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로 집을 보러 와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주차장이다.
주차장이라기보다 주차 칸이다.
일반 차량의 주차 칸보다 아주 작은 칸이 한쪽 공간에 그어져 있다.
대체 저 작은 칸은 뭘까.
답은 이사를 한 후에야 알았다. 오토바이 전용 주차 칸.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 친절한 아파트네, 오토바이 전용 주차 칸까지 있고.
그렇게 무심히 얼마를 지난 후 차도를 달릴 일이 생긴다.
퇴근 무렵이다.
차량 사이사이로 많은 오토바이가 달리고 있다.
진풍경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오토바이 행렬은 본 적이 없다.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헬멧을 쓰고 아래위 회색 작업복 차림이다.
그제야 거제가 조선소의 도시라는 걸 실감한다.
내가 사는 사곡엔 삼성조선소가, 옥포엔 대우조선소가 있다.
조선소 근처엔 하청업체들이 모인 공단도 있다.
그곳 근로자들은 차량 대신 주로 오토바이로 출퇴근한다.
그 많은 근로자가 차량을 이용한다면 도로는 정체되기 십상이고, 주차 공간을 확보하기도 어려울 터다. 아닌 게 아니라 대우조선소 출입구 쪽 인도 한편엔 ‘오토바이 주차구역’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거기엔 오토바이들이 거의 1km정도 주차되어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작은 주차 칸이 왜 있는지 비로소 깨닫는다.
내 차 뒤로 혹은 옆으로 오토바이들이 다가오다 멀어지다 한다.
거리를 맨몸으로 달리는 생존들.
차량이 내뿜는 배기가스를 고스란히 마시는 삶의 현장들.
생존은 아슬아슬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진행과 정지를 거듭한다.
그러한 것이 어디 조선소 근로자들뿐일까.
탑 위에 올라 생존을 부르짖는 몸들,
그마저도 하지 못한 채 숨죽여 우는 몸들,
절망에 기꺼이 몸을 내주는 몸들.
일자리가 생존의 문제라는 건 모두 안다.
한마디로 일자리는 죽느냐 사느냐의 근본적인 문제다.
헌데 그에 관한 해법은 쉬워 보이지 않는다.
노조는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외치고, 윤석렬 정부는 노조를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우리 아파트의 작은 주차 칸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일반 차량 주차 칸보다 사이즈가 1/4 정도 작은 주차 칸.
그래도 일자리는 있지 않느냐고,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느냐고,
풍요를 누리는 자들의 목소리가 작은 칸에서 눈을 부라린다.
모두가 공평하며,
모두가 적절하며,
모두가 만족스러운 삶은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정치도 정치가도 없다.
없다기보다 불가능하다는 게 맞는 말일 터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기에, 이 시대를 살아내는 몸들이기에,
생존에 대해 존중 받고 싶어 한다.
생존 투쟁의 역사는 길고도 잔인하다.
그럼에도 오토바이는 달리고 달린다.
그래, 달려야 할 일이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혐오에 관한 의문 (0) | 2023.05.09 |
---|---|
늙음에 묻다 (1) | 2023.05.04 |
비오는 날, 서이말등대 (0) | 2023.04.18 |
빨래 놀이 좀 할게요 (2) | 2023.04.12 |
그래서 바위는 바위 (0) | 2023.04.01 |