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기 시인의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에 나온 ‘시인의 말’은 인상 깊다. 뭐랄까, 웅성거리는 속내를 고운기 시인 특유의 나직하고도 간결한 음성으로 썼다고나 할까. 1987년 1월,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에 쓴 ‘시인의 말’을 옮겨본다. 기쁨은 때로 두려움을 동반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나만큼이나 소심한 사람은 기쁠 때도 저편의 슬픔을 생각한다. 정작 슬픔 속에선 기쁨의 저편을 노래하지 못한 것이 못내 죄스럽다. 내 아직 어리므로 잘못은 두고두고 고쳐가리라. 2022년 10월,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개정판에 쓴 시인의 말도 마음에 남는다. 이생에 나는 가을을 좋아했나보다. 가장 철든 계절이 가을이다. 35년여 만에 첫 시집을 다시 내려 유심히 읽어보니 그렇다. 다시 오는 생이 있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