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설 110

<<은밀한 선언>> 독자 서평

일면식도 없는 분들이 내 책을 읽고 감상문이나 서평을 쓴 것을 볼 때마다 나는 감격한다.특히 송광택 목사님이 쓰신 『은밀한 선언』은 정성이 가득하다. 송 목사님은 독서모임을 주관하시는 분이다. 내 소설은 종교와는 거리를 둔 소설인데 목사님께서 좋은 서평을 남겨주셔서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다. 송광택 목사님이 쓰신 『은밀한 선언』의 서평을 옮겨 본다. 김정주 작가의 장편소설 『은밀한 선언』은 10개의 장으로 구성된 소설이다. 각 장에서 주인공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드러낸다. ‘출판사 서평’에 따르면 이 소설은 ‘드러내고 싶지만 감추고 싶은, 숨기고 싶지만 알리고 싶은, 욕망을 억압하는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은밀한 선언』은 여러 명의 캐릭터들을 통해 ‘불완전하고 불안전한‘ 인생살이를 들여다본다...

<<바다 건너 샌들>> 독자 감상문2

정탄 선생님께서 김정주 소설집 『바다 건너 샌들』을 읽고 감상문을 페이스북에 올리셨다.책을 읽는다는 것은 열정이고, 감상문을 쓴다는 것은 책에 대한 애정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그 사실을 알기에 정탄 선생님의 감상문에 고개 숙여 깊이 감사를 드린다.(특히, 샌들에 관해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점을 써주셔서 또 하나를 배운다.) ※ 강자, 승자는 패자, 약자를 소 닭 보듯 대하지 말라 “엄마, 난 개야. 개가 되기로 했어. 날 용서하지 말고 버려줘요.” 아들의 목소리가 떨려 나온다. “나도 살고 싶어. 지금과는 다르게 살고 싶어. 우리집처럼 말고 다른 집처럼, 보통의 집처럼 살고 싶어졌어. 아버지가 있고 고상하게 취미 생활도 하는 엄마가 있는 그런 집 말이야. 걔네*가 그런 집이야.” *걔네; ‘그 아이..

나의 소설 2025.05.20

<<바다 건너 샌들>> 독자 감상문1.

평론가이자 소설가인 심영의 선생님이 2022년도에 발표한 내 작품집『바다 건너 샌들』의 감상문을 페이스북에 올리셨다.심 선생님은 표제작 「바다 건너 샌들」에서 주인공 숙을 보면서 나를 떠올리셨던 듯하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숙이 존재하는 것처럼, 이름 없는 작가지만 꾸준히 글을 쓰는 내가 같아 보였나보다.작가는 작가의 심정을 잘 안다.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진심인지 가식인지, 허풍인지 엄살인지를 누구보다 디테일하게 안다. 나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 앞에, 마음이 숙여지고 감사함이 뭉클 올라온다. * 심영의 선생님의 감상문을 올려본다. 김정주 소설집 『바다 건너 샌들』(소명출판, 2022)의 표제작 「바다 건너 샌들」의 문장은 더 없이 단정하고 맑고 투명하지만,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슬픔과 외로움..

나의 소설 2025.05.19

<<극단적 흰빛>>

고철 시인의 『극단적 흰빛』은 제목부터가 대단히 극단적이다. ‘극단적’이라는 단어도 극단적인데 ‘흰빛’도 극단적이다. 극단과 극단이 나란하게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과연 극단이 치닫는 세계는 어떤 인과관계가 있을까.극단적‘인’도 아닌 그저 ‘극단적’에 매료되었다.‘흰빛’ 또한 ‘흰색’과는 달리 가시적이지 않은데 극단과 흰빛은 어떤 모습으로 조화를 이룰까.  표제작 「극단적 흰빛」은 한 공간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병치시킨다. 시의 화자는 그 두 세계에 머물며, 들숨과 날숨을 쉬듯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동시에 경험한다. “깜깜해서야 집으로 왔”는데, “딸깍 소리가 무서워 불을 켜지 않았”고, “주방이 보이고 아침 먹던 숟가락이 보였”고, 그때 “실감 나지 않은 빛이 생겼다”“엄마, ..

