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마샤마미
시절이 울퉁불퉁하다.
하긴, 예전이라고 평탄했던 적이 있었던가.
지금 보면 어수룩한 시절이었다고 말했을 그 당시에도,
사람들은 약삭빠르고 험하고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푸념했을 것이다.
뉴스를 보면 기상천외한 사건들의 연속이다.
얼마 전, 필리핀 표적 납치 사건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뉴스를 보면 참으로 무서워 집에서 나가기가 겁난다.
그뿐인가.
장기를 빼내기 위해 멀쩡한 사람을 유인해서 죽이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죽은 태아를 가루로 만들어 보약이라고 먹는 사람들의 실화를 다룬 프로도 보았다.
이제 토막 살인은 우리에게 더는 충격으로 작용하지 못한다.
왜들 이런가.
왜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인간이,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서슴없이 하는 이 파괴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성선설과 성악설, 그 어떤 것도 믿지 않는다.
다만, 인간은 동물과 달리 ‘생각’과 ‘이성’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기에 최소한의 예의와 존엄을 안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 기본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기본 성향을,
스스로 저버리는 게 또한 인간이고 보면 “벌레만도 못한...”이라는 말은 어쩌면 당연한 얘기에 속할지도 모른다.
그 말이야말로 예전부터 있었던 말이고 보면,
우리 인간에게 덧씌운 ‘인면수심’이라는 용어조차 거북해 할 일이 아닌 듯싶다.
험한 사건을 보거나 들을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암마샤마미”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 말의 뜻은 우리 가족만이 안다.
즉, 가족만이 통하는 비밀 언어이자 암호와도 같은 것이다.
그 말을 처음 만들어낸 건 아들이다.
아주 오래 전, 내 품에 안기길 좋아했던 어린 아들은 내게 말했다.
“암마샤마미!”
나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어린 아들은 내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엄마와 나만 아는 비밀! 그냥..... 엄마랑 나랑 통한다는 말!”
아들이 유치원 다닐 때쯤이었으니까 참으로 오래 된 말이다.
그런데도 나와 아들은 지금도 그 말/단어를 기억한다.
사전에도 없고 그 어떤 뜻으로 풀이될 수 없는 그 용어를.
지금, 나는 그 말을 굳이 풀이해 본다.
‘암마’는 엄마, ‘샤’는 사랑해, ‘마미’는 엄마.
억지로 그렇게 꿰맞출 필요는 없다.
그런데 그 용어를 글자로 써보니(처음으로 써서 일까?) 나름대로 갖다 붙이게 된다.
비밀, 암호, 그런 뜻에서 나는 우리 가족에게 말했다.
앞으로 어떤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암마샤마미!”라는 말을 사용하자고.
예컨대, 납치를 당했다, 전화로 돈을 송금하라고 한다, 전화기 옆엔 납치자가 있다, 전화를 하긴 해야 하는데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얘기할 순 없다..... 그럴 경우, 우리는 “암마샤마미”하자, 그렇게 하면 경찰에 신고하라는 뜻이고, 납치자는 그 의미를 모를 것이다, 뭐 그런 내용이었다.
웃어가며 말했지만 말하는 나나, 듣는 가족이나, 그러한 일이 생기지 않길, 그런 일에 “암마샤마미”를 사용할 일이 없길, 다짐하듯 바랬다.
나는 어린 아들이 “암마샤마미!” 했을 때,
"엄마를 사랑해”가 말 그대로 쓰기 쑥스러워서 그렇게 말했다고 생각한다.
그 말이 부디, 험한 일에 쓰기보다 사랑을 고백하기 쑥스러울 때 쓸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