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설/독서감상문

『모든 책 위의 책』

유리벙커 2020. 6. 5. 00:45

 

어느 한때, 나는 신라 문무왕에 대한 소설을 쓰고자 모든 책 위의 책저자인 고운기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는 역사소설이 붐을 타고 있을 때였다. 역사소설을 쓴다는 건 가당치도 않을 일이었으나, 나름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싶었다. 해서, 삼국유사(일찌감치 읽었지만)는 물론, 삼국시대와 가야에 관한 여러 책을 읽었다. 거기다 중국 서안까지 가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백에 가까운 나의 도전력은 여러 책을 읽으면서 꺾였다. 신라만 해도 혈육끼리의 결혼이 빈번해, 족보가 꼬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누가 누구의 자식이고 왕이고 왕자가 되는지 알았지만, 차츰 복잡해지면서 도저히 기억할 수 없게 됐다. 중국과 일본과의 역사적 지식 또한 있어야 했다.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책 위의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은, 그 많은 이야기와 장소, 시기, 인물들을 어떻게 다 외우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였다. 아무리 삼국유사 전공자라곤 하나, 신라 문무왕을 쓰려다 포기한 내 입장에선 요원한 고지였다. 더욱이, 이 책의 덕목은 당시의 사건을 현재로 재현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과거 그 먼 옛날의 이야기로 그치는 게 아니라, 그때와 지금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 하나는, 사진이 실려 있는데, 사진에 대한 저자의 짧은 글이 시와 같다는 점이다. 그 대목을 읽으면 마음이 저 먼 데로 흘러가면서, 울컥거리기도 하고 고요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있다. 사자성어다. 우리가 흔히 알던 사자성어 말고, 저자가 만든 사자성어다. 사건에 따른, 일종의 조어 성격을 띤 사자성어다. 내용과 한자가 맞물려야 나올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여기에 나온 사자성어는 저자만의 독특한 파악이자 실력이 아닐 수 없다.

 

위에서 말한 순서대로 하나의 예를 들어본다.

요즘 난리가 난 코로나19에 관한 이야기다. 코로나19의 진원지는 중국 무한이다. 무한은 인구 천만 명이 넘는 대도시. -12. 그러니 코로나19, 즉 괴질이 우리나라에 번져오는 것은 자명하다.

여기서 신라 승려 혜통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혜통은 승려이자 의사다. 혜통은 당나라 황실의 공주에게 난 병을 고쳐주었는데, 병의 원인은 괴질, 몸 안에 있다 혜통에게 쫓겨 나와 이무기로 변했다. 공주는 거뜬히 나았으나 이 이무기가 신라로 도망쳐, 경주에서 사람을 해치며 지독하게 굴었다. 혜통을 원망해 복수하는 것이었다.”-13.

이에 혜통은 신라로 건너와 괴질을 쫓아냈다. 헌데 괴질은 다시 정공의 집 버드나무로 변했다. 마침 왕의 장례 행렬이 정공 집 앞을 지나야 하는데 버드나무 때문에 걸렸다. 관리는 버드나무를 베라고 하고, 정공은 벨 수 없다고 뻗댔다. 괴질이 정공의 마음에 조화를 부려서였다. 새로 등극한 왕은 화가 나 정공을 죽이고 그 집마저 묻어버렸다.

여기에 나오는 괴질이 오늘날로 치면 전염병이다. 이무기나 버드나무로 몸을 바꾸는 것은 괴질의 여러 현상을 나타낸 것이며,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서 신라의 경주까지 퍼진 병에 관한 기록이 여기서 이무기가 되어 달아났다는 이야기로 만들어진 것이다.”-13~14.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왕은 혜통의 신통력을 두려워한 나머지 죽이기로 한다. 무장 군인이 혜통에게 가자 혜통은 사기병의 목에 붉은 붓으로 한 획을 그으며 소리쳤다. 너희는 각자 자기 목을 보아라. 모두 목을 보니 어느새 붉은 획이 그어져 있었다. 서로 보며 놀라는데 혜통이 또 소리쳤다. 만약 내가 쥔 명목을 자르면 너희 목이 잘린다.”-14~15.

대단히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몽실몽실 재미도 있거나와 탄산수의 톡 쏘는 후련함도 준다.

저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괴질(코로나19)로 국민들 사이에 또는 정치적으로 내부분열이 일어나지만 삼국유사에 실린 혜통의 이야기를 읽어보니, 오해를 풀어 화해하고 병의 근원을 치료하는 일이 첫손가락 꼽히겠다. 괴질은 여러 모양으로 찾아와 사람을 해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다. 그래서 절제가 필요하다.”. -16.

