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힌턴 미스트리는 현재 캐나다에 살며 인도 태생의 작가다. 그의 장편소설 『그토록 먼 여행』은 처음 접해보는 인도 소설이다. 인도 소설이라는 점이 적잖게 궁금증과 부담을 준다. 헌데 웬걸. 우리나라 작품을 읽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읽힌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점은 번역에 있다. 손석주의 번역은 그야말로 최고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지만 읽는 내내 번역자에 대한 고마움이 새록새록 올라온다. 독자의 뇌를 쥐어짜는 게 아니라 편안하면서도 작품의 진가를 자연스레 녹여, 독자와 작품을 하나로 만든다. 원작을 이해하고 작가와 함께 호흡하지 않으면 좋은 번역이 나올 수 없다. 즉, 작가와 작품에 대한 애정 없이는 훌륭한 번역이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로힌턴 미스트리의 글 솜씨다. 작가의 탁월한 점은 서사의 적절한 균형과 배치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서사를 엮어나가는 솜씨는 감탄 그 자체다. 예컨대, 보통 정치적 배경이 나올 때는 따로 분리되거나 경직되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생활과 정치가 자연스레 녹아 있어 독자에게 거부감을 주거나 부담을 주지 않는다. 디테일한 부분 역시 질질 늘어지지 않게 ‘꼭 해야 할 말만 하는’ 깔끔한 스타일로 마무리한다. 한 예를 들어보면, 주인공 구스타드가 어린 시절 재래시장을 갔을 때의 일이다.
“시장 바닥은 동물 배설물과 야채 쓰레기로 질퍽거렸으며 더럽고 냄새 나는 혼잡한 곳이었다. 그리고 마치 동굴처럼 큰 정육점 골목은 컴컴하고 무서웠다. 정육점 천장에는 끔찍하게 생긴 커다란 갈고리들이 매달려 있었는데-어떤 것들은 텅 비어 있었고 어떤 것들은 쇠고기가 매달려 있었는데, 빈 갈고리들이 더 무서웠다- 주인들은 손님을 잡으려고 애원하거나 구슬렸고, 때로는 자기 집 고기의 신선함을 자랑하기 위해서 다른 가게의 고기들을 가차없이 깎아내리기도 했다. 어스레한 불빛 속에서 고약한 악취가 풍기고, 대담하고 호전적인 파리 떼가 윙윙거리면 모든 것이 위협적으로 보였다. 끊임없이 외쳐 대는 정육점 주인들의 목소리는 늘 쉬어 있었고, 그들의 얼굴과 팔에서는 땀방울이 마치 개울물처럼 흘러내려서 핏빛으로 얼룩진 끈적끈적한 조끼와 룽기로 스며들었다. 뚝뚝 떨어지는 피와 응고된 피가 보였고, 피투성이 뼈와 하얗게 벗겨진 뼈가 보였으며 냄새가 났다. 정육점 주인은 흥정을 하거나 몸짓을 할 때면, 거친 손에 쥔 커다란 칼이나 식칼을 휘두르곤 했는데 불길한 빛이 번뜩였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지 않은가. 그만큼 로힌턴 미스트리는 사실을 디테일하게 그린다. 해서, 독자들은 어느 새 구스타드와 함께 정육점이 있는 현장으로 가게 된다.
이 작품은 3인칭 객관적 시점으로 서술되는데 리얼리티의 정수를 보여준다. 소설을 써 본 사람은 알겠지만, 3인칭 객관적 시점을 유지하며 쓰기란 대단히 어렵다. 그런 점에 비추어볼 때 이 작품이 3인칭을 끝까지, 유연하게, 감동적으로 끌고 가는 솜씨는 찬탄을 불러온다.
작품의 배경은 인도의 70년대다. 인도는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고, 종교의 자유는 있되 힌두교가 우세하며, 동파키스탄(지금의 방글라데시)과 서파키스탄으로 갈려 정치적 혼란을 겪는다.
주인공 구스타드는 인도에선 세력이 약한 조로아스터교도로 은행원이며 우리의 아버지들처럼 성실하고 고지식하며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으로 최선을 다한다. 70년대의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은 정치적 상황(독재)인데, 구스타드는 그 상황을 어떻게든 견디려는 민초들과 저항하는 민초들 중간 지점에 있다. 그는 피붙이와 다르지 않은 친구이자 전직 소령이 어느 날 소식 한 장 없이 사라지고, 또 어느 날 그 소령에게서 온 편지 한 장으로부터 사건에 개입하게 된다. 그는 그 친구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를 다하는데, 결국 전직 소령 친구는 국가(당시 인도 총리는 인디라 간디)에 의해 배신을 당하고 고문을 받고 죽음에 이른다.
이쯤 되면 로힌턴 미스트리는 자신의 목소리로 정의는 무엇인가, 국민은 누구인가, 정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한 번쯤 거론할 법한데 하지 않는다. 대신,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찾는 이 없이 죽은 소령을, 그것도 구스타드의 아내가 매일 신문의 부고란을 열심히 찾아 알아낸다. 구스타드는 충격에 빠져 소령의 시신이 안치된 ‘침묵의 탑’을 찾아가 혼신을 다해 기도하며 조문한다.
다른 하나는 같은 은행 직원이자 절친으로 지내는 딘쇼지가 죽음을 각오하고 구스타드의 부탁을 대신해 주는데(소령이 보내온 거액의 현금을 다른 통장에 입금시키는, 즉 돈세탁) 딘쇼지는 지병으로 죽고 만다. 구스타드는 슬픔과 죄책감에 시달리며 딘쇼지가 안치된 ‘침묵의 탑’으로 가 진심으로 기도를 올린다.
