가 저 양반들한텐 없었나?

아니면, 인생의 사각지대를 너무 겪어 경기가 났나?

 

남편과 마트에서 쇼핑할 때다.

이런저런 걸 눈팅하며 다니는데 마침 남자 양복 파는 데로 가게 됐다.

그때 김여사 종업원이 눈웃음을 함빡 지으며 다가온다.

그 김여사, 남편과 오래 안 사이처럼 남편 옆에 착 붙더니 이거 입어보라 저거 입어보라 난리도 아니다.

남편 옆에 있는 나는 처음부터 안중에도 없다.

어떻게 하나 꼴을 두고 본다.

그 김여사, 여전히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남편이 빠져갈 구멍을 전혀, 전혀, 주지 않는다.

난감해 하는 남편을 잡아 끌고 매장을 나온다.

다시 한 바퀴를 도는데 어디서 달려왔는지 좀전의 그 김여사, 남편 소매를 잡으며 말한다.

"핸폰 번호 좀 알려주세요"

내 머리에 순간 띠딩~~ 종소리가 울린다.

나, 에스컬레이트를 타며 남편에게 말한다.

"아니, 저 아줌마 뭐야? 마누라가 옆에 있는데 핸폰 번호를 달라고?"

남편, 느긋하게 웃으며 대꾸한다.

"내 스탈 아냐."

나, 속으로 비웃는다. 흥, 많이 컷네.

 

무법천지로 대시력 좋은 김여사들,

상냥함이 무한 리필인 김여사들,

세상이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만 안녕,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