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설/새로 출간한 책

<<은밀한 선언>>에 따른 소회

유리벙커 2020. 6. 2. 23:46

책이 나왔다. 실로 오랜 기다림이다.
대체 책을 내는 행위가 무엇이기에 작가들은 출간에 목숨 거는 걸까.
존재의 확인이 아닐까 한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책을 내면서 확인받고 싶은 욕망일 테다. 나부터도 누가 내 책을 읽을까 의구심이 나지만, 국립도서관이며 대학 도서관에 내 책이 꽂힌 걸 알 때 무척이나 뿌듯했다. 작가들에게 출간은, 자신을 존중하고 타인에게 존중받는 하나의 행위라고 말하련다.  

 

이번에 나온 『은밀한 선언』은 나를 탈탈 털어 쓴 연작장편소설이다.
이 책뿐 아니라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나를 탈탈 털어 쓴다.
그만큼 혼을 다했다는 뜻인데, 객관적으로 볼 때 글의 실력이 떨어진다 해도, 글 쓸 당시엔 내가 가진 전부를 쏟아 부어, 최선의 작품을 만든다.
『은밀한 선언』 은 내가 살아오는 동안 겪고 배우고 쓴 것들의 종합이다. 특별히 애정이 깊다.
글을 쓸 당시, 나는 글에 나오는 인물들이 된다. 등장인물과 ‘나’는 하나가 되어 호흡을 맞춘다. 애잔하고 속상하고 거만하고 통속적이고 욕쟁이인 캐릭터들이 곧 ‘나’가 되어 내러티브를 엮는다. 『은밀한 선언』을 쓸 때 나는 몹시 재미있었고, 세상을 잊었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 많은 ‘나’와 만나며 사귀었다. 참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의 형식은 좀 독특하다. 글의 형식을 지키되, 자유롭게 풀어주는 형식. 예를 들면, 주어와 술어의 순서를 바꾸기도 했고, 이어지는 문장에서 단을 바꿔 독립된 문장을 만들기도 했다. 내용 또한 새로운 형식에 어울리게 썼다. 그렇게 하기를 습작시절부터 꿈꾸어 왔다. 글의 형식에도 자유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곧 작가의 자유이기도 했다. 소설의 형식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틀에서 벗어나, 작가가 하고자하는 바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유. 속이 후련했다.     

 

글을 쓸 수 있는 힘은 아마 시련에서 비롯할 터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 생각들, 사람들과 부대끼며 맞서보기도 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과정에서, 성숙이라면 뭣하지만, 나와 세상을 발견한다. 책을 읽으며 배우는 것도 글을 쓸 수 있는 커다란 힘이 된다. 총체적으로 볼 때, 그것들은 나와 소중한 인연으로 글이 된다. 아픔이 스승이 되는, 당연하지만 불편하기도 한 이러한 뜻에 기꺼이 나를 던진다.

 

책이 나온 후엔 이별이 있다. 아무리 나를 던져 만든 작품이라도 곧 잊어야 하며 잊는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글을 쓸 수 없다. 다행히, 나는 쓴 작품을 잊고 새 작품으로 들어간다. 글의 입장에서 보면 쿨 하게 떠나는 연인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은밀한 선언』 은 욕망을 억압하는 욕망이 드라마틱하게 혹은 한편의 영화처럼 나온다. 부디 많은 독자 품에 안겨 사랑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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