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설/발표한 글

밤이 오면

유리벙커 2016. 7. 28. 22:51

2016년은 알파고가 지금의 현실을 충격적으로 보여준 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세돌과 알파고와의 바둑 게임은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가늠해보는 잣대가 되었고,

우리는 알파고와의 대결 이전부터 알파고 시대를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러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크다.

기계의 덕을 보며 할랑할랑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그것도 자본을 갖춘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니, 그러한 말은 판타지가 아닐 수 없다. 

대다수는 실업의 늪에 빠질 터이고(이미 그렇게 됐고, 되어가고 있다)

그에 따른 인간의 존엄성은 크게 훼손될 것이 자명하다.

자본은, 대다수가 차지할 수 없는 것이므로, 그것이 또한 자본주의의 속성이므로, 자본의 얼굴 알파고를 일상에 편입시켜 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자유, 평등, 정의, 이러한 개념 역시 힘을 잃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이런 생각을 부정적이라 말하고 싶다면, 말릴 수 없다.  

무조건적인 긍정은 제대로 된 긍정이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어쨌든, 나는 알파고에 관한 단편소설을 썼고 2016년 <<창작21>> 여름호에 발표했다.

전문을 여기에 올린다.







 

                                                          밤이 오면


“오늘도 행복을 책임지는 뽀뽀입니다. 어서 일어나세요.”

귓속을 간질이는 음성. 간지럼 속에 긴가민가하게 들어 있는 기계음.

규는 알파고폰을 와락 쥔다. 모닝콜이 멈춘다. 규는 한동안 알파고폰을 쥔 채 가만히 있는다. 한손에 쏙 들어오는 유방의 질감. 아모퍼스 실리콘에다 거미줄을 합성해 만든 야들야들하고 탄력적인 감촉. 규는 침대에 누운 채 알파고폰을 조물 댄다. 아랫도리가 서고 손바닥이 축축해온다.

알파고폰에서 경고음이 흘러나온다.

“일 분 경과! 웨이크 업! 웨이크 업!”

규는 벌떡 일어나 알파고폰을 노려본다. 알파고폰에서 상냥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규, 어서 씻고 출근 준비하세요.”

규는 뛰다시피 욕실로 들어간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알파고폰이 말한다.

“오늘 서초구 최저 기온은 6.3도. 최고 기온은 18.5도. 바람은 오전 8시 3분 남서방향에서 초속 4.55미터로 불다, 7분 후엔 북동방향에서 초속 4.43미터로 불 예정.”

규는 속옷을 입으며 알파고폰에 입을 맞춘다.

“뽀뽀, 고마워. 여덟 시 이후엔 사무실에 있는 거 알지? 기상은 그만하면 됐고, 오늘 코디 부탁해.”

알파고폰은 깃털보다 가볍게 대답한다.

“아래위 그레이 슈트에 화이트 셔츠, 다크 블루 줄무늬 넥타이에 블랙 구두, 그레이 양말.”

규는 알파고폰이 말하는 대로 옷을 꺼내 입는다.

“오늘 고객 숫자는?”

알파고폰의 목소리가 낭랑하다.

“스물세 명 예정.”

규는 버스 정류장으로 가며 마음이 무거워진다. 고객의 수가 점점 준다. 고객의 수가 준다는 것은 경기가 나빠졌다는 뜻이자 일자리가 위태로워진다는 의미다. 불경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닌 이유를 알지만 그에 관해 입을 떼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규는 은행 문을 열자 그 자리에 얼어붙는다. 어제만 해도 열세 개가 있던 창구가 다섯 개로 줄어있다. 여덟 개의 창구는 파티션으로 막아놓았고 고객용 소파도 여섯 개에서 세 개만 남아 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한 두 명의 직원이 출근하지 않는 것은 구조조정이라 치자. 그러나 예고도 없이 은행의 규모마저 축소한다는 건 예상 밖이다.

규의 이 년 선배가 어깨를 툭 친다.

“어지간히 놀랐나보군. 여기 지점, 오늘부터 출장소로 바뀌었어. 그러니까 폰을 칩으로 바꾸라고 했잖아. 난 칩으로 갈아다니까 실시간 고급 정보를 보내오더라고.”

규도 그 점은 알고 있었다. 그동안 업무 지시나 변동 사항은 주로 알파고폰이 맡아했다. 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핵심 사항은 알파고폰이 아니라 알파고칩이 대신하는 눈치였다.

선배가 셔츠를 슬쩍 걷어 올리더니 손목을 내보인다. 일반 시계를 차던 자리엔 어태처블 워치(attachable watch)가 어엿이 채워져 있다. 선배는 제법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어태처블 워치를 푼다. 어태처블 워치가 있던 자리에는 새끼손톱만한 크기의 동그란 칩이 깔려 있다.

규는 선배의 손목을 흘깃 돌아본다.

“아, 알파고칩이군요.”

알파고칩은 지문인식처럼 각 개인의 고유한 정보를 체내에 이식해서 저장하고, 어태처블 워치는 그 개인의 정보를 읽어서 그 사람에 맞는 정보를 제공한다. 사용자는 알파고칩에 입력된 자신의 고유 정보를 이용해 정보를 받는다. 칩은 어태처블 워치의 아랫부분과 맞닿아야 작동하며, 한 번 이식한 칩은 다양한 어태처블 워치와 바꿔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동일한 콘센트에다 110V나 220V를 사용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이때 알파고칩의 에너지원은 둘이다. 하나는 어태처블 워치에 내장된 극소량의 원자배터리이고, 다른 하나는 신체가 보유한 전기다.

선배는 풀었던 어태처블 워치를 차며 말한다.

“알겠지만 디바이스는 알파고폰과 다르지 않아. 워치에 깔린 앱을 이용하니까. 나는 뭐 액정을 터치해 보는 것도 귀찮아 주로 이어폰을 사용하지. 이어폰에서 워치걸이 귓속에다 정보를 털어주는데 듣는 재미가 또 쏠쏠해요. 아무개 씨~ 한 시간 전보다 혈당 치수가 삼 포인트 올라갔네요~ 아무개 씨~ 고지혈 치수도 알려드릴까요? 혈당 치수를 내리려면 오늘 점심은 보리밥에 소스 없는 야채를 드셔야 해요, 뭐 이러구 있어요. 하하.”

선배의 음성이 조금 더 커진다.

“근무할 때는 이어폰을 꽂을 수 없잖아. 그때는 앱을 터치해 액정을 보거나 가상화면을 띄워서 보면 돼.”

선배는 이거 보라는 듯 어태처블 워치에 깔린 애플리케이션 하나를 터치한다. 그러자 어태처블 워치 상단에 있는 작은 구멍에서 빛이 반짝 터지더니, A4용지 반만 한 크기의 가상화면이 눈앞에 뜬다. 가상화면은 반투명한 필름 모양으로 바탕엔 오늘의 날씨가 이모티콘과 함께 상세히 적혀 있다.

선배가 다시 애플리케이션을 터치한다. 이번에도 빛이 반짝 터지더니 가상화면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선배는 자리로 가며 알파고칩에 방점을 찍는다.