탈골

탈골  김정주  모녀는 방파제 입구에 선다. 뜨뜻한 기에 찬 기 섞인 바람이 분다. 굴 폐각이 썩는 냄새, 주변에 널린 그물에서 스멀스멀 퍼지는 냄새, 물고기와 해초들의 비릿하며 미끈거리는 냄새가 습하게 달라붙는다. 늘그막 한 딸이 노모의 팔을 잡고 방파제로 올라간다. 톡톡, 톡톡, 지팡이 두드리는 소리가 밤바다로 녹아든다. 모녀는 말없이 방파제 끝으로 간다. 딸이 방파제 끝에다 돗자리를 편다. “엄마, 바로 앞이 바다예요. 조심해요.” 딸은 노모를 돗자리에 앉힌 후 그 옆에 선다. 밤하늘은 밤바다로 너르다. 둥근달이 구름에 가려 반쯤 드러나다 온전히 드러나다 한다. 바다 저 편엔 둥글고 허연 양식장 부표가 줄에 매달려 둥둥 떠 있다. 그 뒤론 무인 등대에서 내쏘는 빛이 반짝반짝 터진다. 노모는 그 ..

바깥 풍경

바깥 풍경  김정주   그는 불어와 철학을 공부했으며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에선 모 대학에서 미학을 강의한다. 대학 외 여러 인문학 기관에선 철학 이론을 바탕으로 문학 강의를 한다. 그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교수로 알고 있다. 그는 멜랑콜리하며 센티멘털하다. 그의 형은 스물 몇인가에 죽었다. 그 일이 그를 멜랑콜리한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혹은 태어날 때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쓴 산문집에는 형의 이야기가 몇 꼭지 나오고, 여자 이야기는 수십 꼭지에 달한다. 그를 콕 집어 이런 사람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하다. 강의할 때는 래디컬 한 반면, 사적인 자리에선 안개에 싸인 듯 몽환적이며 말수가 적다. 그가 홀로 앉아 조용히 썼을 법한 산문집에는 한 여자일 수도 있고..

화농

화농    김정주    덤프트럭이 다가온다. 거대한 몸통이 바닥에 깔린 센서를 밟으며 톨게이트로 진입한다. 덤프트럭이 속도를 늦추더니 부스 앞에서 살짝 경적을 울린다. 윤희는 부스 창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트럭 기사는 새까만 선글라스를 치켜 올리더니 한쪽 눈을 찡끗한다. “교대시간은 언제? 이쁘지도 않으면서 이쁜 척. 그만 튕겨.” 윤희는 픽 웃는다. “운전 조심하세요.” 트럭 기사가 상체를 건들대며 선글라스를 내려 쓴다. 트럭 기사는 발권기 삼 단에서 통행권을 뽑더니 휭 가버린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어마어마한 몸체, 심장까지 궁궁 파고드는 소리, 영락없는 재우. 재우를 만난 건 신의 은총일까 장난일까. 덤프트럭의 쇠 덮개 틈에서 푸르르 흙먼지가 날리며 잠시 봄을 가..

퓰리처상

사진처럼 즉각적이며, 강렬하며, 감각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매체도 드물 것이다. 『퓰리처상 사진』은 사진의 백미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책이다. 332쪽의 두꺼운 이 책에는 사진/사진기의 발전과 그에 따른 역사적 맥락이 간단명료하게 적혀 있다. 또한 사진기자들의 열정과 애환, 순간의 포착을 위해 생명을 건 스토리도 간략하게, 그러나 감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재난현장의 사진을 볼 때 충격을 받으면서 동시에 이런 생각도 한다. “저 순간에 사진이나 찍고 있었다니” 혹은 “사진 찍을 때 한 사람이라도 구하지” 그러나 ‘다만’ 사진 한 장이 아니다. ‘한 장의 사진’이 전 세계로 전송되면 그 파급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예컨대 반전시위를 이끌어 내기도 하고, 인종차별을 규탄하기도 하고, 그로 인..

