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그것, 주목하기

유리벙커 2012. 8. 21. 13:47

 

릴케의 『말테의 수기』마지막에 나오는 장면.

소년이 풀밭에 누워 이런 생각을 한다.

‘오직 한 사람으로부터만 사랑 받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철학자(김진영)에게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 저릿했다.

내 머릿속은 빠르게 나와 내 주변 사람을 살핀다.

나는 그러한 일을 겪은 적이 있던가.

나로부터 그러한 일을 겪은 사람이 있던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더 가슴 아팠으리라.

 

 

 

철학자는 말한다.

“여기서 ‘그녀’는 뮤즈와도 같은 것이다.

사랑을 받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러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그녀’는 음악이 될 수도 있고 소설이 될 수도, 신이 될 수도 있다.

여자가 될 수도 있고 남자가 될 수도 있다.

 

 

 

흔한 말로 치면 여기서 ‘그녀’는 짝사랑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다.

이루어지지 못해서, ‘그녀’를 ‘그녀’로 남겨둘 수 있어서

살아갈 수 있다면 너무 잔인한 얘기가 되려나.

그러나

사랑은 판타지다.

판타지가 없으면 사랑은 할 수도 하게 되어지지도 않는 그 무엇,

즉 ‘그녀’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이 이루어져 결혼을 하면 그 판타지는 ‘생활’로 바뀐다.

생활은 판타지가 아닌, 계산과 법칙이 작용하는 장이다.

이러니 연애할 때와는 다르다, 변했다, 그런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나는 지금 나의 ‘그녀’를 생각한다.

풀밭에 누워 ‘그녀’를 절절히 생각하는 소년처럼

아무리 다가가도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 ‘그녀’에 애태운다.

그래서 나는 ‘있다.’

아직은 사라지지 않는 존재로 ‘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