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설/독서감상문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 주는 애환

유리벙커 2017. 6. 17. 17:45




보후빌 흐라발/이창실 옮김, 문학동네

 

보후빌 흐라발은 체코의 국민작가다. 그는 1968년 소련이 점령했을 때도 망명하지 않고 끝까지 체코어로 소설을 쓴다. 그와 동시대에 산 체코의 밀란 쿤테라가 프랑스로 망명해 프랑스어로 작품을 쓴 것과는 대조적이다.136.

여기서 생각할 점은, 작가는 시대적 상황에 어떻게 저항하는가이다. 지배국의 지배를 받으며 조국에 남아 끝까지 저항하는 글쓰기 방식인지, 다른 나라로 가 저항하는 글쓰기 방식인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나치가 들어오자 다른 나라로 도망가서 글쓰기를 한 토마스만도 있고, 일제 치하에 남아 글쓰기를 한 작가들도 있다. 성과로만 보면 간단하나 결과물이 아닌, 과정을 살펴보면 타국으로 망명해 글쓰기를 하는 것은 쉽다. 감시가 없는 체제에서 쓰는 것이니 무슨 말인들 못할까. 그에 비해 끊임없이 감시를 당하며 언제 죽을지도 모를 체제에서 쓰는 것은 몸으로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독제 체제를 그대로 겪으며 쓰는 글이야 말로 생명을 담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시점에 쓴 묵시론 적 소설이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라는 제목부터가 화두다. 시끄러움과 고독은 어울릴 수 없다. 그럼에도 어울리는 길항적 요소가 있다. 그렇다면 대체 뭐가 시끄러우며 고독하다는 것일까.

주인공 한탸는 삼십오 년 째 지하실에서 쓰레기를 압축해 파쇄하는 작업을 한다. 그는 매일 머리 위로 떨어지는 온갖 쓰레기 중 좋은 책을 골라 보관한다. 이때의 기쁨 때문에 그는 쥐와 파리가 들끓는 지하에서 삼십오 년 째 이 작업을 한다. 때론 유명 화가의 복제화가 무더기로 떨어지기도 하고, 철학책이며 체코 왕실이 소장했던 금장식의 책들도 떨어진다. 그는 자신의 상자를 복제화로 두른 후 그러한 책들을 그 상자에 보관한다. 책을 넣을 때는 가장 좋은 문장이 있는 데를 활짝 펴 한가운데에 둔다. 제의적 행위다.

그런데 그는 수많은 책들을 압축기에 넣고 파쇄 버튼을 누르며 내 손 밑에서, 내 압축기 안에서 희귀한 책들이 죽어가지만 그 흐름을 막을 길이 없다. 나는 상냥한 도살자에 불과하다”12. 고 말한다.

정권이 바뀌면 그 전 정권에서 쓴 책들이 전부 쓰레기가 된다. 한탸는 누구도 간직하길 꺼려하는 것을 간직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파쇄한다. 이 변증법적 행위는 무엇을 말하는가. 변증법이 제시하는 정과 반의 합에서, 흐라발이 만들어내려는 합은 무엇인가. 사회주의는 인간의 성숙을 변증법으로 푸는데, 이 작품에서 헤겔이 자주 거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탸는 프로이센 왕실의 책들이 군용차에 실려 기차로 옮겨가는 것을 보면서는 자신이 한 일이 아님에서 경찰서로 가 포승을 채워달라며 인륜을 거스른 죄를 범한”22쪽 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책을 실은 열차가 떠나는 것을 보면서는 미소를 지었다”23. 거나 나는 파괴 행위에 깃든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시작했다”23. 고 말하기도 한다. 시대적 히스테리이자 죄의식이다. 거기에 더해 헤겔의 변증법을 적용하면 1.저장하면서 2.파괴하는 행위로 인해 3.합을 도출해내는 방식임을 알 수 있다. , 1.파괴를 하고, 2.미소를 짓고 3.이해하는 합의 방식에 다다른다. 다시 말해 책을 없애는 짓은 커다란 범죄 행위지만, 책이 그 시대를 구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해의 차원으로 간다. 흐라발은 정신의 투쟁 역시 여느 전쟁 못지않게 끔찍하다”37. 라고 랭보의 말을 인용하는데, 이데올로기야말로 그 무엇보다 시끄럽다는 뜻이다.

