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설/발표한 글

탈골

유리벙커 2025. 1. 26. 14:04

탈골

 

김정주

 

모녀는 방파제 입구에 선다. 뜨뜻한 기에 찬 기 섞인 바람이 분다. 굴 폐각이 썩는 냄새, 주변에 널린 그물에서 스멀스멀 퍼지는 냄새, 물고기와 해초들의 비릿하며 미끈거리는 냄새가 습하게 달라붙는다.

늘그막 한 딸이 노모의 팔을 잡고 방파제로 올라간다. 톡톡, 톡톡, 지팡이 두드리는 소리가 밤바다로 녹아든다. 모녀는 말없이 방파제 끝으로 간다. 딸이 방파제 끝에다 돗자리를 편다. “엄마, 바로 앞이 바다예요. 조심해요.” 딸은 노모를 돗자리에 앉힌 후 그 옆에 선다. 밤하늘은 밤바다로 너르다. 둥근달이 구름에 가려 반쯤 드러나다 온전히 드러나다 한다. 바다 저 편엔 둥글고 허연 양식장 부표가 줄에 매달려 둥둥 떠 있다. 그 뒤론 무인 등대에서 내쏘는 빛이 반짝반짝 터진다.

노모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을 터인데 무엇을 보고 있는 양 바다를 향한 채 꼼짝을 하지 않는다. 딸은 운동을 하겠다며 방파제 입구로 걸음을 뗀다. 하나, , , .... 딸은 자신의 발걸음을 세며 방파제 입구까지 간다. 밤바람이 더위를 문 채 끈끈하다.

방파제 입구까지 가자 딸은 몸을 돌려 노모가 앉은 자리로 간다. 노모는 여전히 돗자리에 앉아 바다를 향해 있기만 한다. 딸은 노모 곁에 선다. “엄마, 별일 없어요? 바로 앞이 바다예요. 오늘은 만조라 물이 꽉 차 있어요.”

노모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인다. 딸은 노모를 둔 채 다시 방파제 입구로 걷는다. 바닷물은 방파제를 넘보며 그들먹하게 차 있다. 딸은 자신의 발걸음을 세며 바다로 얼굴을 돌린다. 굽이굽이 검은 물결로 살아내고 있는 바다.

모녀는 한 달째 방파제 산책을 하는 중이다. 겨울바람이 모질게 불 때까지 할 수도 있고, 봄바람이 치맛자락을 휘휘 날릴 때까지 할 수도 있다.

여기 외지고 가난한 섬마을엔 관광객이 없다. 십여 년 전에 교량을 놓아 차로 오갈 수 있지만 한 번 다녀간 사람들은 다시 오지 않는다. 항상 질퍽한 길과 진흙처럼 들러붙는 온갖 종류의 악취와, 피라미드처럼 혹은 직사각형 컨테이너처럼 쌓여 있는 굴 폐각 더미는 여기 사람마저 질리게 한다. 관광객은커녕 주민조차 일하러 나오는 때를 빼곤 볼 수 없다. 관광객은 관광객이 있어야 온다. 토박이들은 바다와 냄새가 지겹고, 관광객들은 관광객이 없어 괴롭다.

딸은 노모가 있는 자리로 간다. “엄마, 별일 없어요? 두 걸음만 내딛음 바다예요. 조심해요. 물이 꽉 차 있어요.” 노모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움직임이 없다. 딸은 다시 몸을 돌려 발걸음을 뗀다. 노모의 말이 바람결을 타고 귓가에 스친다. “니가 고생이 많구나.”

딸은 멈칫 서다 걷기를 계속한다. 하나의 발걸음과 둘의 발걸음과 셋, , 그 후의 발걸음과, 그 후로 이어지는 시간과, 시간에 묶인 사람들과, 묶인 시간에 노예로 허우적대는 사람들과.... 딸은 발걸음 세기를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등대 불빛이 켜지다 꺼질 때마다 방파제 끝에 앉은 노모는 검은 돌덩이로 보이다 까무룩 보이지 않기를 거듭한다.

딸은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한다. 밤바다도 밤하늘도 막막하다. 입구는 너무 넓어 없고, 전부가 입구인 것은 입구가 아니다.

딸은 노모가 있는 데로 몸을 돌린다. 방파제 끝, 노모가 돌덩이로 앉은 데에 눈을 맞추며 걷는다. 노모는 그 자리 그 자세로 오도카니 앉아 있기만 한다. “엄마, 별일 없어요? 바다는 무섭지 않아요. 오늘은 백중사리에다 만조예요. 방파제 바로 앞이 앞마당처럼 물이 그득해요.” 노모는 바다를 향한 채 웅얼거린다. “백중사리라니 때가 참 좋구나.” 딸은 무렴히 노모를 내려다 보다 방파제 입구로 걸음을 뗀다.

노모는 딸이 끄는 슬리퍼 소리를 몸에 새기듯 듣는다. 찌그릭 찍, 찌그릭 찍.... 시동생한테 사기를 당했다. 그 일로 집이며 전답을 잃고 빚더미에 앉았다. 남편은 자살했고 딸은 다니던 중학교를 마치지 못했다. 빚쟁이들을 피해 딸과 외진 섬으로 도망쳤다. 수산물 가공공장에 들어가 온갖 잡일을 했다. 겨울이면 공장에서 굴 작업을 하고 굴 작업이 끝난 철엔 생선뼈 바르는 일을 했다. 눈이 침침해져왔다. 녹내장이 깊어져 앞이 안 보일 때까지 굴과 생선 일에 매달렸다. 딸도 수산물 가공공장에서 일을 했다. 딸은 당뇨에 시달리며 파킨슨병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별일은 없다.

찌그륵 찍, 찌그륵 찍, 슬리퍼 끄는 소리가 몇 번인가 가다 서다 한다. 노모는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제야 돗자리에서 일어난다. 굽은 허리를 난생처음 펴듯 펴고는 바다를 향해 하나, , 걸음을 뗀다. 세 번째 걸음이 허방을 짚는가 싶더니, 달이 바다로 쑥 내리 박히듯 물속으로 빨려 든다. 바다는 무섭지 않다.

딸은 방파제 입구까지 가자 그대로 선다. 저쪽, 방파제 끝에서 돌덩이가 천길 물속으로 빠지는 소리가 난다. 몸의 모든 뼈가 탈골할 때 나는 소리가 저러할까. 딸은 천, , , 몸을 돌려, , , , 방파제 끝으로 간다. 무인 등대에서 반짝 빛을 터트릴 때마다 보이던 돌덩이가 보이지 않는다.

딸은 돗자리에 놓인 노모의 지팡이를 집어 든다. 깊고 깊은 바다엔 금세라도 바다에 빠질 듯 내려앉은 보름달이 떠 있다. 딸은 톡톡, 톡톡, 어머니의 지팡이를 두드리며 방파제 입구로 간다.

방파제 아래엔 마을 이장의 어선인 혜성호가 쇠말뚝에 굵은 줄로 묶여 있고, 그 옆엔 수산물 가공공장 사장의 아들이 타는 정성호와 몇몇 어선들이 작은 양망기를 단 채 물결에 흔들린다.

톡톡 찌그륵 찍, 톡톡 찌그륵 찍 소리가 작은 어선들 앞에서 멈춘다. 딸은 하늘을 보다 바다를 보다 어선을 보다, 다시 하늘을 보다 바다를 보다 어선 보기를 그치지 않는다. 하늘은 하늘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달은 달대로, 어선은 어선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제 몫을 할 뿐, 별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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