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의 기원1
-한나 아렌트의 관심-
히틀러의 대량학살은 내게 미스터리 그 자체였다. 많은 사람이, 그들 중엔 엘리트도 다수 있었을 터인데 어째서 히틀러라는 한 인간에 마취되었는지, 인간의 양심은 어디로 실종된 것인지 궁금했다.
마침 철학아카데미에서 ‘한나 아렌트와 근대의 악 그 급진성과 평범성’이라는 주제로 강의(김만권 교수)가 개설되었다. 텍스트는 아렌트의 여러 저서지만 주로 『전체주의의 기원』을 바탕에 두고 있었다. 몇 차례 들은 강의와 『전체주의의 기원1』을 통해 스토리라인을 잡아본다.
저자 한나 아렌트(1906-1975)는 독일 하노버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그녀는 전체주의의 이론가이고 정치적 자유의 철학자이다.”(13쪽) “‘자유’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정치’를, ‘정치적인 것’을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 아렌트의 근본 정치사상이다.”(16쪽)
그녀는 ‘권리를 가질 권리’에 대해 강연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자유’를 염두에 말이다. 즉, 자유를 얻기 위해선 시민권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시민권 없이는 그 어떤 보장도 받을 수 없기에 그렇다. 시민권은 ‘속할 곳’을 보장하는,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녀 역시 디아스포라를 겪은 선조들처럼, 나치가 정권을 잡자 시민권을 박탈당했고, ‘살인 공장’으로 잡혀갔으며, 간신히 탈출하여 프랑스로, 그 다음엔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로 인해 그녀는 오랜 세월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을 겪었고, 평생의 프로젝트를 주권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1』에서 나치의 악(Evil)을 이렇게 말한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 때, 그것은 처벌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절대적인 악이 된다. 절대 악은 이기심, 탐욕, 시기, 적개심, 권력욕이나 비겁함 같은 사악한 동기로 이해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분노로도 복수할 수 없고 사랑으로도 참을 수 없으며 우정으로도 용서할 수 없다”며, “어떻게 이러한 악을 이해할 수 있는가?”(22쪽) 라고 토로한다. 여기서 “아렌트의 정치철학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14쪽) 라는 말이 나온다.
인간에겐 ‘자발성’이 근본을 이루는데, 아우슈비츠에서 그 많은 사람은 왜 그렇게 ‘자발성’없는 파블로프의 개로 움직였는지, 인간의 잔인함은 왜 문제가 되는지, 이 악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지, 이 악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지, 아렌트가 가진 의문이 내 의문이기도 하다.
아렌트는 악의 본질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악의 핵심은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이며, 사회는 믿음 없이는 돌아가지 않으나 또한 악이 작동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모든 악의 이름은 ‘정의’로, ‘불가피’라는 말로 나온다고도 한다.
예컨대, 아이히만이 법정에 섰을 때, 그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을 뿐, 악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했다. 또한 독일 병사는 “나는 수용소의 유대인을 죽였지만 내겐 아무런 악이 없다”고 주장했다. 아이히만의 경우는 다시 같은 상황이 생긴다 해도 그때와 똑같이 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렇듯 ‘정의’와 ‘불가피’라는 가면은 전체주의에 오염된 ‘그들만의 양심’을 대변한다.
아렌트는 자유에 대한 그 어떤 것도 배울 수 없는 체제가 전체주의이며, 전체주의는 오직 체제를 위해서만 움직이며, 전체주의가 시작되는 곳에서 정치는 끝난다고 말한다. 또한 전체주의 요소는 어느 사회에나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모든 나라의 정치가 그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뜻한다.
아렌트의 탁월한 점은 전체주의를 양파 구조로 본다는 점이다. 양파 한 가운데 빈 공간엔 지도자가 있고, 그 빈 공간을 감싸고 있는 것은 엘리트층이며, 엘리트층을 감싸고 있는 것은 폭민(조직되지 않은 거대한 폭력적 군중)이며, 폭민을 감싸고 있는 것은 대중이라고 봤다. 각각의 층을 넘기 위해선 열성을 보여야 하고, 열성은 연좌제로 이어지고, 연좌제는 나의 열성을 고발로 나아갈 때 성립되며, 고발은 내 이유를 고발하게 되므로 개인은 원자화가 된다. 모든 것을 받쳐주는 게 ‘대중’이기에 대중 없이 전체주의는 성립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전체주의의 핵심적 목표는 대중의 운동을 끊임없이 유지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전체주의 운동을 통해서만 모든 개인이 총체적으로 지배될 수 있기 때문이다”(25쪽) 즉, 히틀러가 ‘살인 공장’을 가동시킬 수 있었던 건 대중의 힘을 전제로 했기에 가능했다.