<<세상을 바꾼 사진>>

사진의 발명은 가히 인간사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사진은 순간을 정지시킨 생생하고도 확고부동한 증명서다. (사진을 조작하는 기술이 나오기 전에나 통할 얘기지만, 지금도 이 말은 사실이다.)  『세상을 바꾼 사진』엔 그야말로 세기적 혼란기라고 할 수 있는 1900년대 사진이 주를 이룬다. 사진에는 권력과 희생, 노동 착취와 전쟁에 따른 폭력의 이미지가 충격적으로 나온다. 1908년 미국 아동의 노동 현장의 사진은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이륙에 관한 사진과 대조적이다. 1910년대로 넘어가면 멕시코 혁명의 사진이, 1915년엔 오스만제국이 아르메니아인을 대학살한 사진이, 1916년엔 독일이 프랑스 베르됭시를 대대적으로 공격한 사진이 실려 있다. 실로 가공할 참사는 100년이 넘는 시간을 넘어 당시를 증언한다..

화농

2023년 겨울호에 발표한 단편소설 을 소개합니다. 화농 김정주 덤프트럭이 다가온다. 거대한 몸통이 바닥에 깔린 센서를 밟으며 톨게이트로 진입한다. 덤프트럭이 속도를 늦추더니 부스 앞에서 살짝 경적을 울린다. 윤희는 부스 창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트럭 기사는 새까만 선글라스를 치켜 올리더니 한쪽 눈을 찡끗한다. “교대시간은 언제? 이쁘지도 않으면서 이쁜 척. 그만 튕겨.” 윤희는 픽 웃는다. “운전 조심하세요.” 트럭 기사가 상체를 건들대며 선글라스를 내려 쓴다. 트럭 기사는 발권기 삼 단에서 통행권을 뽑더니 휭 가버린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어마어마한 몸체, 심장까지 궁궁 파고드는 소리, 영락없는 재우. 재우를 만난 건 신의 은총일까 장난일까. 덤프트럭의 쇠 덮개 틈에서 푸..

나의 소설 2024.04.02

탈골

탈골 모녀는 방파제 입구에 선다. 뜨뜻한 기에 찬 기 섞인 바람이 분다. 굴 폐각이 썩는 냄새, 주변에 널린 그물에서 스멀스멀 퍼지는 냄새, 물고기와 해초들의 비릿하며 미끈거리는 냄새가 습하게 달라붙는다. 늘그막 한 딸이 노모의 팔을 잡고 방파제로 올라간다. 톡톡, 톡톡, 지팡이 두드리는 소리가 밤바다로 녹아든다. 모녀는 말없이 방파제 끝으로 간다. 딸이 방파제 끝에다 돗자리를 편다. “엄마, 바로 앞이 바다예요. 조심해요.” 딸은 노모를 돗자리에 앉힌 후 그 옆에 선다. 밤하늘은 밤바다로 너르다. 둥근달이 구름에 가려 반쯤 드러나다 온전히 드러나다 한다. 바다 저 편엔 둥글고 허연 양식장 부표가 줄에 매달려 둥둥 떠 있다. 그 뒤론 무인 등대에서 내쏘는 빛이 반짝반짝 터진다. 노모는 그 무엇도 보이지 ..

바깥 풍경

바깥 풍경 그는 불어와 철학을 공부했으며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에선 모 대학에서 미학을 강의한다. 대학 외 여러 인문학 기관에선 철학 이론을 바탕으로 문학 강의를 한다. 그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교수로 알고 있다. 그는 멜랑콜리하며 센티멘털하다. 그의 형은 스물 몇인가에 죽었다. 그 일이 그를 멜랑콜리한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혹은 태어날 때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쓴 산문집에는 형의 이야기가 몇 꼭지 나오고, 여자 이야기는 수십 꼭지에 달한다. 그를 콕 집어 이런 사람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하다. 강의할 때는 래디컬 한 반면, 사적인 자리에선 안개에 싸인 듯 몽환적이며 말수가 적다. 그가 홀로 앉아 조용히 썼을 법한 산문집에는 한 여자일 수도 있고 다수의 여자일 ..

