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벙커 2011. 12. 24. 01:17

 

 

머피의 법칙이 유난한 날이 있어.

오늘이 그랬지 뭐야.

그러니까 오늘은 가지고 있던 휴대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꾸려던 날이었어.

한 열흘 전쯤인가, 스마트폰을 공짜로 준다는 전화를 받고 그렇게 하겠다고 했지.

다음 날 택배로 스마트폰이 왔어.

그런데 휴대폰 명의가 남편으로 되어 있어서,

대리점엔 남편이 시간 날 때 같이 가기로 했지.

남편은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어.

기다리다 할 수 없어 장을 보러 마트에 갔지.

장을 다 보고 차를 빼려는데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어.

스마트폰을 개통했으니 지금 가지고 있는 폰이 30분 쯤 후에 끊어진다는 거야.

그리고 대리점엔 퇴근 후에 가겠다고 하더군.

 

 

전화를 끊고 마트에서 나와 주방기구 파는 델 갔어.

찜기를 사서 차 트렁크에 넣고 문을 닫았어.

아뿔사, 운전을 하려는데 키가 없는 거야.

트렁크에다 키를 넣고 닫아버린 거지.

휴대폰은 곧 끊어질 거고 마음이 급했어.

얼른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지.

왜냐하면 자동차는 아들 명의로 되어 있거든.

아무튼, 사정을 말하고 자동차 보험사에다 전화를 걸어 차문을 열어달라고 말하라고 했지.

그렇게 통화를 끝내고 나니 휴대폰이 끊어졌어.

보험사에서 내게 연락할 길이 없어진 거지.

해서, 주방기구점의 전화로 다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지.

지금 거는 이 번호를 보험사에다 알려주라고.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보험사에선 연락이 없고 사람도 안 오더라고.

다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지금 몹시 바쁘니까 직접 보험사에다 전화를 해보라는군.

아들이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어 재접수를 했지.

그리고 사람이 오길 기다렸어.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거야.

날이 추워 주방기구점에서 기다리다 밖으로 나와 차 옆에서 얼쩡거리다 해가며 기다렸어.

그때 불법주차 단속차가 돌아다니더군.

마음이 불안해졌어.

그렇게 주방기구점을 들락거리고 그 가게 전화를 쓰며 기다리다 보니 미안하더라고.

해서, 커다란 냄비도 하나 더 사고 밥그릇도 두 개 더 샀어.

그러던 중 오토바이가 오더라고.

오토바이에서 남자가 내렸어.

그 남자는 운전석 차문 틈에다 마우스 패드 크기의 것 두 장을 끼우더니

또 무슨 기구인가를 이용해 에어를 불어넣더군.

그렇게 하니 차문의 틈이 조금 벌어졌어.

그 틈에다 기억자 형의 쇠꼬챙이를 넣고 뭔가를 건드리니 달칵, 하고 차문이 열렸어.

나는 얼른 운전석 옆에 있는 바를 눌러 트렁크를 열었어.

트렁크 안엔 자동차 키가 얌전히 놓여있더군.

어찌나 반갑던지.

그 작은 쇠붙이가 마치 마법의 반지처럼 보였어.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힘을 가진 그런 걸로. 

키를 꽂고 운전을 하는데 새삼 이런 생각이 나더군.

내 인생의 키는 어떤 것일까, 그 키를 나는 잘 운용하고 있는가.

누구에게나 주어진 그 키를, 나는 부족과 불만으로  여기고 있었는지도 몰라. 

 

 

저녁 때 남편이 퇴근하고 왔어.

저녁 준비를 하다 말고 얼른 남편과 대리점엘 갔겠지?

그런데 이번엔 또 무슨 머피의 법칙이 작용하는지

지금까지 멀쩡하던 휴대폰이 먹통이 돼 있는 거야.

대리점에 있는 잭에다 연결을 해도 먹통이 안 풀리는 거 있지.

내장된 전화번호를 새 스마트폰에다 넣으려는 건 실패하고 말았어.

또한 “뭉치면 올레”를 하려는데

그건 남편과 내 신분증과 주민등록등본을 떼어 와야 한다는 거야.

내일은 토요일, 모레는 일요일, 결국 다음 주 월요일에나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더군.

아니, 뻑하면 대포폰이 어쩌구 하는 뉴스는 다 뭐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본인이 와도 이렇게 개통하기가 어려운데 대포폰 하는 사람들은 재주도 좋다 싶었어.

 

 

오늘따라 어쩌면 그렇게 곤란한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지.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해도 힘들 거야.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인생의 어느 한 면이 이와 같지 않을까 싶어.

내 뜻과는 상관없이 어떤 힘, 어느 에너지, 뭐 그런 게 나를 끌고 가는 듯했어.

그러한 게 좋은 힘, 바람직한 에너지라면 기분 나이스겠지만

뭐 좋지 않았다 해도 좋았다고 말할래.

조금은 짜증나고 힘은 들었지만 또 하나를 배운 계기였으니까.

 

 

 

 

스마트폰은 일반 휴대폰과는 버전이 달라.

일종의 아날로그와 디지털이라고나 할까.

그동안 아날로그에서 편하게 지냈어.

별 아쉬움 없이.

그런데 오늘부터 난 디지털로 갈아타야 해.

스마트폰의 버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배우려면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

내겐 그러한 시간이 아깝다면 아깝지만 어떻게 하겠어.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으니 내가 적응하는 수밖에.

스마트폰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해.

너무 편하고 좋다고.

처음 휴대폰이 나왔을 때, 몇몇 사람들은 휴대폰을 거절했어.

휴대폰에 자신이 묶이는 게 싫다고.

그런 사람들도 지금은 다들 쓰지.

일단 연락이 안 되니 본의 아니게 상대방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게 되니까.

친자연을 외치는 사람들은 기술이 들어가고 인위적인 것이 가미될 때 거부감을 느껴.

나도 그랬어.

그런데 다르게 생각하면 딱히 거부할 일만은 아니야.

어차피 우리는 원시시대에 사는 게 아니라 기술시대에 사니까,

이왕 기술시대에 살 것이면 기술이 나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내가 기술을 이용하면 되지 않겠어?

듣기에 따라선 그 말이 그 말이겠지만 나름 설명하면 이런 거야.

즉, 무턱대고 스마트폰에 빠져 살 게 아니라 필요한 정보를 얻고자 할 때 사용하면,

시간도 절약할 수 있고 알고자 하는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으니,

기술에 정복당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지.

오늘, 내게 위세를 떨쳤던 머피의 법칙을 나는 이렇게 정리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