“사실 칩으로 바꿀까 말까 고민할 때 결정을 내려준 건 알파고폰이었어. 그때 알파고폰이 뭐라고 했냐면, 레이저빔으로 시술하는 거라 통증이 없다는 거야. 이식도 십 분이면 된다고 하고. 제일 당기는 거는 몸에 심는 거라 신체의 리듬과 신체에 관한 모든 사항을 알려주고 그에 맞게 건강관리도 해준다는 거지. 갑자기 살이 찐다거나 빠져도 체내의 세포와 유기적으로 결합해 끄떡없이 작동한다네. 그게 다가 아냐. 어떤 정보도 물어보는 족족, 세부사항까지 몽땅 다 알려주더라고. 대입 학원이 줄줄이 문 닫는 거 봤지? 알파고칩이 있는데 학원인들 과외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비용이 좀 나가지만 그 이상의 값어치는 충분히 해. 천국이 따로 없어요. 오늘 출장소로 바뀌는 것도 일주일 전에 알파고칩이 알려줬어. 내구성도 끝내주고, 십 년 무상 보증이라니까 한 번 생각해 봐. 도태를 막는 길은 아니, 오래~ 오래~ 살아남는 길은 알파고칩 뿐이야.”

규는 기운이 쭉 빠진다. 도태. 어제 본 동료가 나오지 않고, 그저께 같이 점심을 먹던 동료가 나오지 않는다. 일주일 전 퇴근길에 술잔을 나누던 후배가, 이 주 전 함께 야구장엘 갔던 선배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이유도 모른 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가던 유대인처럼, 자신이 사라지는 줄도 모른 채 사라진다.

규는 자리에 앉아 알파고폰을 손바닥에 놓는다. 종잇장처럼 얇지만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처럼 휨이 자유로워 구겨도 되고 접어도 된다. 한마디로 탄성과 소성을 극대화시킨 물질의 완성품이다.

규는 최저 크기로 접었던 알파고폰을 최대 크기인 A4용지 크기로 편다. 그런 후 애플리케이션을 터치해 음성을 낱말로 전환한다. 액정 상단 좌측 세 번째 애플리케이션을 터치하자 구조조정에 관한 정보가 뜬다.

김광진 부장 - 잉여.

규는 잉여를 터치한다.

기밀 사항. 세부 사항은 알파고칩에게 문의.

규는 그 다음 정보를 읽는다.

노혁진 대리 - 셀프.

규는 셀프를 터치한다.

기밀 사항. 세부 사항은 알파고칩에게 문의.

규는 알파고폰을 도르르 말아 책상 한쪽에 놓는다. 잉여나 셀프나 거기서 거기. 잉여 인간이 되는 게 두려워 자진 사표를 내서 셀프라 해도 그렇고, 그 셀프가 자살이라는 셀프로 간다 해도 마찬가지. 사라지면서도 이유를 묻지 않는 사람들. 이유를 물을 수도 없게 거대해진 벽.

뭔지 모를 불안이 엄습한다. 규는 애써 마음을 다독이며 다시 알파고폰을 편다. 알파고폰의 액정 우측 세 번째 하단에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터치하자 오늘의 메뉴가 뜬다. 규는 메뉴 중 점심을 터치한다. 화면엔 뽀뽀의 음성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글자가 뜬다.

“규, 고민하지 마세요. 점심 메뉴는 쫄면.”

쫄면? 어젯밤 야참으로 라면을 먹고 아침은 걸렀는데 점심마저 밀가루? 규는 밀가루보다 뜨끈한 갈비탕이 더 당긴다.

규는 쫄면에다 물음표를 그린다. 뽀뽀가 서슴없이 설명한다.

“쫄면은 규의 연봉과 체중, 근육의 질량, 산소포화도를 산정하여 표준 값으로 나온 거예요. 세부 사항은 알파고칩에게 문의하세요.”

규는 왠지 심사가 뒤틀려 뽀뽀가 내보낸 글자에다 노! 라고 쓴다.

뽀뽀의 음성이 뒤틀린 심사 못지않게 낱말로 튀어나온다.

“규의 앞날은 쫄면. 군말 말고 쫄면.”

뭐가 어째? 앞날이 쫄면? 쫄면으로 쫄아가며 살라는 거야 뭐냐? 이것이 오냐오냐 했더니 기고만장이네. 규는 알파고폰을 착착 접에 양복주머니에 넣는다.

개점한지 십여 분. 첫 고객이 들어온다. 고객은 주황색 골프 점퍼에 명품 백을 든 할머니. 할머니는 여유롭게 사는 듯이 보이지만 알파고폰은 없다.

은행을 찾는 주 고객들은 텔레뱅킹이나 인터넷뱅킹을 겨우 했거나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대중에겐 구닥다리로 접어든 알파고폰이지만 알파고폰도 모른다. 은행이 아직까지 존속하는 까닭은 저들을 위해서다. 은행은 알파고폰을 모르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원시시대의 유물이 되어간다.

할머니가 돈과 도장과 통장을 규 앞에 내민다.

규는 돈과 도장과 통장을 도로 밀어 할머니에게 준다.

“고객님, 이제 도장이나 종이돈, 통장은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지난 번 오셨을 때 홍채 인식을 하신 걸로 나옵니다. 오늘부터 고객님은 홍채 인식으로 고객님 전용 알파고뱅크폰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규는 폴더가 달린 정사각형의 뱅크폰을 할머니 앞에 놓는다. 뱅크폰은 스마트폰의 두께로 폴더를 열자 액정이 나온다. 액정 중앙엔 코인건전지처럼 생긴 작은 렌즈가 달려있고, 렌즈를 중심으로 위, 아래, 옆으로 정사각형 칸이 여덟 개가 있다. 중앙의 렌즈에 눈을 대면 홍채를 인식하고, 홍채 인식이 끝나면 여덟 개의 칸에 적힌 입금, 출금, 송금, 보험, 적금, 공과금, 주식, 대출을 이용할 수 있다. 은행은 개인화된 정보를 저장하고, 사용자는 그 정보로 여덟 개의 칸을 터치해 업무를 본다.

규가 뱅크폰의 사용법을 알려주자 할머니의 얼굴이 뜨악해진다.

“아니, 예전보다 쉬워졌다고 하더만 더 어렵구려. 이거야 어디 눈도 침침하고 손도 떨려서 제대로 할 수가 있나.”

규는 할머니가 가져온 돈을 대신 입금시키며 다시 한 번 사용 설명을 한다.

“고객님, 지금 제가 하는 거 보셨지요? 처음이라 그렇지 몇 번 해보시면 쉽고 편리하다고 느끼길 겁니다.”

규는 액정에 입금이 완료됐다는 메시지가 뜨자 할머니에게 보여준다.

“고객님, 입금이 완료되면 이런 메시지가 여기에 이렇게 뜹니다. 이게 안 뜨면 완료가 안됐다는 뜻이니까 그럴 땐 저를 찾아오세요.”

할머니가 찡그린 얼굴로 알파고뱅크폰을 받아든다.

“아니 왜 이런 게 생겨가지구 사람을 성가시게 하누. 이런 거 없이두 잘만 살았는데.”

