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찾아온 김장철.
김장철을 제일 먼저 알려주는 메신저는 우리 작은언니다.
작은언니는 예의 그렇듯, 11월만 되면 김장에 대해 입을 뗀다.
언제 할 거냐, 몇 포기 할 거냐, 마늘과 젓갈은 있냐, 내 스케줄이 있으니 미리 말해라, 등등 거의 졸라대듯이 한다.
나는 언니에게 김장을 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언니는 막내인 내가 늘 미덥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게 지금까지 우리집 김장은 작은언니가 해주었다.
그런데 작은언니표 김장은 작년으로 디엔드다.
작은언니는 작년에 김장을 해주며 말했다.
“이젠 나이도 들고 몸도 예전만 못하니 내년부턴 니네 내외가 알아서 해. 할 수 있겠니?”
우리집은 김장이라고 해봐야 열 포기다.
알타리며 파김치도 담그긴 하나, 그것도 언니가 해주니까 하는 거다.
몇 해 전, 배추 열 포기를 담가준다고 큰언니 작은언니가 왔었다.
나는 거실에 야외용 돗자리를 펴고 김치통이며 도마, 칼, 플라스틱 그릇 등속을 늘어놓았다.
그때 언니 둘은 나를 보며 어이없어 했다.
“하이고, 막내야, 겨우 열 포기를 담는데 김치통을 저리 많이 내놓으면 어쩌냐?”
아닌 게 아니라 배추 열 포기는 내가 내놓은 김치통을 반밖에 채우지 못했다.
김장이 끝나자 큰언니는 고무장갑을 벗으며 깔깔댔다.
“아니, 김장이라고 왔더니 헛쩍했네. 무슨 김장이 하다 만 느낌이 드냐?”
김장철만 되면 큰언니가 그립다.
작은언니는 우리집 가까이에 살아 자주 보지만, 큰언니는 대구에 살아 보기가 어렵다.
더구나 요즘 큰언니는 많이 아프다. 몇 달 전엔 암 수술을 했고, 며칠 전엔 심근경색 수술도 했다.
형부도 앞세운 처지라, 혼자 오두마니 집에서 투병하는 중이다.
투병도 혼자일 때와 가족이 있을 때는 많이 다르다.
혼자는 외로움을 배가시킨다. 외로움보다 강한 적은 없다.
우리 엄마도 외로움에 시달리다 돌아가셨다.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
엄마는 막내가 쌀쌀맞다고, 전화 한 통도 안 해준다고 항상 아쉬워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짜증이 났었다.
엄마와 무슨 할 말이 있으며 해봐야 식사하셨냐는 게 전부인데 엄마는 왜 자꾸만 나를 찾을까.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가슴을 후벼대는 건 전화 한 통이다.
막내딸 전화를 그리도 기다렸는데 나는 소설을 쓴답시고 늘 바빴고, 엄마를 상대해 줄 여유가 없었다.
그런 아픔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 나는 매일 큰언니에게 전화한다.
할 말도, 웃을 일도 만들어내며 킬킬거린다.
전화를 끊고 나면 마음이 아프다.
인생 자체가 시한부라, 그에 따른 고통은 당연한 것이건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올해도 작은언니가 먼저 김장 얘기를 꺼냈다.
나는 남편과 잘 할 거라니까 걱정 말라고 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언니는 이런 말을 했다.
“그래, 이번엔 니네 둘이서 잘해봐. 내가 안 해줘도 되지?”
언니 말끝에 미안함이 묻어나왔다.
막내라는 특권(?)이기에 받을 수 있는 애정이 아닐 수 없다.
막내여서 나쁜 점도 있다.
큰언니는 나보다 12년, 작은언닌 10년이 많다.
언니 둘은 지금 나와 통화도 하고 왕래도 하지만, 언니 둘이 가버리면 나는 통화도 왕래도 할 수 없다.
나이대로 가는 건 아니지만 나이 차가 워낙 많다보니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그 생각이 날 때마다 참담함이 뭉글뭉글 올라온다. 눈물도 막 나고 지레 언니들이 보고 싶어진다.
작은언니가 해주는 김장은 작년으로 끝이 났지만, 나는 작은언니와 김장을 할 때면 큰언니가 왔던 때를 꼭 꺼낸다.
배추 열 포기를 하면서 김치통을 잔뜩 꺼내 놔서 웃었던 일, 무슨 김장을 하다 만 꼴로 이렇게 헛쩍할 수가 있냐, 그런 말들...
말은 참 기억도 잘한다.
계절이 오면 그때 했던 말들, 그때 나눴던 음식들, 그때 터트렸던 웃음을, 여지없이 되감아 보여준다.
지난 주말엔 갑자기 알타리가 먹어 싶어 급히 알타리를 담그기로 했다.
작은언니에겐 제법 자랑스레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육수를 끓였다고 카톡을 쳤다.
작은언니는 찹쌀풀을 쑤었냐고 답이 왔다.
아차, 찹쌀풀을 잊었다.
큰언니는 알타리 이파리가 숨을 죽일 때까지만 절구고, 그 안에 양념을 미리 해놓으라고 카톡이 왔다.
나는 답을 쳤다.
생강이 없어. 사러 가야 돼. 마늘도 없어. 사러 가야 돼. 한심하지? ㅋㅋㅋ
큰언니가 답이 왔다.
이 한심한 동생아, 그런 건 미리 준비해뒀어야지.
나도 내가 한심한 줄 안다.
그런데 말이지, 나는 그렇게 한심한 동생 역을 하는 게 즐겁다.
언니들이 있어서이다.
밤늦게 알타리를 담근 후 언니들에게 카톡을 쳤다.
언니들~ 알타리가 얼마나 아름답게 됐는지 몰라. 컬러며 맛이며 완전 굿! 굿!이여.
언니들~ 알타리 먹으러 우리집에 와. 언니들과 아삭아삭 알타리 씹어가며 수다 떨어야지.
김장철이면 자동으로 언니들이 생각난다.
언니들이 언제까지 내 곁에 있어줄지 모르지만 지금을 실컷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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