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설/독서감상문

<<남이섬>>이 전하는 지뢰 이야기

유리벙커 2012. 11. 20. 00:40

 

 

 

 

 

나의 스승 전상국 선생님께『남이섬』을 받았다.

『남이섬』에는 「꾀꼬리 편지」「남이섬」

「춘심이 발동하야」「지뢰밭」「드라마 게임」의 중․단편이 들어있다.

 

 

 

선생님의 이번 작품 역시 6․25때의 상흔이 아릿하고도 고단하게 녹아있다.

늘 그렇듯, 자연에 대한 묘사는 선생님의 특기다.

작가라면 단 하나의 지명이나 인명을 쓸 때도 무척이나 고심한다.

예를 들어 나무 이름, 사람 이름을 정할 때도 흔한 것은 피하려 든다.

작품의 개성을 돋보이게 하는 명칭이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특이한 명칭이라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소설과 어울리고 녹아드는 명칭이라야 한다.

해서, 작가들에게 하나의 지명이나 인명은 쉬운 듯하나 어렵다.

『남이섬』에 나오는 모든 지명들은 하나같이 그 작품과 하나가 되어 ‘살아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예를 들면, ‘쉬땅나무’ (“꽃 핀 모양이 수수 이삭 같다고 해서”) ‘때죽나무’(“열매가 저렇게 때글때글 죽 열린다고 해서”) ‘시닥나무’ ‘가루고개’ ‘은봉장’ ‘말무더미고개’ ‘아홉살이고개’ ‘거위벌레’ ‘바위말발도리’.... 그 외 수도 없이 많다.

저 많은 명칭을 도대체 어떻게 다 아셨을까, 그저 감탄만 나온다.

 

 

 

선생님의 맛깔스런 표현을 옮겨본다.

 

“안개가 우욱우욱 밀려온다”

“여전히 같은 수량으로 촐촐거린다” “

“강아지도 좋아한다는 아이 러브 유.”

“아늑하고 깊숙한 뻐꾸기 소리”

“그 지랄 같은 기다림”

“원래 생살 속에 스스로 실연의 심지부터 박고 시작하는 외짝사랑”

“꿩 두어 마리가 까무러치는 소리를 내며”

“춤판 열기가 아직도 식지 않은 기생오라비 같은 놈이었다”

“저 떡갈나무 하나가 하루에 600여 리터, 무게로 치면 0.5톤 이상의 물을 빨아올린다고 생각해 봐요. 중력과는 반대 방향으로 물을 끌어 올리는 나무줄기의 모세관 역할이나 나뭇잎 하나하나가 물을 증발하는 과정”

“아는 것은 쉬우나 그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어려운 법”

“가해자와 피해자가 어느 순간 뒤바뀌는 것이 전쟁이니까요”

“내 안에도 지뢰가 여러 개 묻혀 있다는 거”

“지뢰가 숨을 쉬고 있다”

“남의 얘기는 모두 개소리이고 자기 생각만 구구절절 명심보감이다”

 

 

........ 옮기려니 한이 없다.

 

 

그 중 나를 사로잡는 묘사가 있다. 알지만 표현하기 어려운, 그래서 그거 있잖아, 거시기 말이야 하는 식으로 말하는 바로 그것을, 아주 잘 포착하여 서술한 대목이다.

 

 

“동오골에서 울리던 총소리가 멎었다. 쏴아 하니 밀려오는 정적. 상엿집도 여전히 그 모습으로 거기 서 있었다. 거기 있으면서도 그때까지 보이지 않던 들꽃이 비로소 내 눈에 띄었다. 서낭당과 상엿집 사이의 묵밭에 핀 벌개미취 군락 그 한옆으로 샛노랗게 핀 마타리꽃. 내 바지 자락이 질펀하게 젖어 있는 것을 안 것도 그 들꽃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특히 「지뢰밭」에서 나오는 인간의 이중적 심리에 대한 묘사는 절정을 이룬다.

 

 

“내 친구들 앞에 홍천 용씨, 용우성의 존재를 까발리고 싶은 충동이었다. 그 사람이 살아온 70평생의 우여곡절과 그가 지금 꿈꾸고 있는 일을 그들 앞에 얘기할 어투의 그 사특함까지도 어금니에 질금질금 물렸다. 시골 막국숫집 화장실에 서서 나는 그들 앞에 쏟아 놓을 말을 고르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내 말에 취해 은연중 그 사람의 생각까지 내 목소리를 빌려 말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 앞에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었던 그 사람 일의 당위와 그

가치를 역설하게 될는지도.”

 

 

“비척비척 화장실에서 돌아오는 길인데, 아직 만나지도 않은 친구들이 던진 돌이 내 말과 공중에서 부딪쳐 지뢰 터지듯 폭발하고 있었다”

 

 

“일이 대책 없이 꼬여 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치명적인 펀치를 맞고 뻗을 수도 있는 사각의 링 위에 그 사람을 올리고 싶은 유혹의 선을 이미 넘어서고 말았다”

 

 

 

 

선생님께 소설을 배운 내 입장에서 감히 선생님의 작품을 이렇다 저렇다 논할 순 없다.

다만, 모든 걸 떠나 나는 『남이섬』, 이 소설의 진폭이 꽤 멋지며 두고두고 음미할 수 있는, 소설의 진면목을 ‘자근자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