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설/발표한 글

'환' 뒷이야기

유리벙커 2012. 6. 28. 14:15

 

 

 

 

모든 작가가 그렇듯, 나 역시 이 소설에 투신했다.

투신했다고는 하나 그것은 교정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고 쓰는 순간엔 아무 것도 몰랐다.

큰 틀만 정해 놓았을 뿐 디테일한 코스 같은 것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저 키보드가 알아서 써주었다.

그만큼 작중 인물과 그 상황에 빠져 있었던 듯하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몰입하게 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다만 늘 품고 있던 의구심 하나가 소설로 나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 의구심이라는 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다.

삶과 죽음의 ‘경계’ 그 지점엔 무엇이 있을 것인가.

 

 

 

몇 번인가 병문안을 간 적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소위 식물인간으로 판정된 사람의 의식엔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다.

우리는 흔히 그렇게 누워있는 사람은 생각도 느낌도 없을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그 사람은 모든 걸 느끼고 듣고 있을지도 몰랐다.

 ‘환’은 그런 생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환’의 주인공 ‘나’는 마치 있으나 없고 없으나 있는 유령의 존재처럼,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의식의 공간을 돌아다닌다.

의식으로 돌아다닌다고는 하나 ‘나’는 ‘몸’으로 돌아다닌다고 굳게 믿는다.

이때 사실과 허구는 얽히며 뒤섞여 무엇이 진실인지 정의 내리기 힘들어진다.

우리가 삶이라고 믿는 그것이 진짜 삶인지, 죽음이라 생각하는 그것이 진짜 죽음인지 가늠할 수 없게 된다.

굳이 말하면 허구적 진실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터이다.

이것이 바로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공간이 제시하는 숙소다.

우리는 우리의 뜻과는 무관하게 바로 이 숙소에 머물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환’에는 그동안 배운 철학이 녹아 있다.

그렇다고 어느 철학자의 어떤 이론에 근거해 쓴 것은 아니다.

시간으로 치면 제법 나가는 시간을 철학아카데미에서 공부했지만

어느 철학자가 무슨 말을 했고, 어느 철학자가 어떤 이론을 펼쳤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톡 까놓고 얘기하면 알고 싶지도 않다.

내게 중요한 건 어떤 이론이 아니라 ‘나’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발견’이다.

철학의 치읓자만 봐도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철학은 철학자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철학은 우리의 이야기다.

일방통행로만 보던 시야에 여러 길을 제시해주는 길 친구이기도 하다.

숨어버린 혹은 외면하고 싶은 자신을 캐내는, 아프지만 달콤한 멘토이기도 하다.

그 아픔이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풍요롭게 한다.

나는 그것을 맛보았고 그 맛이 ‘환’으로 태어났다.

 

 

 

위에서 말한 대로라면 ‘환’은 대단히 어려워진다.

그러나 ‘환’은 소설이다.

작가 입장에서 어떤 생각으로 썼는지 주절거렸을 뿐,

 ‘환’은 사랑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면서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이야기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의 이야기, 생각의 집에서 머무는 사람의 이야기, 갈등과 질시에 시달리는 사람의 이야기다. 사람의 이야기는 어렵지 않다.

어려운 듯해도 알고 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굳이 분석하고 따지며 읽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독자는 소설의 언어가 어떤 옷을 입고 공원을 가는지 극장을 가는지,

또는 싸움을 하는지 음모를 꾸미는지 동행하면서 ‘느끼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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