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팥의 교훈

유리벙커 2013. 12. 28. 17:01

 

팥으로 뭔가를 하려면 - 죽을 쑤려고 하던 전을 부치려 하던 - 일단 껍질을 벗겨야한다.

그 작업을 계피 낸다고 말한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 계피를 내려고 팥을 물에 담갔다.

잘린 팥의 경우는 하루 정도 물에 담그면 껍질이 살살 벗겨지나

통팥의 경우는 미지근한 물에 이삼 일은 담가야 한다.

계피를 내는 작업은 쉬운 듯하나 신경이 좀 쓰인다.

물이 식지는 않았나, 팥이 얼마나 불었나, 종종 들여다봐야하는 것은 물론,

손바닥으로 팥을 비벼서 껍질을 벗기고, 그 벗긴 걸 물로 헹궈서 알맹이와 껍질을 구분해줘야 한다.

 

 

나는 통팥을 미지근한 물에 담그고, 갓난아이 기저귀를 갈아줄 때가 됐나 살피듯 수시로 살핀다.

작년에 비해 올해는 팥이 착실하게도 잘 불었다.

맨손으로 계피를 내도 되지만 나는 고무장갑을 낀다.

고무장갑의 손바닥이 까슬까슬하니 계피내기의 완성도가 좋을까 싶어서다.

고무장갑을 끼고 퉁퉁 분 팥을 비빈다.

물로 헹궈 팥의 껍질을 조심스레 버리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난다.

껍질이 많아질수록 어떤 보람 같은 것이 슬슬 동한다.

그렇게 열심히 비비고 헹구어도 모든 팥의 껍질을 완전히 벗길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여태도 껍질을 달고 있는 팥 알갱이를 보며 두 가지가 생각난다.

 

 

첫째, 살아남기.

비록 더운 물에 몸통이 갈라졌지만(팥이 불면서 껍질이 반으로 금이 간 상태를 말함)

여전히 벗겨지지 않는, 벗기길 거부하는 몸짓.

고무장갑의 그 거친 면이 몸통을 쓸어대도 죽어라 버티는 일관성, 혹은 아집.

껍질을 고수하는 팥은, 그렇게 해야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웅변한다.

둘째, 살아남기.

일찌감치 껍질을 벗은 팥 알갱이는 병아리색을 띄며 보드라운 몸통을 드러낸다.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가 영양과 즐거움을 주겠다는 희생 혹은 애정.

껍질을 벗은 팥은, 껍질/옷을 고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벗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속삭인다.

 

 

결국은 살아남기다.

껍질을 벗든 달고 있든,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절절하다.

알아서 기는 것으로, 혹은 변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자신의 온도와 맞지 않는 온도마저 감수하면서,

고무장갑이라는 세상의 풍파를 맞으면서,

옷을 벗거나 벗지 않는 것으로 자신을 지탱한다.

어떤 게 정당하다거나 지혜롭다고 말하긴 어렵다.

사람의 수가 각각이듯, 그 처세 또한 각각인 것을.

 

 

오히려,

그 각각의 것을 하나로 통일하려는 생각이 어리석다.

내가 벗었으니 너도 벗어라,

내가 벗지 않았으니 너도 벗지 마라... 이런 식은 안 된다.

껍질을 벗었어도 팥이요,

껍질을 벗지 않았어도 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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