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두 남자

유리벙커 2015. 5. 5. 01:27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내비게이션을 판매하는 사람이다.

내비게이션이 고장 나 그 매장을 찾았을 때 그는 말했다.

“일단 어디가 잘못된 건지 알아보겠습니다.”

다음 날, 그 매장을 갔을 때 그는 말했다.

“고장 난 데는 없습니다. 고장났다고 말하고 수리비를 받을 수도 있지만 동네 장사를 그렇게 하면 안 될 거 같아 돈은 안 받겠습니다. 근데 이것저것 실험해봤으니 수고비로 만 원만 주십시오.”

나는 남자가 더없이 양심적이고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비게이션을 장착하고 다닌 지 얼마 후 내비게이션이 먹통이 됐다.

다시 그 매장을 찾았을 때 그는 말했다.

“고치는 데 수리비가 듭니다. 일단 가져가서 어디가 잘못됐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다음 날 다시 매장을 찾았을 때 그는 말했다.

“수리비가 6만 원입니다.”

나는 순간 뭘 잘못 알았나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분명, 고치는 게 아니라 어디가 잘못된 건지 알아보겠다고 했었다.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는 매장에 진열된 중고 내비게이션을 가리키며 말했다.

“수리비를 내고 쓰셔도 되지만 저기 있는 중고품 중에서 하나 고르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중고는 15만 원에 드리겠습니다. 수리비 6만 원에 지금 쓰시는 이 내비를 5만 원에 쳐주겠습니다. 저 내비, 석 달밖에 안 쓴 거라 새거나 다름없습니다.”

나는 수리비 6만 원은 금세 잊고 말썽 많은 내비게이션을 5만 원에 사겠다는 말에 솔깃했다.

더욱이 석 달밖에 안 써 새 거나 다름없다는 말이 구매 욕구를 당겼다.

나는 조금 깎아달라고 말한 후 그가 말한 중고 내비게이션을 새로 달았다.

그렇게 얼마를 주행하던 중, 새로 단 내비게이션이 다시 먹통이 됐다.

나로선 중요한 약속이었고 낯선 길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내비게이션을 이렇게 저렇게 만져보다 전원을 빼서 다시 꽂았다.

그제야 내비게이션이 제대로 작동됐다.

나는 목적지로 가는 내내 몹시 신경이 쓰였다.

다시 먹통이 되면 어쩌나, 목적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말썽을 부리면 어쩌나.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동안 역시나, 내비게이션은 먹통이 됐다.

5~6 차선의 낯선 길에서 차선을 어디로 정할지도 모른 채 정말이지 곤혹스러웠다.

새로 구입한 지 이십 여일 만이었고, 예전에 쓰던 내비게이션과 똑같은 현상을 일으켰다.

열이 받쳤다.

나는 집 근처에 이르자 그 매장으로 갔다.

그는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대뜸 퉁명스런 표정을 지었다.

나는 지금의 내비게이션이 어떤 말썽을 부리는지 설명했고,

새 거나 다름없다는 말을 믿고 구입하게 됐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느냐고 말했다.

그때 그가 갑자기 언성을 높여가며 말했다.

“아줌마! 그런 말은 집에서나 하고... 여기 와서 그런 말을 하면 장사하는 데 재수없게...”

그는 말하는 내내 아줌마! 아줌마! 큰소리로 말하며 거의 윽박지르는 수준이었다.

나는 하도 놀라 순간 뻥했다.

사람이 달라져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처음엔 사모님, 사모님 해가며 간이라도 빼줄 듯 친절하게 굴더니 지금은 주먹을 날릴 기세였다.

그는 계속 나를 노려보며, 그러면 수리를 해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수리를 해봐야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시선을 맞받아 쏘며, 수리하지 말고 다른 걸로 바꿔달라고 했다.

그는 분을 삭이지 못하겠는지 여전히 아줌마! 아줌마! 큰소리로 말하며

중고 내비게이션이 진열된 진열대를 가리켰다.

“아줌마! 저건 아이나빈데 그걸로 하든지 아니면 그 옆에 있는 지니로 하던지...”

나는 어이가 없었다.