옆 창구로 땅딸막한 할아버지가 다가간다. 할아버지는 알파고뱅크폰을 내밀며 세금을 내야하는데 낼 줄 모른다고 한다. 옆 창구의 직원이 뱅크폰의 공과금 칸을 터치해 세금을 송금해준다.

알파고가 대중화됐다곤 하나 알파고 전 시대의 사람들은 아직 남아 있다. 그들에게 알파고는 여전히 상대할 수 없는, 상대하기 싫은 존재다. 은행 업무 역시 알파고폰으로 해결 가능하지만, 이통사는 알파고폰을 사용하지 않는 노년층을 겨냥해 알파고뱅크폰이라는 전용 단말기를 출시한 것이다.

몇몇 노인 고객이 가자 대기실은 텅 빈다. 간유리를 통해 들어온 빛이 오늘 따라 유난히 흐리다. 고객용 소파는 한껏 늙어 보이고 창구에 앉은 다섯 명의 직원들 또한 쓰다 버린 휴지만큼이나 구깃구깃해져 있다.

규는 심란한 마음으로 알파고폰을 연다. 중앙의 칸을 터치하자 뽀뽀가 방글 웃으며 나타난다.

“규, 무슨 고민이 있어 뽀뽀를 호출?”

규는 뽀뽀의 입술을 손끝으로 터치한다. 뽀뽀가 싱끗 웃으며 할 말을 낱말로 바꿔 내보낸다.

“내 입술을 터치한 걸 보니 여자 생각이 난다는 거네?”

규는 화면에다 예스! 라고 쓴다. 기다렸다는 듯 뽀뽀가 동영상을 내어보낸다. 소녀가 반바지 차림에 머리칼을 흩날리며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규는 자전거 동영상 위에다 노! 라고 쓴다. 뽀뽀가 다른 동영상을 띄운다. 긴 머리칼의 여자가 벌거벗은 몸으로 풀장 물속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 여자의 손이 자신의 젖가슴을 쓰다듬더니 아래로 간다. 여자가 자위를 시작한다. 자위를 하던 여자가 돌연 화면을 돌아본다. 여자는 화면을 뚫어질 듯이 보며 자위를 멈추지 않는다. 동영상을 보는 사람의 눈과 여자의 눈이 마주친다. 여자의 눈동자에 눈물인지 열기인지 모를 게 차오른다.

규는 더는 볼 수 없어 노! 라고 쓰려는 찰나 여자의 입가에 비웃음 같은 것이 흐른다. 규는 까닭 모르게 조마조마해온다. 알파고폰을 터치해 풀장의 여자를 내어보낸다.

풀장의 동영상은 알파고의 실수다. 알파고는 감정을 모른다. 모르기에 여자의 감정 표현을 그대로 내보냈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자는 그 점을 간파해 미묘하고도 복잡한 표정으로 알파고를 엿 먹이고자 했던 듯하다.

규는 가슴이 뛴다. 다시 풀장의 동영상을 불러낸다. 중년여자 둘이 파라솔 의자에 앉아 주스를 마시는 영상이 나온다. 규는 다시 풀장의 동영상을 불러낸다. 실험실 가운을 입은 여자가 비커에 시약을 떨어뜨리는 영상이 나온다.

대기실로 노년층으로 접어든 여자가 들어온다. 알파고와 은밀히 놀던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여자에게로 쏠린다. 여자는 알파고칩을 자랑하던 선배에게로 간다. 규는 다시 풀장의 동영상을 불러내려다 뽀뽀에게 묻는다.

“퇴근하면 뭘 해야 좋을까. 누군가를 불러내 와인이라도 마실까 아니면 곧장 집으로 갈까?”

뽀뽀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집.”

규는 미련이 남는 걸 어쩌지 못한다.

“곧장 집으로 가면... 뭘 하지? 심심할 텐데.”

뽀뽀의 답이 쌀쌀맞다.

“규의 연봉 상태와 미래를 산출한 값은 집. 집에 가서 집 밥 먹고 알파고의 고전 영화 보기. 세부 사항은 알파고칩에게 문의.”

규는 알파고폰을 접어 양복주머니에 넣는다. 알파고가 지시한대로 하면 탈날 일은 없다. 그런데 마음은 왜 이다지 허전한지, 왜 이렇게 찜찜한지.

퇴근 시간이 되자 직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규는 책상서랍마다 달린 도어락을 잠그고 은행을 나선다. 문득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아직도 도어락이야? 칩을 깔아봐. 터치 하나면 책상서랍이 쓰윽 열리고 쓰윽 잠긴다고. 그거 볼 때마다 얼마나 뿌듯한지 알아?”

사람과 사물을 명령하는 알파고. 누군가는 알파고 때문에 성가시다고 하고, 누군가는 뿌듯하다고 한다. 알파고에게 협상이란 없다.

거리는 미세먼지와 황사로 인해 잿빛이다. 암울한 미래를 예견이라도 하듯 잿빛 속을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밝지 않다. 저런 표정은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셀프를 택한 사람들, 그들의 표정이 저렇다. 그들과 같은 처지가 되지 않으려면 알파고가 일러준 대로 집으로 가 집 밥을 먹어야 한다.

규는 곧장 집으로 와 밥을 먹은 후 알파고의 고전이라 불리는 기록물을 연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게임. 이세돌은 한 번의 승리, 알파고는 네 번의 승리.

말이 쉬워 바둑이지 바둑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규는 초등학교 때 우연히 바둑을 접했다. 혼자 사는 삼촌에게 놀러갔을 때, 삼촌은 오목을 두자며 규를 바둑판에 잡아 앉혔다. 오목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오목이 시시해질 무렵 바둑으로 넘어갔다. 초등학교 삼 학년이 됐을 땐 아마1단의 삼촌을 넘보게 됐다.

규는 복기할 수 있을 정도로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을 봤다. 볼 때마다 생각과 감정은 달랐다. 처음 볼 땐 놀라움이 컸고, 두 번째 볼 때는 도전심리가 작용했다. 세 번째 볼 때는 알파고의 허와 실이 무엇인지, 인간의 허와 실이 무엇인지 나름 분석해보기도 했다. 알파고는 한 번 진 것을 교훈 삼아 지금의 이 자리까지 왔다. 알파고의 기록물이 고전으로 회자되는 중요한 이유였다.

규는 같은 이유를 인간에게 적용해보았다. 인간이 알파고에 진 것을 교훈으로 삼는다면, 알파고를 능가할 자리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인가. 질문이 틀렸다. 알파고와 인간은 차원을 달리 한다. 알파고에겐 지능이라는 차원이, 인간에겐 지성이라는 차원이 있다. 다른 차원을 같은 차원에 놓고 승리니 패배니 떠들어대는 게 문제다.

규는 침대 머리맡에 알파고폰을 놓고 눈을 감는다. 심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여지없이 깨졌다. 헌데 말이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와인을 마시고 싶은 이런 기분은 어쩌면 좋은지. 가뭇 잠이 올 때마다 그녀가 나오는 꿈을 꾸게 해주는 알파고는 없는지. 그녀와 멀리 떨어져 각각 마시는 와인도, 동시에 같이 마시는 느낌을 주는 알파고는 없는지. 