또 다른 하나는 동네에서 ‘모자란 놈’으로 천대받는 테물을 유일하게 아껴주면서, 테물이 데모대의 복판에서 돌에 맞아 죽자 그를 두 팔로 안고 테물의 집에 가서 죽은 테물을 위해 정성껏 기도한다.
위의 세 사람은 인도의 현실을 알리고자 배치한 대표적 상징 인물이다. 소령은 혁명적 인물로, 딘쇼지는 평범하나 정의를 원하는 인물로, 테물은 똑똑하진 않지만 순수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독재와 부패가 만연한 인도를 이런 저런 모습으로 질타한다.
여기서 로힌턴 미스트리는 구스타드와 여러 등장인물을 열어젖히면서 한 사람의 영웅을 허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특별한 휴머니스트나 영웅 같은 것은 없다고, 구스타드의 가족사를 통해 말한다.
장남 소랍에 대한 구스타드의 욕망은 우리 부모들의 세속적 욕망과 다르지 않다. 소랍이 모든 면에서 최고를 지키며 IIT(인도 공과대학)에 합격하자 구스타드는 이제부터 가난을 면하고 잘 살게 될 거라고 몹시 기뻐한다. 그러나 소랍은 부모의 뜻대로 살아왔지만 지금은 예술을 하고 싶다며 IIT에 입학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에 구스타드는 소랍과 절연한다. 구스타드의 아내 딜나바즈는 구스타드를 구슬리며 좀 더 우리가 인내해보자고 한다. 아내의 말에 구스타드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 세월 동안 우리가 인내한 거 말고 뭐가 있지? 이게 그 결과야? 슬프다. 정말 슬퍼.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의 미래를 내팽개치잖아. 당신이 한 번 말해 봐. 걔를 위해서 내가 안 해 준 게 뭐가 있어? 차 앞에 내 몸을 던졌어. 걔를 옆으로 걷어차서 목숨을 구해주다 평생 이렇게 고통받고 있다고.”
구스타드의 아들에 대한 집념과 희생은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나 국민과 국가를 은유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국민은 좀 더 나은 나라에서 살고 싶어 희생하지만, 소랍으로 비유되는 국가는 어느 날 갑자기 부친의 희생과 희망을 저버린다. 이 소설이 단순한 듯하나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구스타드의 아내 딜나바즈도 구스타드와 다르지 않다. 딜나바즈는 아들 소랍이 IIT를 접고 가출하자 옆집에 사는 늙은 독신녀 쿠트피티아를 찾아가 소랍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묻는다. 구트피티아는 주술 행위를 권하고 딜나즈바는 두려움을 느끼며 자식이 돌아올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것도 해야 한다고 여긴다. 우리 어머니들이 자식에게로 향한 욕망이자, 국민이 국가에 원하는 바람이기도 하다.
563쪽에 이르는 이 긴 장편소설의 핵심은 첫 페이지에 나온 인용문에 압축되어 있다.
그는 나이 든 사제들을 불러 모아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왕들에 관하여 물었다. “처음에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렸기에, 우리가 이렇게 비참한 상태로 떠맡게 됐는지 그대들은 아는가?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아무 적정도 없이 자유롭게 살면서 영웅적인 일을 할 수 있었는지 그대들은 아는가?”
피르디우시의 『샤나메』 중에서.
추운 길을 우리는 갔었다.
여행을 하기에, 그토록 먼 여행을 하기에
마침 일 년 중에서도 가장 힘들 때에
T.S. 엘리엇의 『동방박사들의 여행』 중에서
낡은 말이 혀끝에서 사라지자,
새로운 선율이 나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왔습니다.
낡은 길이 멀어져 갈 때, 새로운 나라가 놀라운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라빈드라트 타고르의 『기탄잘리』 중에서
첫 번 째 인용문은,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자 나쁜 정치/정치지도자가 국민을 기만하면 국민의 삶이 비참해진다는 선언이다.
두 번째 인용문은, 『그토록 먼 여행』은 우리 인생이 바로 지난한 여행의 연속이라는 의미다.
세 번째 인용문은, 배신과 거짓이 사라지면 바람직한 나라가 된다는 희망의 메시지다.
로힌턴 미스트리는 위의 세 인용문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소설로 완성도 높게 썼다. 이 소설이 주는 감동은 진동에 가깝다. 실제 겪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문장으로 가득하다. 『그토록 먼 여행』 전에 나온 장편소설로는 『적절한 균형』이 있다. 책을 주문하고 받아보니 무려 879쪽이다. 책 3권 분량이다. 좋은 책일수록 아껴가며 읽는 습관이 있는지라, 『적절한 균형』 역시 천천히, 아껴가며 읽을 듯하다.
마지막 하나 첨부.
이 소설에는 ‘디젤 배기가스’ 때문에 숨 쉬기가 힘들다는 말이, 구스타드의 유년기부터 소설의 마지막까지 나온다. ‘디젤 배기가스’는 인도의 상황을 전하는 메타포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잊지 않고 곳곳에 배치한다. 마르스 프루스트가 ‘마들렌’으로 추억을 소환하는 장면과 로힌턴 미스트리가 ‘디젤 배기가스’로 현 상황을 전하는 점이, 결은 다르지만 내겐 하나로 중첩된다.
'나의 소설 > 독서감상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용한 날들의 기록>> (0) | 2023.04.20 |
---|---|
나를 보내지 마 (0) | 2022.12.01 |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0) | 2022.06.01 |
『페스트』의 전언 (0) | 2022.01.26 |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이 말하는 예술과 현실 (0) | 2022.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