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기, 문학수첩, 2017년
길을 가다, 어쩌다, 아는 이와 마주쳤을 때는 약속을 잡고 만날 때보다 반가움이 크다. 천변으로 밤 산책을 다녀오다 우편함에서 꺼낸 『어쩌다 침착하게 예쁜 한국어』 가 그렇다. 오랜만의 소식이다. 2016년 봄, 내 출판기념자리에서 뵙고 오늘 책으로 만나니 일 년 조금 넘는다.
이 시집은 4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엔 이미 청년에서 중년이 된 시인의 고독과 그리움이, 2부엔 『삼국유사』에 나온 설화를 지금의 현실과 대응시킨 반성이, 3부엔 가족사와 어린 날의 추억이, 4부엔 세월호 아이들에 대한 아픔이 녹아 있다.
시집은 노랑 바탕에 예쁜 서체인데 제목이 뜬금없다.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을까.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급히 첫 장을 연다. <시인의 말>이 질투 나게 좋다.
멍든 포도로 담근 술의 농도가 더 진할 것이다. 아무렴 그러리라고 믿고 살아왔다. 세월이여, 지친 내 술통의 헌 데가 많아, 흘려보낸 붉은 흔적이 서럽다 한다.
시인은, 시인으로 산 35년의 세월을, 오래 된 술처럼 흘려보낸다.
시인이 빚었을 술, 그 시간에 간간히 자리했을 애꿎음들, 향과 맛이 억지가 아니길 바랐을 작은 소망들, 그 속살을 만져본다.
우선 표제작을 보면,
어쩌다 침착하게 예쁜 한국어
-고비에서 3
게르 지붕에 닿은 하얀 빛
기억하는 순간의 눈동자를 내게 말해 다오
고비의 아가씨여
나는 사막을 모른다
어쩌다 침착하게 예쁜 한국어가 그대의 가슴을 흔든다면
고렷적 시집 온 여인의 유전자라 여기겠다
귀축(歸竺)의 한나절
잠시 눈길을 준 젊은 승려가
지금 어디서 말 모는 지아비가 되어 있는지
살아 있는 매의 다리를 빌려다오
전령이 되기에 늙은 나이
나는 이 사막을 한 번은 건너리라 기약하는 것이다
감히, 그러나 독자의 특권으로, 시인의 마음을 엿본다. 시인은 시원의 세계를 그리워한다. 사막이란 생성과 소멸의 세계다. 다시 말해 시원의 세계다. 무엇이 어떠하던 시원은 시원으로 존재한다. 그 지점 혹은 그 시점으로 들어가고 싶은 꿈은 비단 고운기 시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터이다.
시인은 게르에서 튕겨 나오는 빛(시원의 빛)을 보며 그 빛에 담긴 기억을 말해달라고, 고비의 아가씨에게 말한다. 고비의 아가씨(시원의 안내자)와 통通하자면 승려(지적 무소유자)가 되어야 하는 법. 시인은 젊은 승려가 되어 고비의 아가씨에게 잠시 눈길을 준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좋을지 “살아 있는 매의 다리를 빌려” 달라고 청한다. 시인은 살아 있지만 살아 있지 않음을, 그래서 살아 있고 싶음을, 매의 강인한 다리를 빌어 소원한다. 그러기엔 늙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시원의 세계로 갈 수 있다고, 가고 싶다고, 자신에게 약속하는 것으로 시원의 세계를 놓지 않는다.
다른 시 하나는 마음을 찢는다. 세월호 아이들에 대한 이 시는 시인의 마음이 곧 내 마음/모두의 마음이리라 생각한다.
꽃밭에는 꽃들이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어린 영혼들에게
우리 아이들은
비록 험한 물살 속에 들었으나
지금
서천꽃밭에서 버드나무 우물을 길어
뼈살이꽃 살살이꽃
물을 주고 있을 것이다
원강아미가 낳은 한락궁이가
극락 가는 길을 잠시 막아
아이들의 두 팔에 힘이 오르고
아이들의 두 다리가 튼실해질 때까지
꽃밭에 물 주는 일을 시킨단다
나는 두 손으로 죄나 짓고
나는 두 발로 못 갈데나 가고
겨울 지옥 업관에 이르러 두 손 두 발 잘릴 것이다
아이들아
물살 한 번 헤쳐 주지 못한 중생
부디
어엿비 여겨 뼈살이꽃 한 송이
내 엎어진 가슴 위에 얹어 다오
죄 많고 부끄러운 뼈 위에
살살이꽃 한 송이 던져 다오
버드나무 우물을 길어
꽃밭에 물 주고 있을 나의 아이들아.
이 시는 죽은 자들이 간다는 ‘서천꽃밭’을 배경으로 한다. 서천꽃밭은 저승도 이승도 아닌 중간계로, 죽은 아이들이 광천못에서 길어온 물로 꽃에 물을 준다고 한다. 서천꽃밭에 있는 ‘뼈살이꽃’과 ‘살살이꽃’은 죽은 자의 뼈와 살과 숨을 살아나게 하는 재생의 의미를 가진다. 바리공주 신화를 보면,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바리공주는 서천꽃밭으로 간다. 거기서 ‘뼈살이꽃(뼈오를꽃)’과 ‘살살이꽃(살오를꽃)을 가져다 이미 죽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살려낸다. 이 시에 나오는 ’한락궁이‘ 역시 서천꽃밭의 꽃으로 죽은 어머니를 살린다.
시인은 세월호의 아이들을 “우리”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내 자식, 내 가족이라는 의미다. ’내 새끼‘가 이유도 모른 채 수장되었는데 가슴 찢어지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모든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죄인이 된다. “물살 한 번 헤쳐 주지 못한” 죄는 “두 손으로 죄나 짓고” “두 발로 못 갈 데나 가고” “겨울 지옥 업관에 이르러 두 손 두 발 잘릴 것이다”로 죄를 고백한다. 동시에 처벌 받기도 주저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 “어엿비 여겨 뼈살이꽃 한 송이 내 엎어진 가슴 위에 얹어”달라고 말한다. 아이가 죽은 것과 동시에 부모도 죽었다는 뜻이자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뼈살이꽃으로 다시 살게 해주면 “우리 아이들”을 지키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비통함을 넘어 비장감이 절절하다. 그만큼 세월호의 아이들은 세월호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억울한 죽음을 통칭한다. 온전히, 아이는 아이로 있기를, 부모는 부모로 있기를, 너무나 당연한 것마저 이토록 간절히 원해야만 하는 시절에 살고 있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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