               

                                                                       *


이것은 무슨 기분일까. 규는 신경이 곤두선다. 아, 그렇구나! 알파고폰! 규는 깜짝 놀라 머리맡에 둔 알파고폰을 잡는다. 알파고폰이 먹통이다. 규는 손바닥으로 알파고폰을 탁탁 친다.

뽀뽀가 비아냥거리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때리지 마. 넌 잘렸어!”

규는 멀뚱하게 있다 반문한다.

“뭐가 잘렸다는 거야? 지금 뭔 말을 하는 거야?”

뽀뽀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던진다.

“오늘 코디는 알아서 해라. 난 책임질 수 없어.”

규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

“그러니까 잘렸다는 건 내가 직장에서 잘렸다는 거고, 그래서 모닝콜도 안 주고 코디도 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이게 무슨 개소리야! 난 지금까지 니가 하라는 대로 했어. 곧장 집으로 가라면 갔고, 영화를 보라면 봤고, 엄마한테 전화하라면 했고, 이발을 하라면 했고, 더 나열해? 그런데 이제 와서 이게 말이 돼?”

갑자기 알파고폰에서 장송곡이 흘러나온다. 규는 와락 알파고폰을 벽에 던진다.

“이런 배신자! 나는 죽지 않았어!”

규는 그 자리에 벌렁 드러눕는다. 장송곡이 무겁게 바닥에 깔린다. 규는 장송곡에 덮여 숨을 헐떡인다. 지금까지 알파고폰에 에러가 난 적은 없다. 알파고폰은 스마트폰과는 다르다. 고공이나 해저에서도 까딱없이 작동하는 것은 물론, 사람과 커뮤니케이션도 할 줄 안다. 그런데 잘린 사실을 이제야 알려줘?

규는 선배의 말이 실감난다. 알파고칩은 은행 지점이 출장소로 바뀐다는 사실을 일주일 전에 알려주었다고 했다. 알파고칩만이 도태를 막아주고 오래 오래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규는 급히 청바지에 티셔츠를 걸치고 집을 나온다. 거리는 SF영화의 배경처럼 여전히 잿빛이고, 오늘이란 없다는 듯 어제를 복사해놓은 꼴이다.

규는 직장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알파고폰이 잘렸다고 말한 게 사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라져 없어진 사람들 모양 그렇게 사라져야 하나. 그럴 수는 없다. 그렇게는 안 된다. 하지만 알파고폰이 말한 게 사실이 아니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알파고는 에러가 난 것이고, 알파고를 철석같이 믿던 사람들에겐 그만한 충격을 드물다. 그에 따른 손해 배상은 이슈화될 테고, 고소가 잇따를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어디에다 손해 배상을 청구해야 하나.

규는 직장이 가까워올수록 가슴이 툭탁인다. 알파고폰의 말은 사실일 수도 있다. 아니, 사실로 받아들였기에 양복이 아닌 청바지 차림으로 나선 것이다. 알파고가 무의식까지 지배하지 않고야 이럴 수는 없다.

버스가 직장 앞에 선다. 규는 버스에서 내려 은행 앞으로 간다. 은행은 십오 층짜리 빌딩 아래층을 전부 사용했던 것이라고는 볼 수 없게 컴컴하다. 은행 고유의 로고와 컬러로 치장했던 간판도 없다.

규는 은행이 있던 자리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은행도 하룻밤 새에 사라져버릴 수 있다! 허탈감인지 참담함인지 모를 게 부글거린다.

규는 도로 건너편에 있는 카페로 간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건너편 은행을 바라본다. 점심을 먹은 후면 동료들과 종종 들러 커피를 마시던 카페. 이 자리에서 동료들은 불안과 분노를 가만가만 나누었다.

“구조조정 말이야, 그거...”

“누군 당하고 싶어 당하나. 나도 언제 당할지 몰라 유서 써놓고 다닌다. 흐흐...”

“빅테이터가 하시겠다는데 방법 있어?”

잉여나 셀프를 당한 사람들. 그들은 미래를 꿈꾸었지만 연장시킬 수 없었다. 그들의 잘못은 무엇이기에 미래가 막혀버렸나. 선배 말대로 알파고칩을 이식했더라면 도태는 막을 수 있었나. 더 나아가 미래를 지속시킬 수 있었나. 선배는 한 달도 안 돼 출장소마저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젠장 할 놈의 알파고칩!

규는 성마르게 주머니를 뒤진다. 아차, 알파고폰! 규는 순간 머릿밑이 뜨끔해진다. 알파고폰을 집에 두고 왔다! 이런 야비한 년!

알파고폰의 알람은 블루투스의 작동 원리와 비슷하다. 블루투스가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할 때만 작동하듯, 알파고폰은 인체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는 거리에서만 작동한다. 블루투스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인체가 일정 거리를 벗어나면 알람을 내보낸다. 알람을 끄는 것도 알파고폰에 저장된 지문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즉, 어떤 사고로 인해 알파고폰을 잃어버렸다든지, 어느 장소에 놓고 나와도 본인 외에는 알람을 끌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도 없다. 이런 점 때문에 사람들은 알파고폰에 열광하며 무한한 믿음과 애정을 보낸다. 헌데 알파고폰은 규가 집을 나오도록 알람을 내보내지 않았다.

규는 선배에게 전화 걸려던 것을 접는다. 마음이 종잡을 수 없이 들까분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서초동 지점의 날씨를 알려주던 알파고폰. 나긋나긋한 음성과 보들보들한 질감으로 애정을 발산하던 알파고폰. 그러나 오늘은 집에 놓고 와도 알람을 주지 않은 알파고폰. 규는 알파고폰에 이를 갈면서도 구속되고 싶은 욕망에 부르르 떤다.

따지고 보면 은행에 취업할 수 있었던 것도 알파고폰 때문이다. 어떤 유형의 문제가 나올 것인지, 면접관은 누구인지,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 대답은 어떻게 해야 좋은지,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 개성과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속속들이 알려주었다.

그러나 지금의 알파고폰은 언제 봤냐는 식이다.

규는 카페를 나가 알파고 전문 매장이 있는 곳으로 간다. 알파고 전문 매장은 은행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번듯하게 영업 중이다. 알파고 매장 앞에는 줄 선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규는 줄 맨 뒤로 가 선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알파고폰을 들고 있다. 다들 폰을 칩으로 전환하려는 사람들이다. 건강을 체크해주고, 취업을 보장해준다는데 왜 안 그럴까. 그렇다 해도 일자리에는 한계가 있다. 알파고는 그 한계를 어떻게 돌파하며 처리할 것인가.

규는 앞사람이 보고 있는 알파고폰을 어깨 너머로 본다. 전면 광고가 혹할 만큼 매력적이다. 알파고칩을 구입하려는 사람은 오늘 이 매장에서 오전 열 시에서 열한 시까지만 선착순으로 백 명을 받는다고 떠 있다. 정부 지원금 30%에 알파고폰의 값을 40% 쳐준다고 한다.

규는 앞에 선 또래의 남자에게 묻는다.

“저, 죄송합니다만 화면에 뜬 광고 말입니다, 그거 언제 나왔습니까?”

앞에 선 남자가 규를 돌아본다.

“이십삼 분 전에 떴습니다.”

