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소설 4

탈골

탈골  김정주  모녀는 방파제 입구에 선다. 뜨뜻한 기에 찬 기 섞인 바람이 분다. 굴 폐각이 썩는 냄새, 주변에 널린 그물에서 스멀스멀 퍼지는 냄새, 물고기와 해초들의 비릿하며 미끈거리는 냄새가 습하게 달라붙는다. 늘그막 한 딸이 노모의 팔을 잡고 방파제로 올라간다. 톡톡, 톡톡, 지팡이 두드리는 소리가 밤바다로 녹아든다. 모녀는 말없이 방파제 끝으로 간다. 딸이 방파제 끝에다 돗자리를 편다. “엄마, 바로 앞이 바다예요. 조심해요.” 딸은 노모를 돗자리에 앉힌 후 그 옆에 선다. 밤하늘은 밤바다로 너르다. 둥근달이 구름에 가려 반쯤 드러나다 온전히 드러나다 한다. 바다 저 편엔 둥글고 허연 양식장 부표가 줄에 매달려 둥둥 떠 있다. 그 뒤론 무인 등대에서 내쏘는 빛이 반짝반짝 터진다. 노모는 그 ..

바깥 풍경

바깥 풍경  김정주   그는 불어와 철학을 공부했으며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에선 모 대학에서 미학을 강의한다. 대학 외 여러 인문학 기관에선 철학 이론을 바탕으로 문학 강의를 한다. 그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교수로 알고 있다. 그는 멜랑콜리하며 센티멘털하다. 그의 형은 스물 몇인가에 죽었다. 그 일이 그를 멜랑콜리한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혹은 태어날 때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쓴 산문집에는 형의 이야기가 몇 꼭지 나오고, 여자 이야기는 수십 꼭지에 달한다. 그를 콕 집어 이런 사람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하다. 강의할 때는 래디컬 한 반면, 사적인 자리에선 안개에 싸인 듯 몽환적이며 말수가 적다. 그가 홀로 앉아 조용히 썼을 법한 산문집에는 한 여자일 수도 있고..

탈골

탈골 모녀는 방파제 입구에 선다. 뜨뜻한 기에 찬 기 섞인 바람이 분다. 굴 폐각이 썩는 냄새, 주변에 널린 그물에서 스멀스멀 퍼지는 냄새, 물고기와 해초들의 비릿하며 미끈거리는 냄새가 습하게 달라붙는다. 늘그막 한 딸이 노모의 팔을 잡고 방파제로 올라간다. 톡톡, 톡톡, 지팡이 두드리는 소리가 밤바다로 녹아든다. 모녀는 말없이 방파제 끝으로 간다. 딸이 방파제 끝에다 돗자리를 편다. “엄마, 바로 앞이 바다예요. 조심해요.” 딸은 노모를 돗자리에 앉힌 후 그 옆에 선다. 밤하늘은 밤바다로 너르다. 둥근달이 구름에 가려 반쯤 드러나다 온전히 드러나다 한다. 바다 저 편엔 둥글고 허연 양식장 부표가 줄에 매달려 둥둥 떠 있다. 그 뒤론 무인 등대에서 내쏘는 빛이 반짝반짝 터진다. 노모는 그 무엇도 보이지 ..

바깥 풍경

바깥 풍경 그는 불어와 철학을 공부했으며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에선 모 대학에서 미학을 강의한다. 대학 외 여러 인문학 기관에선 철학 이론을 바탕으로 문학 강의를 한다. 그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교수로 알고 있다. 그는 멜랑콜리하며 센티멘털하다. 그의 형은 스물 몇인가에 죽었다. 그 일이 그를 멜랑콜리한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혹은 태어날 때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쓴 산문집에는 형의 이야기가 몇 꼭지 나오고, 여자 이야기는 수십 꼭지에 달한다. 그를 콕 집어 이런 사람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하다. 강의할 때는 래디컬 한 반면, 사적인 자리에선 안개에 싸인 듯 몽환적이며 말수가 적다. 그가 홀로 앉아 조용히 썼을 법한 산문집에는 한 여자일 수도 있고 다수의 여자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