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조언인가 실언인가?

유리벙커 2015. 6. 1. 02:45

작가들은 책을 내면 독자의 반응에 예민해진다.

글에 대한 평가가 곧 자신에 대한 평가이니 왜 안 그럴까.

그런데 작가 입장에서 보자면 평가도 평가 나름이다.

특히 작가와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평가는

냉정한 의미에서 제대로 된 평가라기보다

예의에 속하는 립서비스 혹은 우회적인 비난이 주를 이룬다.

작가의 글을 알기 전에 사생활을 먼저 알고,

작가가 되기 전부터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알고 있으니 무리는 아니다.

그들이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없었던, 혹은 하지 못하는 이유는

작가를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글에 드러난 작가와 개인적으로 알고 작가와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나이도 있느니 젊은 애들처럼 쓰지 말고 나이답게 써야 하지 않을까?, 그런 식이다.

참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얘기다.

글에 어디 나이가 있을까.

문학을 비롯한 예술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들 말대로 하면, 동화는 어린 작가가 써야 하고, 청춘소설은 젊은 작가가 써야 하고,

실험소설이나 판타지 역시 젊은 작가 써야 하고,

노인들이 등장하는 소설은 나이든 작가가 써야 한다는 말이다.

글과 나이는 전혀!!! 상관이 없다.

글은 내가 이렇게 쓰고 싶다고 써지는 게 아니다.

그동안 살아오며 겪었던 경험, 그에 따른 사고나 인식이

자신도 모르게 축적되어 나오는 게 글이며 예술이다.

위에 한 말에 대해 나는 어느 작가의 말을 인용한다.

“소설가는 쓰고 싶은 걸 쓰는 게 아니라 쓸 수 있는 걸 쓴다.”

 

 

독자가 볼 때 작가의 글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미흡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나이를 운운하는 건 치졸하다고 본다. 

어려서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와 산 젊은 작가의 경우,

그 작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세계를 너무나 잘 알아

마치 나이든 작가가 쓴 것 같은 착각을 주기도 한다.

나이 든 작가지만 마인드가 젊은 작가의 경우,

젊은 작가 못지않게 도발적이며 실험적인 글을 쓰기도 한다.

문학을 비롯한 예술은 그 어떤 프레임에도 갇히길 거부한다.

그래서 예술이다.

나이대로, 혹은 규격대로 딱딱 각이 맞아떨어지는 건 예술이 아니다.

피카소나 베이컨의 그림은, 칼비노나 이상의 글은,

나이에서 나온 게 아니라 머리에서, 감성과 지성에서 나온 것이다.

과학도 예술과 접목하는 시대에 작가에게 나이타령이라니, 조언인가 실언인가.

 

 

나는 내 글을 읽는 독자에게 그 어떤 선입견도 작용되길 원하지 않는다.

어느 지역 출신인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나이는 몇인지...

이런 소개는 작가의 글을 읽기 전에 독자에게 알게 모르게 선입견을 제공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신인상’제도를 비판한다.

신인상은 등단을 전제로 하는데, 주최 측마다 다르긴 해도 대부분 나이와 출신 학교 정도는 기록하라고 한다.

글을 잘 쓰는 작가를 선별하기보다 앞으로 써먹을 작가를 고르려는 속셈이다.

다시 말해 상품으로 내보낼 작가/글을 골라내려는 작업이다.

자본주의사회라 어쩔 수 없다 쳐도 예술만큼은 그런 조악한 방식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제도적이며 도식적인 그따위 방식이야말로 예술의 질을 떨어뜨린다.

 

 

나는 내 글이, 오직 글로 평가받기를 바란다.

하다못해 “이건 추리소설이다”, “이건 애정소설이다”,

“이건 전쟁소설이다”라고 장르를 규정짓는 것조차 거북하다.

추리소설에도 애정이 들어있을 수 있고, 전쟁소설에도 추리가 들어있을 수 있다.

어느 하나를 찍어 이건 어떤 소설이라고 규정짓는 순간 그 소설은 규정된 소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는다. 즉 소설이 가진 무한성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이다.

해서, 나는 내 글은 물론 다른 작가의 글에서도

남자 작가가 쓴 것인지, 여자 작가가 쓴 것인지,

무슨 상을 탄 글인지, 알고 싶지도, 알려주고 싶지도 않다.

독자로서 글 자체에 미끄러져 들어가면 그걸로 족하지 않은가.

 

 

 

독자는 작품을 어떻게 보든 자유다.

그것이 독자의 특권이다.

하지만 자신의 평가만이 유일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독자의 특권이 아니라 오만이다.

평론가/비평가 역시 독자에 속한다.

그들은 일반적인 독자가 아닌 전문적인 독자다.

분석과 해석으로 글을 해부하는 직업적인 독자다.

그들의 해석과 분석은 작가에게 도움이 된다.

그렇다 해도 그들의 말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비평가/평론가 역시 그들 각각의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소설은 소설을 쓴 작가조차 인지하지 못한 수많은 갈래를 숨기고 있으며,

의미 또한 무한해서 이것이라고 하나로 정의내릴 수 없다.

 

나는 내 글이 일관적인 평가로 끝나는 걸 원치 않는다.

호평이든 비판이든, 제대로 된 평가라면 여러 종류로 분석되고 비판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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