이십삼 분 전이면 카페로 들어가던 시점이다. 규는 미심쩍은 생각이 들어 앞사람에게 다시 말을 건넨다.

“이십삼 분 전이면 그때 알파고폰을 본 사람들이나 알 수 있었겠군요. 예약제도 있는데 왜 이렇게 번거롭게 했을까요.”

앞사람은 자신의 알파고폰을 구기다시피 접어 주머니에 넣는다.

“글쎄요... 광고 효과를 노린 게 아닐까요. 이 늘어선 줄보다 더한 광고 효과가 어디 있겠습니까.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을 모을 수 있는 능력, 이만한 인기도 흔치 않을 겁니다. 거기다 판매수익까지.”

알파고칩은 웬만한 대기업 과장급 연봉의 반이나 나간다고 한다. 성능이 좋은 건 알지만 가격 면에서 쉽게 갈아타긴 힘들다. 가맹점들은 그 점을 노려 시간제를 이용해 할인을 하고, 예약시스템을 마다한 것일 터이다.

규는 슬그머니 줄에서 빠져나온다. 직장에서 잘렸다는 소식을 듣지만 않았더라면, 알파고폰이 알람을 내보내주었더라면, 선배의 말을 귀담아 들었더라면, 이렇게 줄 끝에 서다 돌아설 일은 없었을 것이다. 돌아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부터의 배회가 큰일이다.

규는 길을 건넌다. 급한 볼 일이라도 있는 양 이쪽 횡단보도를 건너 저쪽 횡단보도로, 저쪽 횡단보도에서 또 다른 쪽 횡단보도를 건넌다. 규는 다람쥐 쳇바퀴로 횡단보도를 건너다 말고 문득 선다. 알파고 전문 매장 앞에 선 줄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리의 줄은 마치 천국행 티켓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듯이 보인다.

규는 언젠가 봤던 영화의 한 장면이 오버랩 된다. 유대인들은 지옥행 기차를 타는 줄도 모르고 길게 줄을 서서, 인적 사항을 독일군에게 넘겨주었다. 그들은 지금보다 더 좋은 게토로 보내준다는 말을 믿었다.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그들은 저항하지 않았다. 그들은 엄청난 무리였지만 소수의 군인에게 무릎을 꿇었다. 알파고를 알파고로 키운 건 다름 아닌 저 줄에 선 무리다.

규는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알파고를 제어할 그 무엇은 없다. 살아남기 위해선 저항이 아니라 순응이다. 유대인이야말로 순응에 대한 본보기를 훌륭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유대인은 실패했다. 순응의 값은 죽음이었고 몇몇만이 부끄럽게 살아남아 치욕의 역사를 기록한다.

매장에서 커리어우먼으로 보이는 여자가 나온다. 연신 어태처블 워치를 들여다본다. 얼굴이 복숭아 빛이다. 여자 뒤로 화이트칼라로 보이는 남자가 나온다. 철인3종경기에서 일등을 먹은 표정이다.

규는 매장과는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뗀다. 알파고는 무엇인가. 알파고에 명령을 내리는 건 소수의 사람이다. 알파고는 명령어에 복종하고, 사람들은 그 복종에 복종한다. 이러한 관계가 의심 없이 작동되는 이유는 순종에 있다. 자본에 대한 순종.

규는 머리가 띵 해온다. 느닷없이, 입대 전에 헤어졌던 여자 친구가 어른댄다. 그녀는 알파고 시대를 어떻게 보내고 있나. 알파고는 입대 전만해도 몇몇 사람의 입에서나 거론되었다. 전역한 지 불과 몇 년이 흐른 지금은 공룡이 되어 있다. 그녀는 공룡의 비위를 맞추려 입기 싫은 옷을 입고 있는 건 아닌지. 알파고가 설계한대로 자녀를 두거나 두지 않거나, 혹은 결혼조차 마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알파고가 쏘아대는 지식을 섭취하느라 지식비만녀가 되어 있는 건 아닌지.

그녀는 꽃보다는 볼을 좋아하고, 맥주보다는 와인을 좋아한다. 챙이 넓은 모자보다는 야구 모자가 더 어울린다. 평론을 공부하지만 종종 소설도 쓴다. 그런 그녀에게 알파고는 어떤 명령을 내리고 있는지. 그녀는 알파고의 명령에 어떤 저항을, 혹은 순종을 하고 있는지.

우리는 학창시절을 저항과 순종의 줄을 타며 그런대로 잘 보냈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지만 우리는 끝내 헤어졌다. 헤어졌지만 그녀는 여전히 보고 싶은 사람이고, 보고 싶은 만큼 그때의 그녀로 있기를 바란다. 부디, 명령어를 거북해하던 그녀가 지금도 거북해하길.

규는 모교로 간다. 학교 근처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우유를 사들고 교문으로 향한다. 본관으로 곧게 이어진 길 양옆으론 벚꽃이 한창이다. 벚꽃은 알파고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자본의 가치가 없는 것들은 알파고로부터 자유롭다.

교수와 학생들이 강의 시간에 맞춰 부지런히 걷는다. 저들의 손목이나 가방 어디에는 알파고가 있을 것이다. 알파고는 사람과 친밀해지고 싶어 한다. 사람도 알파고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한다. 문제는 없다. 그런데 문제다.

규는 습관적으로 바지주머니를 뒤진다. 알파고폰이 없다!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요동을 친다. 반드시 있어야 할 이유도 없지만 없다는 사실이 고문이다. 알파고가 없던 시대, 없어도 삶이 풍요로웠던 시대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녀처럼, 돌아오지 않는 그녀처럼.

규는 본관 앞 운동장으로 간다. 운동장은 원형경기장 형태로, 석축으로 계단을 올리고 그 계단에서 운동장을 내려다보는 구조다. 운동장에는 대학 축구부가 연습 경기를 하는 중이다. 몇몇 여학생과 남학생이 띄엄띄엄 계단에 앉아 연습 경기를 관전한다.

규는 계단에 앉아 샌드위치 팩을 벗긴다. 황사와 미세먼지 사이로 해가 비추다 말다 한다. 규는 샌드위치를 뻑뻑하게 넘기며 우유를 마신다. 실직하지 않았더라면 알파고폰은 이 시간의 샌드위치와 우유를, 모교의 운동장과 축구 경기를 말해주었을까. 문득 생각나는 이가 있다는 것도, 그게 그녀라는 것도 말해주었을까.

학교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공을 향해 뛴다. 순간 운동장 한쪽은 비이고, 선수들은 좌측 터치라인으로 몰린다. 선수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몸싸움을 한다. 등판에 6번을 단 선수가 어렵사리 공을 빼돌린다. 6번 선수가 공을 몰아 상대편 골대로 간다. 골키퍼가 공을 막으려 한껏 부풀린 자세로 양팔을 벌린다. 공이 골대 바로 앞까지 간다. 골키퍼는 공이 올만한 방향으로 몸을 튼다. 4번 선수가 6번 선수의 옆 틈을 치고 들어온다. 4번 선수가 골대 옆으로 공을 찬다. 공이 터치라인 밖으로 나간다. 선심의 깃발이 코너킥을 선언한다.

감독의 목청이 거칠게 터져 나온다.