 

 

체코의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삽화에는 어머니의 죽음(체코의 죽음을 은유한 삽화)도 있다. 한탸는 엄마가 죽자 화장을 한다. 엄마의 화장과 책을 파쇄하는 일은 같다. “20기압의 힘으로 그것들을 짓이기고 있노라면, 인간의 뼛조각 소리가 들리곤 했다. 마치 고전 작품들의 뼈와 해골을 압축기에 넣고 갈아댄다고나 할까.”26. 이 대목에서 고전 작품이란 체코의 역사를 의미한다. 2차 세계대전으로 체코는 무너지고 국민들은 공산주의의 감시 하에 놓인다. 체코(=국민)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압축기에 깔려 죽어간다.

그렇다면 흐라발이 말하고자 하는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

주인공 한탸는 그 더럽고 시끄러운(쥐들끼리 투쟁 하는 소리, 하수구 물소리 등등) 지하에서 일을 하면서 취기가 가시기도 전에 맥주를 들이킨다. 맥주를 마시는 이유는 섬망증을 얻기 위해서다. 섬망증으로 인해 거인이 눈앞에 나타나기도 하고 예수와 노자도 나타난다. 그렇다고 섬망증으로 시시포스 콤플렉스는 지난 삼심오 년 동안 내 일상의 몫이었다.”93쪽 는 입장을 도피하려는 건 아니다.

지하 작업장으론 집시 여자들이 폐지를 가져오는데, 한탸는 집시 여자들에 호의적이다. 술집에서 만난 어린 집시 여자와는 잠시 동거도 한다. 집시란 누구인가. 무정부이자 가장 소외된 계층이다. 나치가 아우슈비츠에서 학살한 사람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집시도 많았다.(유대인은 유대인 못지않게 많은 수의 집시가 학살당한 것을 알면서 그 집시들을 빼고 자기네 종족만이 학살당한 것처럼 선전한다) 한탸는 가장 약자이자 무정부적인 집시를 통해 구원을 꿈꾼다. 마지막 장면은 나치에 끌려 죽은 어린 집시를 섬망증으로 만나는데 이것이 바로 흐라발이 꿈꾸는 구원이다. , 흐라발이 말하는 구원은 책도 종교도 아닌 사람이다.

반면, 흐라발은 체코의 구원을 만차라는, 젊은 시절에 만났던 여자를 통해 변질된 구원으로 본다. 만차는 모두의 시선을 끄는 어여쁜 여자로, 주인공 한탸와 파티에 간다. 그녀는 알록달록한 천과 함께 길게 땋은 머리를 가졌는데, 화장실에 다녀온 후 머리 끝에 똥을 묻혀온다. 그 상태로 빙글빙글 춤을 추다 머리끝에 묻은 똥을 여러 사람에게 흩뿌리게 된다. 그 일로 그녀는 창피를 당하고, 한탸의 프러포즈를 거부한다. 그렇게 한탸와 만차는 헤어지고, 나중에 다시 만난다. 그때는 럭셔리한 호텔로 가 스키를 타는데 이번에도 만차는 스키를 타고 내려오던 중 숲에서 똥을 싼다. 그 똥이 스키에 묻은 줄도 모르고 만차는 호텔 야외 카페로 온다. 사람들은 멋지게 생긴 여자가 똥을 달고 오는 것을 보자 웃음을 참지 못한다. 이 일로 만차는 다시 한탸의 프러포즈를 거부한다. 그러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한탸는 만차의 초대를 받는다. 거기서 한탸는 너무도 우아해진 만차를 본다. 만차는 저택을 소유했는데, 소유 과정이 너무도 자본주의적이다. 한 남자를 통해 땅을 사고, 땅을 산 다음엔 그 남자를 버리고 집을 지어줄 남자를 구한다. 그 남자를 통해 집을 짓자 이번엔 그 남자를 버리고 집을 예쁘게 꾸며줄 남자를 구한다. 집이 예쁘게 꾸며지자 그 남자를 버리고 자신을 신격화시켜 줄 남자를 구한다. 그 남자는 만차를 천사 모양의 석상으로 만드는데 날개는 돌이다. 돌로 된 날개는 날 수 없다.