대중은 히틀러의 정치 선전인 “우리는 대단히 과학적이다”에 매료되었고, 그 말을 믿고 히틀러를 지지한다. 그 선전엔 ‘속할 곳’이 없는 인간은 과학적이지 않으며 동시에 잉여 인간이자 유대인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폭민과 엘리트는 그 이론에 따라 유대인을 제거하는 데 앞장선다.
아렌트는 사회적 엘리트들이 냉철한 이성으로 다가가지 않고 감정적으로 폭민과 결합할 때 전체주의로 발전하게 된다고 말한다. “전체주의는 간단히 말해 폭민의 정권이다.”(26쪽) “전체주의 정권은 이들에게 개인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대신 역사적 운동의 주체라는 허위의식을 심어준다. 그들은 거대한 운동에 기여한다는 목적을 위해 자신의 인격과 개성을 희생한다.”(26쪽) “이처럼 전체주의 정권은 무한히 많고 다양한 인간을 마치 모든 인간이 하나의 개인인 것처럼 조직한다.”(26쪽) “대중이 똑같은 의견을 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동일하게 행동할 때, 그들은 전체주의의 폭민이 된다.”(26쪽) 따라서 폭민은 행위 대신 반응할 뿐인 ‘파블로프의 개’로 전락한다.
폭민과 엘리트 계급이 ‘파블로프의 개’가 된 것과는 다른 양상의 ‘파블로프의 개’가 있다. 그들은 아우슈비츠에서 독일군에게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유대인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유대인들이 나치에 잡혀 수송열차를 탔을 때 나치는 유대인들을 나체로 만들어 가축용 열차에 태웠다. 맨살의 사람들이 조그마한 틈도 없이 빼곡히 붙어서, 하루도 안 걸릴 거리를 며칠이나 돌아다니게 한 것은 나치의 계획이었다. 너희들은 이제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라는 뜻이었다. 나치는 유대인이 열차에서 내려 수용소로 갈 때는 삭발을 시키고 ‘죄수복’을 입혔다. 수용소에서는 죽지 않을 정도로만 고문을 했다. 자살도 할 수 없었다. 나치는 자살하면 그의 가족 전부를 죽인다고 알려주었다. 치밀하고도 조직적인 개인성 말살이 아닐 수 없다. 유대인이 죄인 아닌 죄인으로 ‘파블로프의 개’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세계로부터의 소외’를 전체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파악”한다.(18쪽) 폭민과 유대인의 공통점은 바로 ‘세계로부터 소외된 자’라는 점에 있다. 폭민은 정치에 관여할 수 없는 낮은 계급이고, 유대인 또한 어느 나라에 있든 반기지 않는 존재였다. 하지만 폭민은 유대인을 소외시키는 것으로 정체성을 찾은 반면, 유대인은 여전히 반유대주의자들에 의해 탄압을 받는다.
그렇다면 유대인이 ‘세계로부터 소외’된 시기는 언제이며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근대의 반유대주의는 전통적 민족주의가 쇠퇴함에 따라 증가했으며, 유럽의 국민국가 체제와 그 위태위태하던 권력 균형이 무너진 바로 그 순간 정점에 도달했다.”(84쪽) “폭민은 그들이(유대인을 말함) 국가 통치의 아무런 실질적 기능을 담당하지 못하는 기생충과 같다고 느꼈”(85쪽)으며, “반유대주의 역시 유대인들이 공적 기능과 영향력을 잃고 재산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을 때 절정에 달했다.”(85쪽) 또한 유대인의 재정적 지원을 받지 않아도 되게끔 의회가 결성된 것도 한몫을 했다. 거기다 “대중의 분노를 가라앉힐 필요가 있을 때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만들었다.”(230쪽) 대표적인 예가 드레퓌스 사건이다. “드레퓌스 사건은 1894년 말 프랑스에서 발생”(215쪽)했으며, 프랑스군의 대위이자 유대인이었던 드레퓌스를 독일군의 스파이로 몰아 유죄를 선고한 사건이다. 이때 드레퓌스를 옹호한 드레퓌스파와 반드레퓌스파로 갈리는데, 드레퓌스파의 핵심 인물에는 클레망소와 에밀 졸라가 있다. 그들은 신문과 소설로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나 반드레퓌스파의 테러를 받고 주춤한다. 하지만 파리 법정은 반드레퓌스파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드레퓌스의 유죄를 이어간다. 드레퓌스파와 반드레퓌스파가 엎치락뒤치락 하는 사건은 곧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고, 드레퓌스는 결국 무죄를 선고 받는다. 그 배경에는 1900년의 파리 박람회가 있다. 프랑스는 곧 있을 박람회가 ‘드레퓌스 사건의 유죄’로 인해 보이콧될지도 모른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아렌트는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를 몰락의 길로 내몬 것은 더 이상 진정한 드레퓌스파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민주주의와 자유, 평등과 정의가 공화정의 형태로 수호되고 실현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없었다.”(221쪽)라고 지적한다.