동시집 『넉 점 반』

친구 추천으로 윤석중의 동시집 『넉 점 반』을 도서관에서 빌렸습니다. 『넉 점 반』을 여는 순간 가슴에 지진이 납니다. 주인공 아가의 그림은 그냥, 앙~ 깨물어먹고 싶다, 그게 전부입니다. 반복, 반복, 앙~ 깨물어먹고 싶다,입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눈이 그림에 박혀 나올 줄 모릅니다. 아가는 엄마 심부름을 갑니다. 지금 몇 시나 됐나 물어보는 심부름입니다. 아가는 구복상회라는 가겟집으로 가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 시냐구요.” 묻습니다. 돋보기를 쓴 가겟집 할아버지는 “넉 점 반이다” 알려줍니다. 아가는 시간을 잊지 않으려 “넉 점 반” “넉 점 반”을 외우며 집으로 갑니다. 가는 도중 아가는 개미가 노는 것도 보고, 닭이 물을 먹는 것도 보고, 잠자리 떼가 나는 것도 보고, 꽃이 핀 데..

『레베카』

대프니 듀 모리에는 1930년 장편소설 『레베카』를 출간한다. 지금(2023년)으로부터 93년 전의 작품이다. 세월을 건너 그 시대를 읽는다는 건 대단한 즐거움이다. 환경적 배경은 영국의 대저택 멘덜리이고, 인물적 배경은 귀족과 하층민이다. 인물적 배경을 더 파고 들면 산 자와 죽은 자의 갈등과 욕망이다. 이 소설은 1인칭으로 서술되는 ‘나’가 멘덜리로 가는 길을 회상하는 걸로 시작한다. ‘나’는 귀부인의 시중을 드는, 하녀는 아니지만 그와 다름없는 신분이다. ‘나’가 시중을 드는 벤호퍼 부인은 몬테카를로 호텔로 휴가를 온다. 그 호텔에서 ‘나’는 드윈터 맥심이라는, 멘덜리 대저택의 귀족을 만난다. 멘덜리 대저택은 그림엽서에 나왔고, ‘나’는 어린 시절 그 그림엽서를 간직했던 터다. 그 으리짜한 귀족은 ..

『고비에서』

시가 무엇이라는 정의는 많다. 내게 시는, 사건과 내면을 압축하여 보여주는 것으로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은 추상화에 속한다. 다행히, 고운기 시인의 『고비에서』는 조금이나마 사건으로 내면을 유추할 수 있고, 내면으로 사건을 짐작할 수 있는 시들의 집이다. 2023년 6월에 나왔으며 등단 40년 기념 시집이다. 제목을 보는 순간, 우선 고비 사막이 떠올랐고, 그 다음엔 인생의 굽이진 고비가 떠올랐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은 중의적이다. 아닌 게 아니라, 시들은 고비라는 장소에서 인생의 고비로 넘어가고, 다시 인생의 고비에서 고비 사막이라는 장소로 이동하길 거듭한다. 그러니까 고비 사막은 일종의 내면의 장소인 셈이다. 사막이 척박하긴 해도 생명이 깃들어 있듯, 시인은 암 수술과 치료, 퇴원이라는 사막을 거치면서..