이 삽화를 통해 흐라발은 역사를 가진 우아한 체코가 소련의 지배로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그 웃음거리를 날 수 없는 돌 날개라는 자본주의로 회복하려 한다고 고발한다. 당시 예술가들이 아무리 천사를 만들고 예술을 한다고 설치지만 그들은 부르주아가 된 아티스트들이며, 만차로 대변되는 프라하는 순박했지만 시대에 잘 적응하는 성스러운 매춘녀가 되었음을 패러디로 보여준다.

압축기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한탸는 구식 압축기를 썼는데 이제는 거대한 신식 압축기가 도입된다. 어느 날 한탸는 바츨라프 광장으로 가, 대단히 거대하고 실용적이며 신속하게 움직이는 압축기를 본다. 작업자들은 오렌지색이나 푸른색 장갑을 끼고 노란 미국식 캡을 쓰고 있다. 맥주가 아닌, 우유와 콜라를 마시며 휴식 시간을 즐기기도 하고 휴가를 얘기하며 킬킬대기도 한다. 한탸는 그들이 낀 장갑에 나는 모욕을 느꼈다. 종이의 감촉을 더 잘 느끼고 두 손 가득 음미하기 위해 나는 절대로 장갑을 끼지 않았으니까.”89. 라며 분노를 표한다. 신식 압축기가 책들을 삼키는 모습을 보자, “저 거대한 압축기가 다른 모든 압축기에 치명타를 가할 것이고, 내가 몸담고 있는 직업에도 상이한 유형의 사람들과 작업 방식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었다.”91. 라고 탄식한다.

아닌 게 아니라 노란색과 오렌지색 장갑을 낀 사회주의 노동당원들이 한탸의 지하 작업장에 나타난다. 한탸는 곧바로 실직하여 작업장을 나온다. 그는 하릴없이 프라하의 어느 술집에 앉아 오가는 사람을 보기도 하고 술집을 나와 거리를 걷기도 한다. 거리의 산책자, 즉 백수가 된 것이다. 그때 한탸는 다시 섬망증으로 또 하나의 상상물을 본다. 새로 나온 거대한 압축기가 경기장과 성당과 공공건물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는 그 광경을 보며 이 묵시록의 압축기로부터는 아무것도, 쥐새끼 한 마리도 달아날 수 없다.”114. 고 절망한다.

한탸는 절망을 안고 자신이 삼십오 년 동안 몸담았던 지하 작업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책을 집어 들고는 압축기 안으로 들어간다. 몸을 반으로 접어 웅크린 후 작동 버튼을 누른다. 책이 늑골을 뚫고 들어온다. 그때 그는 내 승천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압축통 벽에 눌려 내 다리와 턱이 들러붙고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이 이어진다 해도 결단코 두 손 놓고 천국에서 추방당하지는 않을 것이다.”131. 라고 말한다. 정신과 육체가 하나가 되어 온전한 존재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탸는 죽어가는 순간 잠시 동거했던 어린 집시 여자를 본다. 이름조차 몰랐던 그녀의 이름이 떠오른다. 이름 없던 무존재가, 이름을 단 존재로 탄생되는 순간이다. 사람만이 구원이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나는 폐지를 압축한다. 녹색 버튼을 누르면 압축판이 전진하고, 붉은색 버튼을 누르면 후진한다. 이것이 세상의 기본적인 움직임이다.”44. 라거나,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반드시 적을 두기 마련이다. 영원한 구조가 지닌 멜랑콜리.”128. 라는 말로 시대적 상황을 인정했지만, 집시 여자를 통해 인간 존재의 원리를 구원에 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