“야야야! 선후! 너 자꾸 슛 타이밍 놓칠래? 승준이는 뒤로 처지지 말고 라인을 보면서 움직여야지!”

다시 휘슬이 울린다. 선수 모두 코너킥을 찰 선수를 주시한다. 공이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간다. 3번 선수가 힘껏 점프를 해 헤딩을 시도한다. 공은 3번 선수가 생각했던 낙차지점을 벗어나 뒤로 흐른다. 7번 선수가 흘러나온 공을 골대로 찬다. 공은 크로스바를 살짝 스쳐 지나간다.

계단에 앉았던 학생들이 아쉬움에 찬 탄성을 지른다. 주심이 휘슬을 불며 전반전 종료를 알린다.

선수들이 계단 쪽에 있는 감독 앞으로 간다. 감독은 선수들이 모이자 자신의 손목을 들여다보며 무슨 말인가를 한다. 선수들은 감독을 둥글게 에워싸고 감독의 말을 듣는다. 선수들 중 몇은 감독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손목을 흘끔거린다.

규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짐작이 간다. 저들의 손목엔 알파고칩이 깔려있다. 경기라는 것도 알파고칩이 알려준 포지션을 그대로 적용한 것일 수도 있다. 이제 알파고는 당당히 등번호를 단 선수로 모든 경기의 선두를 달릴지도 모른다. 규는 살갗몸살이 난 듯 몸 어딘가가 쓰려온다.

마른 바람이 운동장 바닥을 쓸어댄다. 규는 그 자리에 선 채 앉았던 자리를 내려다본다. 이 자리에서 그녀와 경기를 보던 때가 까마득하게 멀어진다. 그때의 그녀가, 지금의 저 경기를 본다면 어떤 말을 할 것인지. 그때의 그녀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면 그때처럼 말해줄 수 있는지. 눈물 나게 보고 싶을 때가 있고, 너의 하루를 종일 따라다니고 싶었다던 그 말을, 다시 해 줄 수 있는지. 그 말은 잊었다 해도 알파고에 파묻혀 산다는 말은 하지 말아주길.

규는 운동장을 등진 채 학교를 나온다. 스포츠도 개념을 바꿔 정리해야 할 때가 다가온다. 운동장 바닥을 쓸어대는 바람이 어쩐지 으스스하다. 

    

                                                                         *


밤이 온다. 백수, 실업자의 밤은 길고도 더디다.

규는 알파고폰을 조물 대다 판판하게 편다. 사람을 재우고 사람이 자는 중에도 공격수로 뛰는 알파고. 알파고가 점령한 세상이 사무친다.

규는 자신도 모르게 모닝콜을 터치한다.

뽀뽀의 빈정거림이 가감 없이 터져 나온다.

“지금 장난하냐? 할 일 없음 디비져 자라 응?”

규는 울큰 뜨거운 게 치민다.

“뭐가 어째? 자던 말든 니 따위가 뭔 상관? 내가 백수가 된 건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고!”

뽀뽀가 흥흥거리며 대꾸한다.

“싫으면 마시든가. 넌 잉여. 잉여가 사회에 기여하는 길은 셀프. 알아먹든 말든 셀프.”

규는 벌끈 목청을 높인다.

“너야말로 잉여다. 넌 겨우 폰 덩어리야. 칩도 아닌 주제에 어디다 대고 주둥이를 나불대?”

규는 눈물 한 방울이 쑥 빠진다. 이따위로 시간을 죽이려 들다니. 이따위 열을 내다니. 아, 셀프. 셀프에 대한 절절한 이해.

규는 한동안 멍하니 있다 뽀뽀에게 말한다.

“야식이 먹고 싶은데 뭘 먹을까?”

뽀뽀가 잘라 말한다.

“양파.”

규는 어이가 없어 콧소리를 낸다.

“흥, 너도 맛이 갔구나. 양파를 먹으라고? 생양파를?”

뽀뽀가 앙칼지게 대꾸한다.

“연봉 없는 인간은 닥치고 양파나 처드셔. 넌 이미 구제할 수 없는 단백질 덩어리야.”

규는 알파고폰을 팩 놓고 주방으로 간다.

“연봉 없는 인간을 상대하는 넌 뭐냐? 쓰레기가 뭔지는 알고 있겠지?”

규는 라면을 끓이고 끓는 라면에 치즈를 넣는다. 연봉 있는 자가 밤에 라면을 먹으면 야참이라고 한다. 연봉 없는 자가 밤에 라면을 먹으면 잉여라고 한다. 잉여가 잉여를 먹으면 단백질 덩어리라고 한다. 단백질 덩어리는 재앙의 재앙으로 산업재해라고 한다.

규는 라면을 해치운 후 알파고폰을 입 가까이에 대고 분다.

“후~ 이 냄새 어떠냐? 황홀하지 않냐? 질투나지 않냐?”

규는 알파고폰을 식탁에 내려놓고 얼굴을 바짝 들이댄다.

“봤냐? 내가 맛있게 먹는 치즈라면. 니가 아무리 잘난 척 떠들어도 넌 그 맛을 모를 거다. 너야말로 겨우 데이터로 분석해낸 맛을 맛이라고 우기는데 그걸로 뭘 하겠냐. 혀도 아닌 것이 혀인 척, 참 재미나요. 그래서 내가 살맛이 난다고 하면 믿겠냐?”

규는 뽀뽀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알파고폰을 끈다. 갑자기 공허감 같은 것이 휭 하니 인다. 이런 장난질, 유치하다. 이런 가치 없는 짓거리, 허망하다. 그러면 뭘 하나. 할 일이 없는데. 그 많은 백수들은 뭘 하며 지내나. 치즈라면에 눈물을 쏟아가며 먹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러다 셀프를 하거나, 셀프에 실패를 하거나, 실패한 셀프를 종이학 접기로 대신하거나, 대신할 또 다른 거리를 찾아 거리를 헤매거나, 헤매다 옛 애인과 번뜻 부딪히거나, 부딪혔는데 백수라는 사실이 들통 날까 허세를 부리거나, 허세부리는 게 서툴러 빠빨리 고우고우 홈을 하거나, 하고 나니 역시 백수로 컴백, 알파고폰을 열고 아양 섞인 부탁을 하거나.

“뽀뽀야, 내게 맞는 직장이나 일거리 뭐 없을까?”

뽀뽀는 잘라 말한다.

“없음.”

규는 화가 나는지 어떤지조차 알 수 없어진다. 이대로 주구장창 알파고폰과 말씨름이나 하며 지내야 하는 건 아닌지. 오는 전화도 없이, 거는 전화도 없이, 시들시들 죽어가는 건 아닌지. “자본주의가 꿈과 희망을 만들었다”고 말했던 그들은 지금도 자본주의에 기대어 꿈과 희망을 만들어 가는지.

꿈과 희망은 이것이다. 네가 필요하다는 말. 너를 좋아한다는 말. 그래, 그렇지. 그렇게 말해준 그녀가 있었지. 그녀는 네가 무엇을 하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종일 따라다니며 보고 싶다고 했었다. 그녀는 평론가가 되어 있나 소설가가 되어 있나.

