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벙커』를 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속초에 사시는 이상국 시인께서 깜짝 놀랄 선물을 보내오셨다.
우편함에서 얇은 편지봉투를 꺼냈을 때
이게 뭘까? 책은 아닌데 무슨 행사 안내에 관한 공문서인가? 그런 생각을 했다.
집에 올라와 편지봉투를 연 순간 나는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한지에 쓴 “유리벙커 김정주 작가의 소설집 발간 축하드립니다 이상국”
이렇게 멋진 선물이 어디 있을까.
선생님이 책상 위에 한지를 펴고,
붓에 먹물을 묻혀,
신경을 집중해서 쓰셨을 글자들,
후배를 생각하는 그 마음.
마음이 울렁거렸다.
이상국 선생님을 처음 만난 건 만해마을에서다.
한 달을 체류하며 선생님과 같이 식사를 했고 간간히 대화를 나눴다.
책이 나오면 선생님께 부쳐드렸고, 선생님께선 시집을 보내주셨다.
서울에 와선 한국작가회의 행사에서 뵙고 반가움을 나눈 그런 정도.
개인적으로 교류했다고 말할 순 없지만 나는 선생님의 시를 좋아하고 인격을 좋아한다.
만해마을 벤치에 앉아 무연히 생각에 잠기던 모습,
간간히 현실의 부조리를 토해내던 열정,
살아있는, 결코 늙지 않는 정신의 세계.
작가라면 갖춰야 할 인식의 장이 넓고도 깊었다.
한지에 접힌 자국을 펴려 살짝 다림질도 하고 두꺼운 책에 넣어 하루를 보냈다.
접힌 자국은 잘 펴지지 않았지만 행여 한지의 글자가 훼손될까 액자에 넣었다.
거실 벽에 걸고 나니 이렇게 잘생긴 게 어디 있을까 싶다.
사실, 유명 작가가 까마득한 무명 후배에게 붓글씨로 글을 써 주기란
정말 마음을 내지 않곤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에겐 염장샷이 되었을 선생님의 붓글씨. ㅋㅋㅋㅋ
액자의 글에서 꾸준히 글을 쓰라는 육성이 흘러나온다.
나는, 결코 떠들어대며 생색내지 않는 격려에 마음이 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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