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설/독서감상문

<<오늘의 기분>>은 어떠신지요?

유리벙커 2020. 11. 15. 16:06

오늘의 기분오늘의 날씨를 연상케 한다. 보통은 그렇다. ‘기분날씨는 어떤 인과관계에 있는지 모르나 내겐 하나의 줄기로 연결된다.

심영의 작가가 쓴 장편소설 오늘의 기분, 김선재 시 오늘의 기분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제목은 무척이나 평범하나, 무척이나 평범하지 않다. 평범함 속에 임팩트가 들어 있는, 김선재 작가만의 오롯한 지평이 아닐 수 없다. 이 매력적인 제목 앞에서 내 호기심은 충분히 끓어오른다.

 

프롤로그의 첫 줄은 피종수 교수는 그의 연구실 책상에 엎드린 채 숨을 거두었다.”로 시작한다. 서사의 시작은 죽음이다. 어떤 죽음을 말하려는 걸까. 죽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죽은 자는 지식인의 상징인 교수다. 그것도 연구실 책상에서다. 그러니까 질병도 아니요, 교통사고도 아니요, 복상사도 아닌, 자신의 일을 하다 죽었다는 얘기다. 그는 글을 쓰다 죽었는데, 노트북엔 어떤 종류의 삶이 인간에게 바람직한 것일까라는 제목과 쓰다 만 글에서 커서가 깜빡이고 있다.

 

서사의 줄거리는 이렇다.

화자인 나(김재영)는 피 교수의 연구실을 방문한다. 피 교수는 나의 후배인 시간 강사 이은주의 지도교수다. 나는 이은주가 자살한 후 피 교수의 연락을 받고 연구실을 방문한 터다. 그런데 피 교수는 죽어 있다. 이수정 경위는 피 교수의 사인을 밝히려 나를 참고인으로 인터뷰한다. 내가 이은주와 각별한 사이였음을, 실은 각별하달 것도 없는 사이였지만, 이수정 경위는 그런 의구심을 갖는다. 나는 이수정 경위에게 반박도 변명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은주를 살펴주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이은주의 미발표 논문을 자비로 출간한다.

그간 어떤 이유에선지 피 교수는 이은주의 박사논문을 질질 끌며 통과시켜주지 않았다. 해서, 이은주는 학위를 따지 못해 시간강사 자리마저 얻기 어려운 형편에 놓인다. 그러기 전, 이은주는 피 교수의 제자인 전임교수로터 성폭행의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거기다 피 교수와의 관계도 석연치 않다.

 

서사는 시간 순서로 나가지 않는다. 진행 도중 나의 의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내부고발자의 자세로 이어진다. 시간강사인 나의 처지와 이은주의 처지가 다르지 않다는 것, 대학 측에서 시간강사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와, 지식인의 위선과 왜곡이 어떤 프레임으로 작동하고 있는가와, 시간강사가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살고 있는가가 촘촘히, 사실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자살인지 타살인지 죽음의 미스터리를 푸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살아남아 있는가가, 미스터리에 속한다는 말일 터다.

미스터리는 또 있다. 나는 5.18 민주항쟁 때 우연히 지나가는 소방차를 타고, 우연히 교도소 앞을 지난다. 딱 그뿐이다. 그런데 계엄군은 소방차를 향해 총을 쏜다. 이상한 건, 특수 훈련을 받은 군인들이 얼마든지 시민군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소방차만 쏘았다는 점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나는 계엄군에 잡혀 폭행과 고문을 당하다 풀려난다. 헌데 뉴스에는 시민군이 교도소를 습격했다고 나온다. 나는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교도소를 습격한 자라는 오명을 쓰고 살아간다. 마치 신탁에 의해 우연히 소방차를 타고, 신탁에 의해 계엄군은 사람이 아닌 소방차만 쏘고, 신탁에 의해 나는 겨우겨우 살아가는 것쯤이 된다. 이쯤 되면 생, 하나의 가설假設이 아니라, 생생히 살아있는 몸으로 견뎌내라고 주어진 무게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되짚어 볼 말은, “어떤 종류의 삶이 인간에게 바람직한 것일까. 다르게 말하면, 우리는 바람직하지 않게 살고 있는 말이다. 이 소설이 곡진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 존재의 문제다. 인간이 존재하는 근저엔 자유가 최우선이다. 자유가 없는 삶은 살아있는 게 아니라는 역설을, 그러나 살아남아야 한다는 처절함을, 나는 이 소설에서 읽는다. 언어폭력에 자유를 잃고, 성을 담보로 자유를 잃고, 생활고에 자유를 잃고, 잃고 잃어도 화자인 처럼 살아남거나 이은주처럼 자살하거나, 갑의 위치에 있는 피 교수처럼 심장마비로 자연사한다.

 

정리하면, 장편소설 오늘의 기분은 질문이다. 오늘의 기분은 어떠냐는, 즉 너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냐는 물음이다. 물음이 가볍지 않다. 삶 자체가 복잡하게 꼬이고 꼬인 미스터리인 바, 제대로 된 답이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