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정주의 다락방엔(셋)

유리벙커 2011. 7. 17. 23:00


내 유년의 기억은 정처 없이 떠도는 게 아니라 ‘다락방’으로 세월 너머에서 나를 만난다.

비 오는 여름날의 빗소리가 들어있고, 덜컹대는 시외버스 안에서 까무룩 잠들었을 때 잠시 꾼 꿈이 들어있다.

안개 냄새와 첫새벽 이슬이 바람을 만나 손을 잡던 순간, 그 위로 흐르는 현의 선율, 그러한 것들이 소리 없이, 두근두근 숨을 쉰다.

당시엔 고되나 지나간 일이 되면 회상할 만한 추억이 된다고 한다.

모두 그럴까? 아니,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아닌 건 아닌 것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걸 보면, 내 다락방은 유독 유년시절의 닻줄만이 삭을 줄 모르게 내려져 있나보다.

그 닻줄을 감고 휘릭~ 이십 채 초의 다락방으로 건너간다.

 

 

유년에서 성인이 되는 그 세월 동안, 우리 집은 실패한 집이 되어 큰 집에서 점점 작은 집으로 이사한다.

아버지가 탄탄한 직장을 관두고 사업을 했기 때문. 할 때마다 당연하다는 듯 실패의 연속. 우리가 익히 아는 뻔한 드라마처럼. 진부하기 짝이 없는 그 드라마는 어쩌면 우리 인생의 전형으로, 거처야 할 어느 정류장이 아닐까 싶다. 그러기에 그런 드라마는 지금도 고전이 되어 명을 유지한다. 또한 그러한 드라마 한 두 편 안 가진 사람도 드물다. 그러나 그러한 통과의례는 말처럼 극복하기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어쨌든, 우리는 산동네 초입에 있던 작은 집에서 평지의 제법 반듯한 집으로 이사한다.

큰오빠가 직장을 다녔고 결혼을 했기 때문.

이사한 집엔 방이 셋 있었다. 안방, 건넛방, 아랫방.

돈의 여유가 없으니 아랫방은 이미 들어있던 전세를 끼고 산 것이다.

그러니 방 두개로 여섯 식구가 나누어 써야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때 언니 둘은 결혼하고 없었다.)

안방은 당연히 엄마와 아버지, 건넛방은 오빠의 신혼방. 그렇게 되면 나와 작은오빠는?

작은오빠는 한 달인가 안방과 마루를 오가며 지내다 아랫방 세 준 것을 빼, 신혼방이 그 방으로 이사하고 작은오빠가 건넛방을 썼다. 그렇게 되면 나는?

나는 안방에 달려있는 다락을 택했다.

엄마와 아버지는 어떻게 다락을 방으로 쓰냐며, 같이 안방을 쓰자고 했지만 나는 굳이 다락을 방으로 쓰고 싶다고 우겼다.

다락, 그 다락은 내게 엄청난 매력덩어리였다. 뭔가 신비로운 이야기의 공간, 숨어있는 나를 그대로 꺼내 놓아도 될 공간, 이미 주어진 공간이 아니라 부단히 움직이는 공간, 굳이 말하면 놀이터와도 같은 공간이었다. 정지된 채 그냥 있는 공간이 아니라 항상 신비로운 무엇인가가 있고, 그것을 다락 스스로가 꺼내 나와 놀기를 원하는 그러한 공간이었다.

다락, 한눈에 반했다.

나는 다락을 내방으로 정했다. 그러자 엄마는 다락에 넣어두었던 군살림을 한곳으로 모으고 내가 누울만한 공간을 마련했다. 아, 흥분, 흥분.

그렇게 작고 아담하고 아늑한 공간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얇은 요를 깔고 그 위에 배를 깔고 혹은 반듯하게 누워 나는 ‘나’와 사귀기 시작했다.

토하고 싶었던 나, 울고 싶었던 나, 도망치고 싶었던 나, 죽고 싶었던 나, 정말이지 죽어버려야 좋을 것 같았던 나.....

나는 수많은 나를 일기장에 끄적이기도 했고, 밖으로 난 조그마한 유리창을 통해 밤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그렇게 나와 절친으로 지내던 그때의 다락방은 유감스럽게도 몇 달로 끝이 났다.

봄을 지내고 여름이 오자 그 집에 물이 찼던 것.

집은 평지였지만 장마가 오자 마당 하수구로 물이 올라왔다.

서둘러 그 집을 팔고 우리는 다시 이사를 했다.

수유리에 있는 아담한 이층집이었다.

집은 내 다락방이 있던 집보다 좋았지만 나만의 다락방은 없었다.

<안네의 일기>를 쓴 안네를 떠올리며 부단히 뭔가를 끄적이던 나도 사라졌고, 한창 열애에 빠져 다음 날이 오길 기다리던 나도 사라졌다.

그때 나는 얼마나 많은 편지를 썼던가. 보내지 못한 편지, 보낸 편지, 그러한 편지가 하루를, 그리고 모든 것을 이겨내게 했던 시간이 아니었던가. 

그때가 지금인 양 떠오르는 걸 보면 그때 나만의 다락방은 지금도 나와 함께 있다는 얘기다.

그런 다락방을 언젠가는 다시 마련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 일찍 부엌에서 올라오는 음식 만드는 소리와 냄새(다락은 대개 안방에 딸려있고 부엌 천장 위에 있는 구조다), 마당에서 오빠가 세수하는 소리, 밤하늘에 떠 있던 별과 달이 보내오는 속삭임, 그러한 것들이 유효한 약속처럼 언젠가는 내게 만나자는 연락을 해 올 듯하다.

인생의 절반을 넘어선 이 시점에서도 그러한 생각을 하는 나는 아직도 유년의 나로 머물러 있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안 하니만 못하다.

너무 기성세대 냄새가 나잖아. 말하지 않아도, 옆구리 쿡 찔러가며 일러주지 않아도 그런 건 알고 있다고. 철없는 생각일지라도, 그럴지라도, 그러한 게 있어야 한다고, 나, 생각하거든. 아니, 고집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