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사소함의 가치

유리벙커 2011. 12. 8. 15:54

 

 

얼마 전부터 욕실의 물이 시원치 않다.

이 집으로 이사했을 때부터 그랬으니 그런가보다 하며 썼는데 이건 도를 넘는다.

세면대의 물은 잘나오는데 샤워기의 물은 어린아이의 오줌줄기보다 못하다.

혹시 물탱크 청소를 하나 싶어 관리실에다 물어봤다.

그런 일은 없다고 한다.

그래도 와서 좀 봐달라고 했다.

기사가 와서 보더니, 욕실을 뜯어고칠 때 아마 관에 이물질이 들어가 막힌 듯하다고 한다.

이 집으로 이사할 때 욕실은 물론 집 전체를 리모델링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공사를 했던 곳으로 전화를 걸어 점검을 부탁했다.

공사를 했던 곳에선 바쁘다며 며칠 후에나 가보겠다고 한다.

샤워기의 물줄기는 하루가 다르게 준다.

하루가 여삼추다.

결국 샤워를 할 때도, 머리를 감을 때도, 변기며 욕실 청소를 할 때도 대야에 물을 받아써야 했다.

그런 사정을 통화하고 있던 중, 곁에서 듣던 아들이 이번 주에 갈 때 샤워기를 새것으로 달아주겠다고 한다.

 

 

 

아들이 좋은 제품이라며 샤워기를 새것으로 교체했다.

 

 

물줄기가 쏴아~ 속이 시원하게 나온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의 질도 부드럽고 양도 좋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마치 라식 수술을 한 듯 갑자기 새 세상을 만난 기분이다.

그러니까 나는 삼 년 동안 샤워기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이 아파트는 이런가보다 하고 흐리터분한 물줄기를 사용했던 것이다.

생각건대, 공사를 해준 사람이 이익을 남기기 위해 샤워기를 싼 것으로 단 모양이다.

누굴 탓할까.

나의 아둔함이 삼 년만으로 그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물줄기가 더 나빠지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계속 그런 상태로 살았을 터.

욕실에서 샤워기를 쓸 때마다 나는 기쁨에 부르르 떤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것에 이런 기쁨이 있을 줄은 몰랐다.

 

 

 

또 하나의 아둔함, 그에 따른 기쁨 하나가 있다.

차를 바꾼 지도 거의 삼 년이 된다.

그동안 카오디오를 틀 때마다 나는 오디오에 있는 버튼으로 모드를 작동했다.

운전 중에 usb로 듣던 걸 cd로 바꾸려면 오디오의 작은 버튼을 보며 누르느라 신경이 좀 쓰였다.

그런데 며칠 전 아들이 내 차를 손봐줄 일이 생겼다.

그때 아들은 cd로 구워온 노래를 내 차에다 넣어주었는데

음악 소리를 정지시킬 때보니까 오디오에 있는 모드가 아닌, 핸들에 있는 모드를 눌렀다.

아, 이런!!! 맞아! 저거였지!

난 또 한 번 나의 아둔함에, 부실함에 놀랐다.

그러니까 처음 차를 쓸 때 아들은 오디오에 있는 모드와 핸들에 달린 모드 사용법을 일러주었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핸들의 모드는 까맣게 잊고 오디오의 모드만 사용했던 것.

그러나 나는 아들한테 그런 말은 하지 못했다.

아들은 그런 사실을 알면 이렇게 말할 게 뻔하다.

“어이그, 엄마야, 내가 그렇게 여러 번 알려줄 때는 알았다고 하더니 또?”

어제 운전을 하면서 나는 핸들의 모드를 작동시켜가며 usb로 듣다 cd로 듣다 해가며

그 편리함에 무척이나 들떴다.

사소한 것, 그래서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운 것,

그런 것에도 이런 커다란 가치가 있다는 것을 나는 고개 숙여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