위의 챕터는 프롤로그로 사자성어는 없다. 대신, 강화 보문사 사진이 실려 있는데, 그에 따는 저자의 글은 마치 잃어버린 사랑을 고백하는 듯하다.

마음 끌려서 이마에 손을 얹어보는 그리움이 있다. 시절이 그렇고 사람이 그렇다. 오지 않는 답신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서 있기만 해도, 불어와 불어 가는 곳 없는 저 심심한 바람이 분명 반가워할 것이다.”

 

다른 챕터를 보자.

사자성어를 쓴 수전망후守前忘後 라는 제목엔 앞만 지킬 줄 아니 뒤를 치라고 한자어를 풀어 쓴 제목이 붙어 있다.

이 이야기는 경북 청도군의 견성犬城에 관한 이야기다.

왕건이 견성을 치려는데 잘 안 된다. 이에 이 지역을 잘 아는 보양스님에게 물었다. 그러자 보양스님은 말한다. “무릇 개라는 짐승은 밤을 타서 움직이지 낮을 틈타지 않고, 앞만 지키면서 뒤를 잊어버립니다. 마땅히 낮에 뒤쪽을 치소서.”-73~74.

이어 74쪽을 그대로 옮겨본다.

보양스님이 말하는 대목이다. “견성이라는 이름에서 개를 떠올리고, 산적을 개의 무리에 비견하고 개는 무릇 앞만 지키면서 뒤를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수전망후 守前忘後

근시안적 태도, 깊고 넓은 생각이 없는 경우에 쓸 수 있겠다.

아베와 그 무리를 견성의 산적에 비유하면 이웃 나라 지도자에 대한 결례일까. 결례를 따지기에는 저들의 태도가 앞만 보고 전진하던 옛날 군국주의 시대를 떠올리게 해 경황이 없다. 한마디로 걱정스럽고 두렵다. 이미 갈 길을 그렇게 정했다면 우리가 대처할 방법도 명확하다. 낮에 뒤를 치는 것이다. 앞만 보느라 뒤를 잊고 있으니 말이다.

 

속이 후련한 지적이다.

이 챕터엔 일본이 스모를 좋아하는 이유로 자이언트 콤플렉스를 꼽는다. “작은 체구의 자신을 지켜줄 수호신으로 거인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반영된 것이고, “자민당이 잘나서 거인이 되었다기보다 일본의 유권자가 그렇게 만들어놓은 거인이다.” -72.

여기에 우리나라를 도입해보면 따끔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이 챕터에도 사진이 있고 시적 글이 있다.

경주 진평왕릉 공원의 사진인데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영산홍 붉은 시절은 짙은 그늘이 좋아 따라갔다더라. 나뭇가지마다 옮겨 앉는, 세월의 어느 저편이 우리를 닮아, 쓰다듬어 잠자코 한숨 골라보는 날, 천년의 세월은 검은 고목도 기억하지 못한다.”-70.

 

마지막으로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에 대한 기술이 나온다.

일연은 너무 유명해서 아무도 모른다.”-215. 는 대목은 절창과도 같다. 이 챕터를 요약하면 이렇다.

일연은 고려왕조의 국사로, 기록이 거의 없어 구체적이고 입체적이지 않다. 왕조 시대에는 역사를 당연히 왕 중심으로 썼지만 일연은 이야기의 주인공 중심으로 썼다. 서민이나 지체가 낮은 스님도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말하자면 시대를 앞선, 혹은 뛰어넘은 인식자라고 할 수 있다.)

일연은 일곱 살 때 어머니 품을 떠나 만 83세 때 군위군 고로면의 인각사에서 열반한다. 78세 때 인각사에 와서 83세까지 5년 간, 그 사이 어디쯤에서 삼국유사를 탈고했으리라 본다.

일연은 자기발로 뛰어 보고 느낀 것을 썼기에 현장감에서 우뚝한 경지에 이른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탠다면 눈물.

눈물은 값진 것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저 깊은 속에는 눈물이 자리한다.

 

이 책은 이해나 절제를 강요하지 않는다.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나 싶은데 어느새 시대와 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강요된 모럴은 반감만 산다. 이 책에는, 또한 일연은, 그 어떤 교훈을 강요하지 않는다. 책이 갖는 순기능이 은근히 배어있다고나 할까. 꼭 한 번은 읽어야 할, 모든 책 위의 책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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