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설/독서감상문

<<배신>>의 정체성

유리벙커 2018. 8. 2. 15:53

 

이 책을 읽게 된 건 배신이라는, 우리에겐 다소 부정적인 인식 때문이다.

과연 배신은 나쁘기만 한 것일까. 배신을 하는 입장과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배신은 확실히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배신을 하는 입장에선 고발이라는 정당성을, 당하는 입장에선 피해라는 부정성을 말하고 있을 터다.

이 책의 작가 아비샤이 마갈릿은 이스라엘 태생으로 유대인이다. 유대인인 그는 역사를 통해, 성경을 인용해, 배신의 정체성을 밝힌다. 무려 435쪽을 할애해 챕터별로 사례를 들어가며 조목조목 집어낸다.

우선, 배신이란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신뢰란 그저 그런 믿음이 아니라 전폭적인 믿음을 말한다. 그러한 신뢰가 무너졌을 때를 배신이라 칭한다. 물론,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배신이 되기도 하고 충성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내부고발은 한 부류가 속한 단체의 비리를 외부에 까발리는 것으로, 까발리는 입장에서 보면 정의지만 까발림을 당한 단체는 불의라고 여긴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반역의 전형적인 형태는 적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지원하는 것이다”10. , 자국 입장에서 보면 반역이지만 적국 입장에서 보면 은혜다. 간통의 경우도 그렇다. 외도는 배우자를 배신하는 것이지만, 외도하는 사람들끼리는 신뢰이며 사랑이다.

이 외에도 작가는 부역이 내포하는 배신과 종교적 배신, 계급에 대한 배신을 다룬다. 여기서 기초를 이루는 것은 도덕과 윤리다. “배신은 제도와 관련되는 경우도 많다”12. 는 말은 도덕과 윤리에도 제도가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작가는 배신 혹은 반역에서 무엇이 중심이 되어야 할지 지적한다. “한쪽에서는 반역자가 되고 다른 쪽에서는 영웅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치 있는 신의다.” “문제는 가치 있는 신의에 대한 판단을 어떤 관점에서, 누구의 관점에서 내려야 하는가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어떤 혹은 누구의 관점에서 보든 도덕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55. 예를 들어,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수사관의 감정적 기질과 그 수사관이 상대하는 이념적 반역자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누가 수레에 묶여 거열형을 당하게 되고, 누가 그 수레를 운전하는가는 순전히 우연에 따라 결정한다.”61. 이 말은 어떤 제도 하에 처하게 되었는가에 따라 애국이 되기도 하고 반역이 되기도 한다는 말일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역과 애국의 입장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작가는 이와는 다른 예도 든다. “독일인이면서도 나치 집권 시절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 히틀러 정권에 항거했던 전 독일 수상 빌리 브란트는 다툼의 여지가 없는 영웅이며 나치 독일은 신의를 바칠 만한 가치가 없다.”55. 고 잘라 말한다. , 신의 있는 반역은 어느 쪽에서 보든 반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보편적 도덕률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작가가 말하는 동기의 순수성과 가치 있는 신의”55. 도덕적 목격자는 권력을 쥔 통치자를 위해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330. 라는 말과 부합한다.

이에 반해 작가는 유다의 배신을 돈을 위한 배신은 배신 중에서도 가장 명확한 형태의 배신”347. 이라고 말한다. 누가 봐도 도덕률 제로라는 말이다. 박근혜나 최순실, MB나 다른 정치인들이 어떤 변명을 늘어놓던, 국민의 세금을 착복한 일은 분명, 돈을 위해 국민을 배신한 일이다.

이 외에도 작가는 마르크스를 불러낸다. 384~385.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문명 세계를 창조했다는 사실을 자부심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들은 착취를 당하다보니 자신을 창조자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귀중한 것들의 유일한 원천은 자연과 노동이다” “마르크스의 분석은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에 초점을 맞춘다.” “소비는 마르크스의 관심사가 아니다. 창조자의 역할 속에서 노동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생산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에게 창조자의 역할을 부여했다. 여기서 창조자란 종교 사상에서 말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조자가 아닌, 문명을 창조하기 위해 자연 위에 형태를 새기는 창조자다. 이는 마르크스가 노동자라는 인간을 신격화한 것은 아닌지, 노동자라는 인간에게 자부심은 물론이고 자만심까지 부여한 것은 아닌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공산주의의 탄생은 마르크스의 이론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작가는 좀 더 나아가 연대와 정의에 대해 말한다.399~ 401.

정의는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정의로운 사회란 무엇이며, 원칙적으로 어떤 절차에 따라 정의로운 사회가 만들어지는가? 둘째, 우리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할 수 있는가?” “처음 질문은 외부적 정의에 대한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내부적 정의에 대한 것이다.” “내부적 정의는 어느 정도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파악하고 그것을 신중하게 숙고하는 개인들 사이의 불완전한 정의다. 이런 개인은 정의에 무관심하지 않지만, 다른 필요와 고려 사항에 영향을 받는다. 이들의 정의감은 사회 전체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진지하게 행동하도록 촉구하는 과격한 힘이 아니다. 우선 이들 중 힘을 가진 일부 구성원은 정의롭지 못한 사회의 현상태를 즐긴다. 이 상태가 그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노예제를 폐지한 사람들의 유일한 동기는 정의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정의가 구현되려면 정의감만으로는 충분한 원동력이 되지 못한다. 정의에 대한 일반적 동기 외에 다른 동기가 있어야 한다. 그 동기란 바로 정의로운 사회에서 훨씬 더 잘 잘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이 책은 배신이 가진 방대한 영역을 고찰한 훌륭한 책이다. 나로선 배신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읽게 된 동기를 꽉 채워주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