그녀와 헤어진 건, 헤어진 건, 뭐 조상 탓이다. 조상이 나라를 남북으로 갈라놓았고, 북이 쳐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했고, 국방의 의무를 헌법에 박아놓았고, 헌법에 박은대로 하지 않으면 범법자가 되고, 범법자가 되면 결혼과 취업은 꿈도 꿀 수 없고, 꿈도 꿀 수 없으면 굶어죽어야 하고, 굶어죽기보다는 국방의 의무를 치르는 게 낫고, 치르려다 보니 여자 친구와 헤어져야 했다. 그녀는, 그녀가 보고 싶다.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다, 백수.

규는 알파고폰을 만지작거리다 오늘의 뉴스를 연다.

뉴스란 참 말하기도 싫다. 그 많은 백수들이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에 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없다. 그와 엇비슷한 게 있긴 있다. ‘알파고 신춘문예’ 당선자에 대한 기사. 당선자는 육 년을 백수로 지내다 처음 알파고 신춘문예에 도전했는데 당선이 되었다나 뭐라나. 이런 사기, 사기꾼.

규는 공연히 속이 뒤틀린다. 뒤틀린 대로라면 다른 뉴스로 넘겨야 하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상금에 대한 기사로 눈이 쏠린다. 상금은 돈이 아니라 알파고다. 그냥 알파고가 아니라 아직 시판되지 않은 알파고다. 알파고 신제품은 한정판으로, 대기업 부장급의 연봉을 털어 넣어야 살 수 있다고 한다. 거기다 알파고칩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차원이 다르다고 하면 차원이라는 게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신상 알파고는 차원이 다르다는 말을 단골 마케팅 전략으로 써먹는다. 이런 사기, 사기꾼.

규는 알파고폰을 닫고 침대에 눕는다. 밤은 어김없이 온다. 외로움도 낙오감도 빼놓지 않고 온다. 잉여, 나부랭이, 떨거지, 산업쓰레기, 셀프에 관한 생각도 차질 없이 온다. 육 년을 백수로 지냈다는 자도 이런 밤을 보냈으리라. 보내다가, 보내다가, 아사 직전에 상금에 눈이 박혀 글을 써 냈을 것이다. 상금. 고액 연봉과 맞먹는다는 신상 알파고. 탐이 날만도 하지.

탐이 나는 신상 알파고는 이렇다. 칩을 심는 것도 거추장스러우니 주사 한 방이면 끝나는 알파고주사. 주사도 아프니 온몸에 뿌리면 입자 알갱이 하나하나에 정보가 들어있는 알파고스프레이. 그것도 번거로우니 캡슐 하나를 꿀꺽 삼키면 만사 딩동댕 되는 알파고캡슐. 당선자는 그렇고 그런 신상 알파고로 으쓱 알파고신이 되어 으쓱 갑질이나 일삼는다. 에효~ 그럴 바엔 신상 알파고를 팔아 생활비로 써라. 그게 싫으면 그 신적인 능력을 이용해 취업을 하던가. 그보다 알파고주식을 사는 게 재미도 있고 실속도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알파고주식이 떨어진 적은 없다. 승승장구 알파고주식에 인생을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자면 글을 써야 한다. 써본 적도 없는 글을, 어떻게 쓰나.

규는 알파고폰을 제일 큰 크기로 편다. 손가락이 알파고폰 화면을 오락가락 떠돈다.

규는 몇 자를 쓰다 지우고, 다시 쓰다 지운다. 머릿속에선 오만 잡동사니가 떠오르는데 도무지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 거기다 이미지도 슬쩍 떠오르다 엉뚱한 쪽으로 빠져나간다.

규는 생각 끝에 알파고폰에다 ‘규의 성장소설 쓰기’를 입력한다. 알파고폰이 지체 없이 화면에다 글을 토해낸다. 규는 알파고폰이 척척 써내려가는 글을 눈으로 따라 읽는다.


규는 2000년 12월 14일 오후 3시 14분 P대학병원에서 출생. 체중은 3.28kg, 신장은 50.4cm, 머리둘레는 34.3cm, 가슴둘레는33.4cm. 혈액형은 A형. 황달은 5.2%. 3일 간 초유를 먹다 분유를 먹음. 생후 5개월부터 분유와 이유식을 번갈아 먹음. 유치는 2001년 6월 21일 오전 3시, 아래턱 중앙에 2개가 나기 시작. 2002년 6월, 20개 전부 남. 생후 12개월에 걸음마를 시작. 생후 3년 7개월에 세발자전거를 타기 시작. 생후 4년과 5년에 유치원과 피아노학원을 다님. 생후 4년 6개월에 수두에 걸림. 생후 5년 9개월에 유치원 주관으로 진흙 체험학습을 감. 2007년 3월 1일 P초등학교에 입학. 일 년간 오목을 두다 바둑으로 전환.

  

규는 글을 읽다 말고 글쓰기를 취소한다.

“이게 이게 소설이야 보고서야? 알파고가 쓰는 소설이라는 게 이런 거였어?”

알파고는 몇 년 전부터 논문도 쓰고 소설도 쓴다. 완벽한 단계는 아니지만 알파고의 지능이 계속 업데이트되면 말이 달라진다. 논문을 대필했다거나 소설을 표절했다는 말 대신, 교수나 학생은 알파고에 돈을 지불하고 논문을 사고, 소설가는 여느 직장인들처럼 사라지게 된다. 지금의 알파고 소설은 엉성하지만, 제대로 된 소설을 쓰지 못하리라는 단언도 하기 어렵다.

규는 팔짱을 낀 채 알파고폰을 지그시 내려다본다. 넌 누구냐. 네가 누구라면, 연애소설 정도는 쓸 줄 알아야 하지 않겠냐.

규는 알파고폰에다 ‘연애소설 심층적으로 쓰기’를 입력한다. 이번에도 알파고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글을 적어나간다. 

 

남자는 소설을 쓴다. 남자가 쓰는 소설은 연애소설이다. 남자는 연애소설을 심층적으로 쓴다. 남자가 쓰는 소설엔 여자가 나온다. 여자는 남자의 아내다. 남자의 아내도 소설을 쓴다. 아내가 쓰는 소설은 연애소설이다. 아내는 연애소설을 심층적으로 쓴다. 아내가 쓰는 소설엔 남자가 나온다. 남자는 아내의 남편이다. 남편은 아내가 쓰는 연애소설을 싫어한다. 아내도 남편이 쓰는 연애소설을 싫어한다. 남편은 아내가 음식을 준비하는 사이 아내의 연애소설을 훔쳐본다. 아내는 남편이 욕실로 들어간 사이 남편의 연애소설을 훔쳐본다. 남편은 아내가 쓴 연애소설을 심층적으로 읽는다. 아내도 남편이 쓴 연애소설을 심층적으로 읽는다. 남편은 아내를 심층적으로 미워한다. 아내도 남편을 심층적으로 미워한다. 남편은 아내를 죽인다. 아내도 남편을 죽인다. 남편은 아내를 죽인 후 아내가 쓴 연애소설을 불태운다. 아내도 남편을 죽인 후 남편이 쓴 연애소설을 불태운다. 

  

규는 화면의 글을 읽다 취소를 터치한다.