아렌트가 “현실과 화해하려면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28쪽) 라고 한 말은 이처럼 유대인이 처한 역사적 현실과 그들을 둘러싼 대중의 관점, 유대인들끼리의 이해관계, 유대인들의 처세법을 알아야 한다. 유대인들은 어느 나라에 있든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시온사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시온운동은 반유대주의에 대항하여 유대인이 발견할 수 있던 유일한 대답이었고, 자신들을 세계적 사건의 중심에 세웠던 적대감을 심각하게 고려한 유일한 이데올로기였다.”(263쪽)
아닌 게 아니라 그동안 유대인들은 사방에서 공격을 받을 때마다 “유대인이지만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172쪽)하려 했고, 일반 대중과 마찬가지로 빈곤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안전을 도모했다. 다른 한편에선 일류 가문과 정략결혼을 하는 것으로 사회적 지위를 얻으려 했고, 부유한 ‘예외 유대인’과 교육받은 ‘예외 유대인’이 가난한 유대인을 지배하기도 했다.
유대인의 생존에 가장 위협적인 것은 개종이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빵을 얻을 수 없었던 때문이다. 그에 반해 “교육 받은 첫 세대의 유대인은 여전히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기를 진정으로 원했다. 뵈르네는 ‘어떤 이들은 나를 유대인이라고 비난하고 어떤 이들은 그 때문에 칭찬하며 또 다른 이들은 내가 유대인이라는 점을 너그럽게 봐주지만, 그것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라고 신랄하게 썼다. 18세기의 이념 위에서 성장한 그들은 여전히 기독교인도 유대인도 없는 나라를 꿈꿨다.”(177쪽)
이와 같이 유대인의 심리나 처세는 그때그때의 환경과 사건에 따라 복잡하게 얽히며 변한다. 살아남기 위해, 또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정치에 무심한가 하면, 돈을 많이 번 유대인의 경우는 귀족에게 돈을 대주는 것으로 상류계급과 교제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살인 공장’을 돌렸던 사람들 중엔 유대인과 가장 친했고 유대인 친구를 가장 좋아했고 그들에게 가장 큰 매력을 느꼈던 사회 계층이 있었다. 그들 ‘친유대주의자들’은 어느 면에선 유대인을 보고 즐기며 그들에게 매료되었다. 당시 ‘살롱’의 주인은 유대인이었고, 귀족들은 기꺼이 살롱으로 가 자신들의 악덕과 동성애를 즐겼다. 아렌트는 프루스트가 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바로 이 점을 간파한다. “19세기의 가장 은밀한 질병인 끔찍한 권태와 보편적인 피로”를 ‘살롱’으로가 해소한다고 말이다.
다른 철학자들이 유대인과 홀로코스트를 역사성으로 다뤘다면 아렌트는 유대인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을 ‘있을 수 있는 일’로 전환한다. 같은 유대인이면서 유대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우리나라로 치면 일제강점기의 원인을 우리나라 사람에게 묻는 격이다. 아렌트가 유대인에게 적이 되는 까닭이다.
나는 어떤 강연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일제의 침략이 일본에게만 책임이 있을까요? 우리는 일본에게 침략을 당하기 전 무엇을 했나요? 우리에겐 과연 책임이 없을까요?”
이 스토리라인은 지금까지 들었던 강의와 『전체주의의 기원1』을 중심으로 썼다. 그러나 강의는 아직 진행 중이고, 책을 다 읽은 것도 아니다. 미진한 부분은 강의와 나머지를 읽으며 채워나갈 계획이다.
하나 더 첨부한다면 한길사가 펴낸 『전체주의의 기원』은 번역이 매끄럽지 않다. 그러나 번역이 있어 좋은 책, 다른 세상, 다른 사상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 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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