『카메라 루시다』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는 제목부터 사람을 홀린다. 처음엔 카메라로 루시다라는 여자를 찍어 말하려는 걸까? 참 멋진 제목이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루시다라는 용어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106쪽에 “프리즘을 통과하는 대상을 스케치할 수 있도록 만든 기계 장치의 이름”이라는 문장만 나온다. 그 문장만으론 ‘카메라 루시다’를 말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특별한 프리즘과 거울 또는 현미경 따위를 이용하여 물체의 상을 일시적으로 종이나 화판 위에 비추어 주는 광학 장치”라고 나온다. 광학 장치의 명칭치곤 대단히 문학적이다. 이 책 제목에 끌려 읽고자 했던 때로부터 제법 많은 해가 지났다. 인터넷 서점에선 여전히 절판이었다. (열화당에서 나온 초판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이 작품은 너무나 유명해서 읽지 않았음에도 읽은 듯한 착각을 준다. 『춘향전』을 읽지 않았지만 읽었다는 착각을 주는 것과 흡사하다. 시간은 많이 흘러 지금은 2023년이다. 1770년대 젊은 베르테르의 사랑이 자본의 힘으로 사는 현대에도 통하리라는 생각은 버거운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사랑’이라는 화두는 인간의 기저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임엔 분명하다. 다만, 사랑을 어떤 식으로 행하느냐, 읽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서사는 널리 알려진 대로다. 주인공 베르테르가 약혼자가 있는 로테를 사랑하다 자살했다는 얘기. 당대 이 책을 읽었던 젊은이들에겐 공감대가 컸으리라 짐작한다. 미완의 사랑이 마치 자신과 같아서 베르테르처럼 자살한 사람이 많았다던가. 해서,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던가. ..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

이 단편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선에 수록되어 있다. 1860년 대 배경으로, 당시엔 집에서 출산하는 게 적절하다고 여긴 시절이다. 병원에서 출산하는 건 오십 년 정도 시대를 앞선 일로, 여유가 있는 집에서나 할 수 있다. 로저 버튼 부부는 병원에서 출산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태어난 아이는 모두를 경악케 한 기이한 모습이다. 버튼 씨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칠십 대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외양도 그렇지만 태어나자마자 말도 한다. 병원 관계자들은 한시바삐 저 기괴한 생물체를 병원에서 내보내고자 한다. 그때부터 버튼 씨는 곤경에 처한다. 당장 퇴원을 해야 하는데 배내옷이 아니라 양복을 준비해야 한다. 버튼 씨는 허둥지둥 양복을 맞춰 아들에게 입힌 후 집으로 데려온다. 그렇게 노인 아들 벤저민 버튼은 유치원..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읽기란 만만치 않다. 오래 전 『세월』을 읽다 포기한 경험이 있다. 그럼에도 『댈러웨이 부인』은 꼭 읽어보고 싶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몇몇 책을 구입하려다 절판이어서 도서관을 찾는다. 도서관에서도 역시나 구할 수 없다. 그러던 중 『댈러웨이 부인』이 있어 빌리기로 한다. 버지니아 울프 하면, 의식의 흐름을 좇는 소설로 유명하다. 『댈러웨이 부인』도 역시 그렇다. 서사는 뒤죽박죽, 등장인물들은 다양하게 많다. 헌데 이 책은 장편이면서도 소제목이나 챕터가 없다. 소설 한 권이 통째로 이어진 장편이다. 독자들로선 피곤하고, 심지어 괴로움마저 느낀다. 예컨대, 주인공 댈러웨이 부인이 무엇을 보고 그 장면을 서술하는 와중에, 줄 바꿈도 없이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생각이 등장하는 식이다. 독..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로베르토 볼라뇨의 이 소설은 독특하다. 아니, 소설인가? 하는 의아함이 드는 소설이다. 한마디로 소설의 전형성을 전복시킨 소설이다. 마치 어떤 책을 읽고 줄거리를 소개하는 듯하다. 그만큼 간략하며, 객관적이며, 사실적이다. 소설 특유의 디테일한 표현을 기대했다면 일찌감치 포기해야 한다. 이 소설은 어느 장르에 넣기도 어렵다. 장편소설도 단편소설도 산문도 아니면서, 소설은 소설이다. 그렇다고 소위 ‘손바닥소설’이라고 단정하기엔 미진하다. 각 소설의 분량은 어느 것은 한 페이지, 어느 것은 두어 페이지 정도로 짧다. 그런데 소설의 무게감은 분량과는 다르게 제법 두툼하다. 아마도 작가의 해박한 지식에 더해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독자를 속이는 고도의 기법 때문이 아닐까 한다. 등장인물들은 남미 여러 국가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