“이게 도대체 뭐야? 앞뒤도 맞지 않고 입력된 글자만. 칩으로 바꾸면 이보다는 낫게 쓸까?”

규는 소설 쓰기를 그만두고 창가로 간다.

가로등이 환하다. 자동차의 전조등 빛은 낮보다 강하다. 알파고는 낮도 모르고 밤도 모른다. 밤이 오면 정신의 혈류는 갈증으로 퍼덕이고, 낮에 흘렸던 느끼한 웃음은 후회를 거듭한다. 그런 것도 모르면서 알파고는 글을 쓴다고 껍죽댄다.

규는 무슨 생각에선지 피식 웃으며 알파고폰을 집어 든다.

“알파고야, 너는 무슨 양심으로 글을 쓰니? 앞으로 매일, 너의 양심을 채점해 보겠다.”

규는 알파고폰에 ‘추리소설 쓰기’를 입력한 후 잠자리에 든다.

알파고폰에서 빛이 흘러나오며 화면을 밝힌다. 터치하지 않아도, 간섭하지 않아도, 알파고는 능동태로 변해 화면 가득 글자를 채워나간다. 규는 화면에 저절로 뜨는 글자를 새삼 신기하게 보다 눈을 감는다.

규는 눈을 뜨자 습관적으로 알파고폰에 손바닥을 댄다. “오늘도 행복을 책임지는 뽀뽀입니다. 어서 일어나세요”하던 목소리는 간 데 없고 귀가 멍하도록 조용하다. 규는 눈을 감는다. 오늘도 어제를 카피한 날이 이어진다. 카피의 날이 계속되면 사람은 똥돼지가 되고, 똥돼지가 된 사람은 자신을 동돼지로 만든 존재를 찾아내려 칼을 집어 든다. 똥돼지 사람 혹은 사람 똥돼지는 칼을 든 채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자신을 똥돼지로 만든 존재를 찾아내기도 전, 똥돼지 사람 혹은 사람 똥돼지는 급히 계단을 오르다 발을 헛디딘다. 발을 헛딛는 바람에 똥돼지 사람 혹은 사람 똥돼지는 들고 있던 칼이 자신의 심장을 찌른다. 뜻하지 않게 셀프 완성. 셀프를 완성한 똥돼지 사람 혹은 사람 똥돼지는 하늘의 별이 된다. 되길.

규는 부스스 일어나 알파고폰을 본다. 화면엔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모르게 온통 글자판이다. 규는 그제야 자기 전에 소설을 써놓으라고 했던 생각이 난다.

알파고가 쓴 추리소설은 짜깁기다. 그동안 발표되었던 추리소설과 웹툰의 어느 대사, 문장이 뒤죽박죽 장황하다. 이것이야말로 원본의 대필이자 표절이 아닐 수 없다.

규는 알파고에게 양심을 들먹이며 소설 쓰기로 골탕을 먹이자던 생각이 떠오른다. 그래, 알파고야, 너의 양심은 나무랄 데 없이 잘생겼구나. 정보 수집, 통계, 확률, 그에 따른 분석과 실행이 너의 양심이거늘 그것을 몰라봤구나. 그렇다 해도 나는 소설 쓰기로 너의 약점과 놀아나고 싶구나.

그렇게, 밤이 오면 알파고는 소설을 쓴다.

그렇게, 아침이 오면 규는 알파고가 쓴 소설을 읽지도 않고 버린다.

어느 한 밤. 어느, 라는 특정할 수 없으나 특정 지을 수 있기도 한 날 밤.

규는 ‘알파고 문학상’의 기사를 읽는다. 당선자는 놀랍게도 그녀다. 규는 그녀의 이름에 눈을 박는다. 몇 번을 읽어도 그녀의 이름.

규는 그녀가 쓴 소설을 읽는다. 알파고가 쓴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소설. 그녀는 저런 소설을 쓰려고 그리 마음을 태웠나.

규는 심사평을 읽는다. 심사위원은 알파고. 알파고 심사위원이 쓴 심사평은 알파고가 쓴 소설과 별 차이가 없다.

“당선자의 소설엔 메타포가 없다. 아이러니나 반전도 없다. 감성이나 비유법도 없다. 냉소적이거나 풍자적인 기법도 사용하지 않았다. 사실만을 명확하게 써서 누가 읽어도 이해하기 쉽다. 당선자는 효율을 미덕으로 여기는 이 시대를 명확하게 관통해 그에 맞게 썼다. 심사위원은 그 점을 높이 평가한다.”

규는 뒤통수를 심하게 얻어맞은 기분이 든다. 저 심사평이 맞는다면 소설은 그녀가 쓴 것인가 알파고가 쓴 것인가. 문학의 정신은 저항에 있다고 말했던 그녀는 어디로 갔나.

그녀는 이런저런 소설을 읽고 난 후면 느낀 바를 말했다.

“이 소설의 장점은 은유야. 아오, 이 소설은 꽤 그럴 듯한데 주제가 없어. 이 소설이 소설이 될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야. 아응, 이 소설의 매력은 반전이네. 에이, 이 소설엔 진정성도 깊이도 없어. 이 소설은 문체가 좋은데 구성이 좀 산만하네. 이 소설은 미학이 뛰어나는데 결말에 힘이 빠져버렸어.”

그렇게 말하던 그녀는 어디로 갔나. 무엇이 그녀를 이다지 황폐하게 만들었나. 그녀와 어스름한 저녁나절을 함께 걸으며 나누던 얘기는 거짓이었나. 물에 어룽대던 달빛을 보며 전부 마셔버리겠다던 그녀는 한갓 동화 속 인물이었나. 비가 오면 따뜻한 찻잔을 앞에 두고 따뜻하게 품어왔던 생각들을 나누던 그 시간은 가상이었나.

규는 알파고를 열고 글을 쓰는 그녀를 어림해 본다. 그녀는 상상력을 제거하기 위해 쓴 약초를 달여 마신다. 호기심을 차단하려 러닝머신만 탄다. 생각을 마비시키려 머리를 밀어버린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파괴했다고 여긴 후 소설을 쓴다. 왜.

이대로 이렇게 밤이 지속되면 그녀는 행복한가. 알파고를 추앙하는 신전을 짓고 매일 밤마다 제의를 지내는 건 아닌가. 창조는 반역이 된다는 걸 알아채 이 시대에 맞는 리셋을 해가며 즐거워하는 건 아닌가.

규는 그녀가 쓴, 당선자의 소감을 읽는다.

“그에게 나를 알리자면 이렇게라도 해야 했다. 나는 그와 헤어져 가는 길에 가스 폭발로 얼굴의 반을 잃었다. 그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입대했고, 나는 짓뭉개진 얼굴로 그를 만날 수 없었다. 그가 어디에 있든, 나는 지금도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싶어 했던 나로 있다.”

규는 전신이 떨리고 소름이 돋는다.

“살아있구나!”

그녀는 그녀로 살아있었다. 풀장에서 알파고를 똑바로 쳐다보며 자위하던 동영상의 여자처럼, 그녀는 알파고를 반격한다.

으하하하! 이 밤이 짧다. 이 밤이 달콤하다. 이 밤을 이렇게 디자인한 그녀에게 와장창 터지는 웃음을 무조건, 실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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