원래 내가 가진 내비게이션은 아이나비였고,

그는 그 내비게이션을 보자 요즘엔 아이나비를 안 쓴다, 지니가 훨씬 좋다, 다들 지니 쓴다,

아이나비는 이제 한물 간 거다,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그때를 떠올리며 아이나비가 안 좋다고 했으면서 아이나비를 권하느냐고 말했다.

그는 내 말에 우물쭈물 하더니, 그럼 자기가 '쓰려던' 걸로 달아주겠다며 자기 차로 갔다.

그는 그의 차에 장착되어 있던 내비게이션을 떼어 내차로 왔다.

마치 새것인 양 '쓰려던' 것과는 말과는 달리 내비게이션은 중고품이었다.

화면은 예전 것보다 선명도가 떨어졌고 스크레치가 나 있었다.

나는 그와의 실랑이가 너무 힘들었으므로 그가 달아준 내비게이션을 말없이 달았다.

 

 

 

다른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조금은 싼 티가 나는, 노랗게 염색한 머리를 한 아이들 아빠다.

나와 남편은 유명세를 탄다는 튀김닭집이 있다는 시장 통으로 갔다.

튀김닭집은 유명세만큼이나 복닥거렸다.

나와 남편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손님이 많아서인지 튀김닭은 좀체 나오지 않았다.

나는 행주자국이 그대로 나 있는 테이블을 휴지로 닦으며 튀김닭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때 한 남자가 오더니 테이블을 좀 바꿔줄 수 없겠냐고 했다.

남자가 가리키는 테이블은 4인용이었고 우리가 앉은 테이블은 6인용이었다.

남편은 선선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테이블을 닦던 휴지를 들고 엉거주춤 일어났다.

우리는 그가 가리키는 테이블로 가 앉았다.

남자는 우리를 따라오더니 테이블에 놓인 휴지통에서 휴지를 뽑았다.

그러더니 내가 한 것처럼 테이블을 닦기 시작했다.

나는 남자가 튀김닭집을 관리하는 사람인가 싶어 말했다.

“테이블은 됐고요, 닭이나 빨리 주세요.”

남자는 테이블을 닦다 말고 나를 보며 말했다.

“저... 여기 닭 먹으러 온 사람인데요...”

나는 벌쭘해졌고, 그는 겸연쩍은 얼굴로 자기 테이블로 갔다.

그가 가자 나는 남편에게 소곤거렸다.

“저 남자, 닭 먹으러 왔다면서 왜 남의 테이블을 닦는 거지?”

남편의 대답은 간단했다.

“고마워서.”

그러고 보니 남자의 얼굴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묻어나던 게 떠올랐다.

나와 그는 테이블은 달랐지만 마주 보고 앉은 형태였다.

나는 그를 흘끔거리며 남편에게 말했다.

“그렇다고 쫓아와서까지 남의 테이블을 닦아주나?”

남편은 대답했다.

“네가 테이블 닦는 거 봤잖아. 닦은 테이블을 바꾸자는 게 미안했던 거겠지.”

아하, 그게 그렇게 된 건가?

나는 남자가 솔직히 신기했다. 요즘 세상에도 저런 사람이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어른 두 분과 아내, 아이 둘과 함께 닭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유치원 생 정도로 보이는 딸을 옆에 끼고 말했다.

"사람은 예의를 지키고 남을 배려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야, 알았지?"  

나는 문득 저런 소시민이 있어 세상은 굴러가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믿을 수 없는 세상, 믿으면 바보가 되는 세상, 바보가 되면 손해가 나는 세상, 손해가 나면 자신은 물론 가정마저 위기에 처하게 되는 세상. 이러니 악다구니로 지키고 빼앗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

이런 현상은 무릇, 한 개인의 잘못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속성에 있다.

그렇게 살벌하고 팍팍한 현실에서 누가 승자인지, 승자가 될 것인지.

내비게이션을 판매하는 남자와 튀김닭집에서 테이블을 닦아주던 남자,

이 둘은 연대가 가능할까,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만든 자본주의 사회를 누리고 향유하는 게 아니라 눌리며 끌려간다.

모든 가치가 화폐로 정산되게끔 우리는 자본주의를 괴물로 만들어버렸다.

화폐는 화폐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교환의 수단일 뿐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르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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