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5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것 하나

김진영의 『조용한 날들의 기록』을 읽다 흠칫 멈춘 문장 하나. “다시 아버지 생각. 아버지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모두가 못다 쓴 편지를 남기는 이들이 아닐까.”-157쪽 “아침에 아버지 생각. 아버지에게도 꿈이 있었을 것이다.”-168쪽 이 문장에서 나는 꼼짝도 못한 채 있기만 한다. 내게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이고, 엄마는 그냥 엄마였을 뿐이다. 실은, 자식에게 모든 걸 제공하는 희생의 공급자라는, 사회적 관념이 다였다. 엄마 아버지를 하나의 개체로 생각하거나, 인간적 욕망이나 희망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 시아버지가 생각난다. 시아버진 평생 철도 공무원으로 묵묵히 일하시다 퇴직하신 분이다. 남편에게서 전해들은 말이다. “아버진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

나의 이야기 2023.05.12

<<조용한 날들의 기록>>

이 책은 ‘철학자 김진영의 마음 일기’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쓴 일기 형식으로 생활에서 보고 느낀 것도 있지만 아포리즘도 있다. 책장을 열자 첫 문장부터 눈을 사로잡는다. “눈이 내리면서 가르쳐주는 것. 고요히 사라지는 법.” ; 이 문장에서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윤리의 한편을 전달받는다. 2월에 쓴 문장. “노예란 누구인가? 그는 혀가 잘린 사람이다.”(롤랑 바르트 ) ; 나를 포함해 바른 말을 해야 할 순간에 바른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꾸짖는 존엄한 목소리를 듣는다. 다른 문장. “멜랑콜리는 우울이 아니다. 특별한 정신의 상태다.” ; 흔히 쓰는 우울증, 우울감에 대한 특별한 대우를 받는 느낌이 든다. 생활에서 겪는 솔직한 이야기도 있다. “눈뜨면 나보다 먼저 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