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영화 '택시운전사'를 본 후

유리벙커 2017. 8. 21. 19:03



날짜가 여의치 않아 오늘에야 택시운전사를 봤다.

보는 내내 마음은 요동치고 가슴은 조였다.

영화관을 나오면서는 먹먹하고 착잡해졌다.

19805월 그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광주에서 그렇게 끔찍한 일이 벌어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무리 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섰다 해도 그런 학살이 벌건 대낮에, 그것도 광주를 제외한 다른 도시에서조차 모르게 일어났다는 게 상상을 초월했다.

80년이 몇 년 흐르는 동안 민주화 데모는 이어졌고, 그 어느 때쯤에야 나는 광주항쟁을 알았다. 교회에서였다. 교회 마당엔 피투성이로 얻어맞거나 죽은 시체들이 든 사진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었다. 데모를 하다 쫓긴 대학생들이 교회로 피신해 왔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랬음에도 전적으로 믿어지지 않았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실감할 수 없었다.

당시엔 야당 총재로 있던 김영삼이 데모하는 군중과 함께 있다 봉변을 당하는 뉴스를 접했다. 충격을 받았다. 정치를 몰랐던 나지만, 어떻게 야당 총재를 저렇게 할 수 있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즈음이다. 시청 앞을 지나게 됐다. 최루탄이 근처에서 터졌다. 숨을 쉴 수가 없었고, 얼굴이며 눈이 미치게 따갑고 쓰렸다. 이게 바로 최루탄이고 데모라는 거라고 알았다. 그뿐이었다.

 

십 년이 흘러갔다.

광주항쟁의 역사는 질기게 계속 됐고, 나는 마음이 걸려 참을 수가 없었다.

친구에게 광주로 여행을 가자고 꼬드겨 망월사묘역을 찾았다.

초라하게 있는 묘역들, 영혼들. 어느 누구도 환영하며 기리지 않는 뒷전에 깔려버린 존재들.

감히, 머리 숙여 참배를 했지만 속죄하는 마음은 차오르지 않았다.

그 후, 또 다른 친구와 여행을 갔다. 우리는 밤을 새워가며 그때,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화장품과 옷과 잘 먹고 잘 사는 일에 열심이었던 우리의 모습이 이야기를 통해 나왔다. 우리는 어느 새 울어가며 그 시절을 말하고 있었다.

 

택시운전사를 보기 한참 전부터 든 생각이 있다.

계엄군으로 있던 그 많던 군인들, 착검한 총으로, 곤봉으로 민간인을 무참히 살해하던 군인들,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에 대한 생각이다. 그 군인들도 지금은 50~60대 나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자식이 있고 손자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식 앞에, 손주 앞에 어떤 얼굴로 있는지, 직업은 어떤 걸 가지고 살아왔는지, 왜 그동안 양심선언을 한 군인은 단 한 사람도 없는지, 그들이 궁금했다. 그들의 육성이 듣고 싶었다.

항간엔 이런 말도 있다. 그들도 피해자라고. 그 말이 맞긴 하나 나는 동의할 수 없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 떠오른다. 전범 재판에서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명령에 의해 유대인을 학살했고, 따라서 자신에겐 죄가 없다고 했다. 아렌트는 그것을 악의 평범성으로 간주한다. 누군가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는 말은 면죄부가 될 수 없다. ‘택시운전사에서도 검문을 하는 박 중사의 경우, 택시 운전사와 외국인 기자를 잡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놓아준다. 그렇다면, 명령을 어긴 박 중사는 처벌 받아 마땅한 군인이었나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에서 보면, 군인들은 살인에 열광한다. 곤봉으로 제압할 수 있는 것도 군홧발로 짓밟고 조준 사격한다. 이것을 어찌 명령에만 복종한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물론 당시엔 광주 시민을 빨갱이로 몰아갔고, ‘빨갱이는 죽여도 좋다는 암암리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러기 전, 광주 시민도 사람이고, 내 오빠이자 형제라는 생각, 그 마땅한 생각은 들지 않았을까.

지인 중 누군가는 말한다. 한겨레21에 보면 그때의 군인들 중 어떤 이는 정신질환을 앓거나 자살하기도 하고, 종교에 귀의한 사람, 망월사 묘역에서 참회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또 지인 중 누군가는 확인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공수부대원들에게 환각제를 먹여 환각상태에서 시위 진압을 했다는 말도 한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되풀이 되어선 절대 안 되는 일이다.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커다란 땅을 가진 나라라도 마찬가지다) 정치인 누군가를 위해 국민이 학살당하는 일은 전대미문의 일이며, 나치의 아우슈비츠를 복사해 놓은 꼴이다. 아우슈비츠뿐인가.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도 있고, 세계 곳곳의 역사엔 독재자를 위한 학살의 현장이 있다. 그래서 적폐청산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과거 없는 현재가 어디 있으며, 미래 또한 어디에 있겠는가. 다행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 적폐청산을 한다니 힘을 실어줄 일이다.

 

민주주의는 피를 부른다. 그만큼 희생을 치러야 얻을 수 있는 자리다. 나는 지금도 부채감으로 떳떳하지 못하다. 단 한 톨의 그 무엇도 하지 못한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 진정,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린 분들께 감사를 전하며 용서를 구한다. 다시는 동족이 동족을 죽이는 일은 없길, 국민이 깨어 있고 정부가 깨어 있길, 마음에 민원을 넣는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구 두타연에 가다  (0) 2017.10.17
나는 갈 테다  (0) 2017.09.09
우스운 갑질  (0) 2017.07.03
인터넷의 명암  (0) 2017.05.12
전기와 물  (0) 2017.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