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설/독서감상문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이 말하는 예술과 현실

유리벙커 2022. 1. 20. 16:31

 

토마스 만의 이 작품집은 두께만큼이나 조금은 무겁고 신중하다. 대체로 자전적 성격이 두드러지는데 토니오 크뢰거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주인공 토니오 크뢰거는 어려서부터 예술적 기질이 풍부했으나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충족시킬 수 없음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친구 한스를 이상형으로 여겨 애정을 주나 그에 충족된 반응은 끝내 얻지 못한다.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간단하고 쉽게 비교를 하면, 토니오 크뢰거를 예술과 특수성, 고독과 소외, 비실용성으로 말한다면, 한스는 문명과 현실, 보편성과 인기, 실용성으로 말할 수 있다. 토마스 만은 두 지점을 하나로 소유하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음도 자각하며 고통스러워한다.

 

마리오와 마술사는 다른 작품에 비해 수월하며 재미와 흥미를 준다. 주인공은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로 여름 여행 중이다. 여행하는 도시에서 알 수 없는 불쾌감과 찐득함을 느낀다. 그러던 중 마술쇼를 보게 된다. 마술사이자 최면술사 치폴라는 채찍을 휘두르며 소리만으로도 관객을 제압한다. 거기다 최면술까지 동원해 관객을 손에 쥐고 좌지우지한다. 여기서 관객 중 한사람, 마리오는 치폴라에게 조종과 조롱을 당한다. 마리오는 자신이 조종당했음을 알게 되자 총신 없는 총으로 치폴라를 죽인다. 이 작품은 당시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마술이라는 도구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마술사의 외모적 으스스함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대등한 자리에 놓는다. 드러낼 수 없고, 표현하기 어려운 도시의 분위기는 당시 이탈리아의 사회적 분위기를 암시한다. 시민의 대표적 캐릭터로 마리오를 무대에 올리고, 마리오가 처음엔 저항하지 못하다 끝내 저항하는 모습은, 시민이 독재를 이겨내는 것으로 끌어올린다. 쉽고도 탁월한 작품이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토마스 만의 예술 지향성을 최고조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 아셴바하는 유명한 시인으로 독일 영주가 주는 귀족의 호칭을 받는다. 그는 글 작업에 지쳐 베니스로 여행을 떠난다. 베니스에 근접한 섬에서 호텔을 잡고 지내던 중 타치오라는 소년을 본다. 아셴바하는 첫눈에 타치오에게 반한다. 소년은 우아함과 지성을 지닌 인물로 다비드상의 완벽한 실체가 아닐 수 없다. 이때부터 아셴바하는 타치오와 우연히 마주치기 위해 애를 쓴다. 한편 자신의 늙음을 깨달으며 자존심이 상하고 비애를 느끼나 타치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간다. 타치오가 잠시 눈길을 주면 가슴이 뛰고, 타치오가 가족과 함께 베니스로 가면 그 뒤를 쫓아 미행한다. 그럴 즈음 아셴바하는 베니스가 콜레라에 전염되었고,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외국 여행객이 베니스를 떠나 본국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지만, 아셴바하는 타치오가 본국인 폴란드로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어쩔 줄 모른다. 마침내 타치오 가족이 섬을 떠나는 날, 아셴바하는 매일 해변에 의자를 놓고 바다와 타치오를 관찰하던 중 의자에서 쓰러져 죽는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베니스라는 도시는 한때 예술적 도시였으나 지금은 더럽고 냄새 나며 타락한 도시로, 예술이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암시를 던진다. 그러나 타치오라는 완벽한 소년, 어른이 아닌 가능성을 가진 소년을 등장시켜, 현실에서의 예술은 타락하지만 예술 본연은 타치오처럼 완벽한 미를 지닌 존재라고 믿는다. 아셴바하가 타치오를 사랑하는 고백은(본문에서 너를 사랑한다라고 혼자 생각한다) 예술에 대한 토마스 만의 열정적인 애정이다. 예술에 관한 갈망과 좌절,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 작가의 심성이 절절히 나타난 작품이다.

 

토마스 만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은 예술과 생활/현실의 애증 관계다. 예술과 현실의 갈등, 두 세계의 충돌, 합치되기 힘든 고단함은 소설 전체에 안개처럼 깔려 있다. 예술이 현실을 접했을 때의 이중성은,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작위의 호칭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으로 극명하게 드러난다. 주인공이 자신의 글이 교과서에 실리길 바라, 난삽한 언어를 제거했다는 점 또한 그렇다. 예술을 순수 욕망으로 서술하지만, 현실에서의 예술은 권력이 되고, 작가의 욕망은 사람과 예술 자체에서 인정받고 싶어 시달린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죽는 순간까지 타치오를 바라보는 시선은 예술로 향한 시선이자 욕망이다.

글을 읽는 내내 감탄한 점은, 묘사의 탁월성이다. 인물 묘사와 풍광에 관한 묘사는 토마스 만의 성실성과 인내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말로 하긴 쉬워도 묘사로 상황을 보여주긴 정말 어렵다. 토마스 만은 그 점에서 인간의 한계, 작가의 한계를 정점까지 찍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